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댓글 300개 남긴 50대 체포돼 법정으로…“고의로 비방한 적 없어, 댓글과 죽음은 무관” 주장
‘왕홍(网红)’은 인터넷 유명인이라는 의미다. 쑨 판바오는 2021년 트랙터를 몰고 티베트를 다녀와 왕홍이 됐다. 당시 그가 트랙터로 이동한 거리는 4000km에 달한다. 쑨은 이 과정을 생중계하며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지난 2월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쑨은 자신의 차 안에서 농약을 마시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38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인터넷과 SNS엔 그를 추모하는 열기가 뜨거웠다. 항상 밝은 모습을 보였던 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은 쑨이 악의적인 댓글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 때문에 우울증을 앓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쑨을 괴롭혔다는 50세 후 아무개 씨를 명예훼손, 모욕죄, 비방죄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또 180만 위안(3억 2000만 원)가량의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후 씨는 지난 3월 체포됐고, 현재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유족의 주장 및 공안 조사 등을 종합하면 후 씨는 2022년 8월부터 2023년 2월까지 후 씨의 SNS 계정에 악성 댓글 300여 건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티베트 여정’이 조작이라는 주장, 쑨의 개인적인 성격 등을 비방하는 내용 등이었다. 심지어 후 씨는 쑨의 죽음을 ‘연극’이라면서 아직 살아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후 씨는 쑨의 생사를 확인하는 과정을 인터넷상에 올리기도 했다. 쑨의 고향에 다녀온 후 씨는 쑨이 사망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에 대해 후 씨는 공안기관 조사에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연히 쑨의 고향에 들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후 씨는 “쑨의 팬으로서 죽음이 진짜인지 알아보고 싶었다”면서도 “(이상한 점은) 쑨의 고향에서 장례식이 치러진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쑨의 죽음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은 셈이다.
8월 1일 첫 재판에서 피해자 측 변호사는 후 씨가 올린 댓글들을 공개했다. 후 씨는 댓글을 올린 것은 맞지만 특정인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댓글을 모두 삭제하겠다고 덧붙였다. 왜 삭제하느냐는 질문에 후 씨는 “내 마음”이라고만 했고, 이를 지켜본 유족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재판에선 후 씨가 댓글뿐 아니라 특정 플랫폼을 활용해 쑨과 그의 가족들을 비방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후 씨는 이곳에 그룹 채팅방을 만든 뒤, 회원들로 하여금 쑨에 대한 내용을 퍼트리도록 했다. 피해자 측 변호사는 “모든 내용이 다 인격 모독이고 허위다. 개인 사생활에 대한 날조도 있다”고 했다.
이 그룹 채팅방에 속해 있었던 한 회원은 증인으로 출석해 “루머를 제작해 유포하고, 회원들로 하여금 쑨의 방송과 SNS에 악성 댓글을 달도록 선동했다. 또 쑨이 거짓방송을 하고, 사기를 치고 있다는 것을 신고하라는 지침도 내렸다”고 실토했다.
재판에선 공안기관 심문기록이 공개됐다. 공안은 “후 씨가 쓴 글들은 정확한 사실적 근거가 없으며, 대부분이 추측에 불과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후 씨가 쑨에게 화해 의사를 밝혔지만, 쑨은 이를 거절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공안은 “후 씨가 먼저 화해하자고 한 것은 본인의 잘못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고 했다.
후 씨 대리인은 법정에 출석해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쑨은 자신의 방송 등을 통해 허위 발언을 했다. 또 이를 이용해 돈을 벌었다. 이는 사기에 해당한다”면서 “후 씨는 쑨을 고의로 비방한 게 아니다. 쑨의 사기를 제지할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명예훼손 등은 무죄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 씨 대리인은 악성 댓글과 쑨의 죽음 관 상관관계에 대해 입증된 바 없다고 강조했다.
후 씨는 직접 발언대에 서기도 했다. 후 씨는 “우선 쑨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다”면서 발언을 시작했다. 후 씨는 “내가 남긴 댓글 등은 다른 사용자들과의 대화일 뿐이다. 누구를 모욕하려던 것은 아니다”라면서 “내 글과 쑨의 죽음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했다. 또 후 씨는 “쑨의 죽음 역시 어떤 시나리오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이 역시 돈벌이와 관련 있을 것이란 취지의 말도 했다.
이어 후 씨는 “상대방이 제시한 증거는 모두 단정적이고 일방적이다. 내가 쑨의 죽음을 입증할 의무는 없다”고 했다. 또 “나는 작은 인물일 뿐이고, 열 살짜리 아들이 있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나의 부모님과 아들은 나를 나쁜 사람으로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 마지막에 후 씨는 공안기관에서 했던 자신의 발언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유족 측 변호사는 “후 씨가 주장하는 쑨의 사기 의혹은 모두 조작된 것이다. 후 씨를 포함한 일당은 집단으로 사이버 폭력을 자행했다. 이에 시달리던 쑨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했다. 이어 “후 씨의 행위가 쑨의 자살로 이어졌다는 증거가 충분하다. 쑨의 태도에 재판부가 엄중히 경고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재판이 끝난 후 쑨의 아내는 기자들과 만나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후 씨의 태도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변명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쑨은 외아들이다. 앞으로 부모는 어떻게 살란 말인가. 또 우리 아이는 어쩌란 말인가. 나는 어떻고. 우리 가족의 삶을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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