쉬자인 배우자 ‘제3자’ 표기 놓고 ‘재산 지키기’ 의혹…비구이위안으로 이어진 부동산 위기 촉발 주범 시선
8월 14일 헝다그룹은 주요 사업 공시를 발표했다. 이를 지켜본 재계 인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창업주인 쉬자인 이사회 의장의 배우자 딩위메이에 대해 ‘당사 및 관계자와 무관한 제3자’로 표기한 대목 때문이었다. 그동안 헝다그룹은 반기 및 실적보고서 등에서 딩위메이를 ‘쉬자인 의장의 배우자’로 소개했다.
2021년 연말보고서에서 쉬자인 의장은 부인 딩위메이와 함께 보유하고 있던 12억 주를 매각했다. 이로 인해 부부의 헝다 지분은 76.69%에서 67.87%로 낮아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딩위메이는 쉬자인 의장 배우자로 올라 있었다.
홍콩증권거래소 상장규칙에 따르면 ‘관계자’는 상장회사의 주요 이사, 최고경영자 또는 주요 주주 등을 말한다. 관계자의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 등은 ‘연락인’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번 헝다그룹 공지에서 딩위메이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제3자’라는 표현으로 등장한 것이다.
베이징 진수 법률사무소 주임변호사 왕위신은 “통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혼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그렇지 않으면 독립적인 제3자로 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부부 사이라면 홍콩증권거래소 규정에 따라 특별한 신분 관계가 공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넷과 SNS(소셜미디어) 등에선 쉬자인 의장의 이혼설이 빠르게 퍼졌고, 주요 플랫폼 1위 검색어에 올랐다. 특히 심각한 채무에 시달리고 있는 쉬자인 의장이 재산을 지키기 위해 위장 이혼을 택했다는 소문이 확산됐다. 헝다그룹 측은 “잘 모른다. 개인 사생활”이라면서 답을 피했다.
쉬자인 부부에 대해선 그리 알려진 게 많지 않다. 둘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대학 졸업 후 허난성의 한 철강회사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 후 쌍둥이를 낳은 쉬자인은 회사를 그만두고 최대 경제도시 선전으로 와서 헝다그룹을 창업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쉬자인 의장은 “좁은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 여름에는 선풍기도 켤 수 없었을 정도로 어려웠다”고 당시를 떠올린 바 있다. 쉬자인은 딩위메이에 대해 “학력도 좋았고, 직장도 있었지만 나를 돌보느라 다 포기했다. 나는 그녀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다”고 했다.
딩위메이는 쉬자인 의장의 배우자로서만 아니라 헝다그룹의 계열사들을 이끌며 당당한 여성 기업인으로서도 인정을 받았다. 2019년 발표된 ‘여성 기업가 재산 목록’에서 딩위메이는 170억 위안(약 3조 1000억 원)로 26위에 올랐다.
법조계에선 부부의 이혼이 사실임을 전제로 재산 분할, 채무 변제 등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상하이시에서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슝우정 변호사는 “쉬자인 의장과 헝다그룹이 빚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혼이 채무 변제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것으로 본다. 헝다 관련 채무에 대해 담보나 저당이 설정돼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베이징의 한 변호사는 “헝다 관련 채무에서 과연 이혼한 배우자가 얼마나 연대 책임을 갖고 있는지는 법 해석에 따라 다를 것으로 본다”면서 “채무가 부부의 공동 의사표시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렵다면, 반드시 공동채무로 인정되진 않는다는 판례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 판결에 따라 딩위메이 재산은 헝다 채무 변제에 쓰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직 쉬자인 의장 부부의 위장 이혼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헝다그룹이 처한 위기를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지난 7월 헝다그룹이 발표한 재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부동산 등 주요 상장사 부채는 2조 6000억 위안(약 475조 3500억 원)에 달한다. 총자산은 1조 9600억 위안(약 358조 원)에 그쳤다.
헝다그룹은 8월 17일 미국 뉴욕 법원에 ‘챕터 15’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챕터 15’ 파산 보호는 외국계 기업이 회생을 추진할 때 미국 내 채권자들의 채무 변제 요구 및 소송 등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하는 규정이다.
재무 상황과는 별개로 헝다그룹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우선, 지금의 부동산 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라는 비판이다. 헝다그룹으로 촉발된 사태는 현재 업계 1위 비구이위안의 디폴트 가능성으로까지 이어졌다. 8월 16일 중국 증권감독위원회가 헝다그룹을 상대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받아들여진다.
인터넷상에선 헝다그룹 경영진들의 과도한 급여도 도마에 올랐다. 2022년 헝다그룹 이사 및 최고 경영진 보수 총액은 약 8000만 위안(147억 원)이다. 쉬자인 의장은 매달 12만 6000위안(약 2300만 원)을 받았다. 조사에 포함된 대부분의 경영진은 연봉 1000만 위안(18억)이 넘었다. 직원들은 구조조정을 당하고, 임금이 감소했는데 최고위급 임원들은 ‘돈 잔치’를 벌였다는 비판이다.
얼마 전 발표된 기업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12월 31일 기준 헝다그룹 직원 수는 총 10만 2910명이다. 이는 2021년 같은 기간에 비해 36.9% 줄어든 규모다. 구조조정 인원 외에도 2022년에만 5만 8077명이 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헝다그룹 직원들의 보수 총액 역시 크게 줄었다. 2021년엔 140억 7000만 위안(약 2조 5800억 원)이었지만 2022년엔 46억 3000만 위안(약 8400억 원)으로 감소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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