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만에 뒤집힌 해협 개방 신기루

그러나 전세계 물류 대란 해소에 대한 기대감은 채 24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이튿날인 18일, 이란군 하탐 알안비야 중앙군사본부의 에브라힘 졸파가리 대변인이 성명을 통해 외무부의 발표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졸파가리 대변인은 “미국인들이 봉쇄라는 미명 아래 해적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은 다시 이전의 봉쇄 상태로 복귀했다”고 못 박았다. 군부 발표 직후 항로를 이동하던 선박들은 라라크섬 남쪽 해상에서 급히 운항을 멈췄고, 일부 유조선은 방향을 틀어 회항하기 시작했다.
#봉쇄-역봉쇄-개봉-재봉쇄…끝 안 보이는 미·이 갈등

폭 37km의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이라크·카타르의 원유가 아시아로 나가는 사실상 유일한 뱃길이다. 이란은 봉쇄 기간 동안 자국 선박만 선별적으로 통과시키며 척당 최대 200만 달러의 통행료를 징수하는 등 해협을 무기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유조선 통행량은 평시 대비 70% 급감했고, 세계 최대 해운사 AP 몰러-머스크와 하파크로이트는 관련 경로 운항을 전면 중단했다. 해상 공급망이 마비되면서 국제 유가는 즉각 요동쳤다.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82달러 선을 돌파하며 13% 가까운 폭등세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유례없는 직격탄을 맞았다.
평행선을 달리던 양국의 갈등은 외교 협상에서도 끝내 해답을 찾지 못했다. 양측은 지난 4월 12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1차 협상을 가졌으나 밤샘 논의 끝에 결국 결렬을 선언했다. 밴스 미국 부통령이 재러드 쿠슈너,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를 대동하고 압박 수위를 높였지만, 갈리바프 의회 의장이 이끄는 이란 대표단은 핵 프로그램 폐기와 고농축 우라늄 인도 등 미국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다. 밴스 부통령은 회담 직후 “우리는 레드라인을 분명히 했음에도 이란은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기도 했다.
협상이 파행으로 치닫자 미국은 이튿날인 13일, 이란 항구를 드나드는 모든 물동량을 차단하는 ‘역봉쇄’ 전략으로 맞불을 놨다. 미군은 1만 명 이상의 병력과 10척이 넘는 군함 등을 투입해 해상로를 장악했고, 이란 선박만 통과하던 전세는 하루아침에 뒤집혔다. 실제 봉쇄 첫 24시간 동안 미군 중부사령부는 “작전 구역 내 봉쇄를 뚫은 선박은 단 한 척도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출신의 미아드 말레키는 “이란 GDP의 25%, 수출 수익의 80%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오는 만큼, 이번 봉쇄는 이란의 자충수이자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란도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역봉쇄로 수입 경로가 막히자 이란 정부는 주유소 구매 한도를 1인당 7갤런에서 5.3갤런으로 줄였다. 전략 비축량은 국내 소비량의 약 12일분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제가 고사 위기에 직면하자 이란 외무부의 17일 “항로를 조건부로 개방하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문제는 이에 대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라그치 장관의 개방 선언 직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는 막지 않기로 합의했다”거나 “고농축 우라늄을 미국에 넘길 것”이라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이란이 실제 합의하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트럼프 승전고에 이란 군부 발끈…안개 속으로 빠진 최종 합의

외무부에 대한 이란 내부 여론도 들끓었다. 이란 파르스통신은 17일(현지시간) “외무장관의 예상치 못한 게시글과 뒤이은 트럼프의 초조한 허세가 동시에 터져 나와 이란 사회는 혼란의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고 맹비난했다. 메흐르통신도 같은 날 “추가 설명이 빠진 외무장관의 글은 트럼프에게 승전고를 울릴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엇갈린 행보를 두고 두 가지 시각을 내놓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최고지도자 유고 이후 외무부의 협상파와 혁명수비대의 강경파 사이에 권력 투쟁이 가열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반면 2차 협상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메시지 혼선을 일으켜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해석도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아라그치 장관은 재봉쇄 선언 당일 ‘이란군의 날’을 맞아 군의 희생에 감사를 표하는 글을 텔레그램에 올렸으나 재봉쇄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반면 모즈타바 하메네이 신임 최고지도자는 “용맹한 해군이 적들에게 새로운 쓰라린 패배를 안길 준비가 됐다”고 했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차관은 18일 튀르키예 안탈리아외교포럼(ADF)에 참석해 기자들에게 “합의의 틀에 의견을 모을 때까지 2차 협상 날짜를 잡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긴장 고조의 구실이 될 수 있는, 실패가 예견된 그 어떤 협상이나 회담에도 임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