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준섭 박사.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송준섭 박사는 지금까지 대표팀 주치의를 전담해 오면서 이번 올림픽대표팀처럼 부상 선수가 속출했던 적도 없었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내 별명이 ‘저승사자’였다. 나랑 병원에만 가면 선수가 짐 싸서 돌아가게 된다고 선수들이 ‘저승사자’라고 부르더라. 올림픽 첫 경기였던 멕시코전을 3일 앞두고 한국영이 발등뼈에 금이 가는 부상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당시 언론에서는 한국영이 부상 사실을 숨겼다고 하지만 우린 그의 발에 통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뼈에 금이 간 줄은 몰랐다. 운동 중에 발생한 단순 타박 증상으로 알고 있다가 훈련 중에 뚝 소리가 났다면서 한국영이 걸어 나오는 바람에 병원까지 가게 된 것이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까 이미 금이 가 있었다. 진료를 받고 나서 국영이가 계속 물어봤다. 자신은 어떻게 되느냐고. 그런데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냥 치료나 잘해야 될 것 같다고만 말했다. 정말 가슴이 아팠다.”
▲ 일본과 동메달결정전에서 승리한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누구보다 (정)성룡이가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했을 때는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였다. 이미 올림픽 개막 전부터 홍정호, 장현수도 부상으로 제외된 상태였고 올림픽 이후에도 한국영 김창수 정성룡까지 쓰러지고 나니 마치 내가 죄인이라도 된 듯한 마음에 홍 감독 얼굴을 제대로 쳐다 볼 수가 없더라. 창수는 이미 골절이 됐기 때문에 더 이상 게임에 뛸 수 없었지만 문제는 성룡이였다. 의무팀에선 심각한 타박상이거나 심각한 염좌는 반드시 회복시켜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사로잡힌다. 더욱이 성룡이의 부상은 팀의 사기와도 연관되는 터라 더더욱 집중해서 신경을 써야 했다. 몸에 좋다는 소염제는 다 먹인 것 같다. 나중에는 IOC에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주사를 놔줘도 되는지를 문의했다. IOC에서 허락할 경우 도핑 검사에 대한 염려 없이 통증 완화제를 놔주고 남은 마지막 경기(3위 동메달 결정전)에서 뛰게 하려는 요량이었다. 그런데 막판에 IOC에서 절대 불가한다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어쩔 수 없이 소염제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송 박사는 만약 정성룡이 한일전에서 상대 선수와 같은 부위를 또 부딪히거나 넘어졌더라면 더 이상 게임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홍 감독이 교체 카드에 관련해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즉 정성룡의 부상이 재발될 수 있는 상황을 염려해 3장의 교체 카드 중 1장은 정성룡 몫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
정성룡은 타박상 수준이었지만 김창수가 다친 오른쪽 요골 골절은 신경 마비가 올 수도 있는 탓에 의무팀 전원이 초긴장 상태였다고 밝힌다.
“부상 당한 날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다가 다음 날부터 점차 팔이 부어오를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십중팔구 신경 마비 증상이 나타난다. 만약 그럴 경우 현지 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해 놓고 부상 상태를 계속 점검했다. 다행히 붓기가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면서 신경 마비가 일어나진 않았다.”
가장 격렬했던 스위스전을 마친 후 선수들의 크고 작은 부상이 속출했다고 한다. 박주영은 턱과 무릎이 찢어져서 경기 직후 경기장 응급실에서 두 부위에 각각 세 바늘씩 꿰매는 응급조치를 받았다. 기성용도 스위스전에서 몸싸움을 하던 중 오른쪽 얼굴을 얻어 맞은 뒤 반창고를 붙이고 계속 게임을 뛰기도 했다.
“기성용은 얼굴이 부어오르니까 헤딩할 때마다 골이 울린다고 하소연했다. 가봉전에서 정말 힘들게 뛰어다녔는데 워낙 체력이 좋은 선수라 두통을 안고 달리면서도 경기를 다 소화하더라.”
송 박사는 선수들이 들것을 굉장히 싫어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주치의 입장에선 부상당한 선수의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들것에 실려 나가도록 권장하지만 선수들은 모두 들것을 거부했다는 것. 들것을 이용해 나가는 것 자체가 팀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광저우아시안게임 때는 선수들 스스로 금메달 획득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에 발목이 잡혀 3위에 머물고 말았지만 이번 대표팀은 모두가 축구를 즐기는 것처럼 생활했다. 홍명보 감독도 쉬운 상대도 어려운 상대도 없는 만큼 올림픽이란 축제를 마음껏 즐기자고 강조했었다. 그 부분을 나이 어린 선수들이 잘 이행했고, 밖에선 불가능할 것 같았던 영국전을 이기고, 비록 패했지만 브라질전에서 선전하면서 선수들은 거칠 게 없어 보였다. 여느 대표팀보다 단단하고 끈끈한 팀워크를 선보이며 서로 안아주고 격려하면서 올림픽을 치르는 모습에 절로 감동을 받을 정도였다. 선수들의 빛나는 투지와 희생 정신이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게 한 것 같다.”
송 박사는 2009년부터 대표팀 감독과 주치의로 인연을 맺고 있는 홍명보 감독에 대해서도 남다른 감회를 드러냈다.
“홍 감독이 선수들에게 말한 내용 중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문구가 있다. ‘너희들의 능력은 똑같다. 경기에 출전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너희들 컨디션에 달려있다’라는 말이다. 그는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주전과 비주전을 구분하지 않고 자신이 말한 내용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참 멋있는 지도자라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은 끝났지만 아직도 송 박사의 가슴에는 런던 웸블리구장에서 벌어진 시상식 때의 가슴 뜨거움이 고스란히 존재해 있는 듯 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