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순용 전 검찰 총장 | ||
그의 기억 속에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도 깊숙이 각인돼 있었다. 99년 9월 주가조작 혐의로 이 전 회장을 구속하기까지 고민을 거듭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기까지는 무려 10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증권거래소에서 현대전자의 주가 조작 혐의를 포착하고 금융감독원에 보고한 것은 98년 10월. 금감원은 증권거래소에서 넘긴 자료를 토대로 6개월 이상 조사를 벌여 주가조작 혐의가 있다고 판단, 99년 4월26일 현대전자·현대중공업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내사 초기부터 온갖 통로를 통해 견제와 로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19일 기자와 만난 박순용 전 총장은 “당시 청와대에서는 경제 안정 논리를 앞세워 이익치 처리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99년 9월 이 전 회장에 대한 구속방침을 밝히기 위해 검찰청사로 출근하는 날에도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전 총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문제나 특별 사건에 대해 일체 의중을 밝힌 적이 없었다”며 “오히려 조심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그쪽(호남) 패밀리가 아닌 데다 김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박 전 총장의 설명이다.
그는 고시8회 동기로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와 대화통로를 열어두었다고 설명했다.
박 전 총장은 당시 김중권 비서실장과의 전화통화와 관련해 “국정의 중요 사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위치에서 연락을 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크게 부담은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중권 전 실장은 6월23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비서실장이 중요 사안에 대해 전화를 하면 외압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박 전 총장과) 일상적인 전화 외에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이익치’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한 상태였다”며 “(박 전 총장이) 혹시 박주선 법무비서관과 통화한 것을 착각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99년 6월 서울지검장으로 부임해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을 지휘했던 임휘윤 전 검사장도 당시 ‘이익치 방어벽’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6월20일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임 전 검사장은 “청와대를 비롯해 여러 루트를 통해 ‘선처’ 요청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쪽에서 경제안정 논리로 (구속에 대한) 재고를 요청했을 때는 증권사에서 일하는 막내 동생의 견해까지 들으면서까지 구속에 신중을 기했다”고 설명했다.
임 전 검사장은 이익치 전 회장의 로비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임 전 검사장과 학연·혈연·지연 등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 ‘선처’를 대신 요청했다는 것.
임 전 검사장은 “당시 우연히 상가(喪家)에서 만난 이 전 회장이 넙죽 절을 하며 아는 체해 당황한 적이 있다”며 이 전 회장의 기회주의적 모습을 보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 등의 ‘이익치 구명운동’은 결국 절반의 성공으로 매듭지어졌다. 99년 9월9일 그가 구속됐지만 2개월여의 수감생활만 하고 풀려난 것.
이 전 회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검찰은 지나칠 정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것이 로비(선처 요청)에 의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오해를 살 여지를 남겨두었다.
99년 당시 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현대의 대북라인을 활용하려고 했다. 이익치 전 회장은 현대의 대북사업을 실질적으로 성사시킨 장본인이다.
청와대가 이 전 회장의 ‘선처’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에 그 같은 요인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당시 검찰과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