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 새 대표로 선출된 최병렬 대표가 박희태 전 대표(왼쪽)와 강재섭 의원의 손을 맞잡 고 당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원내 제1당의 ‘포스트 이회창’ 체제 당권을 거머진 최 대표의 의중에 따라 한나라당의 대권구도는 상당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 대표가 당을 잘 이끌고 대권가도에 직접 나서게 될지, 아니면 경쟁력 있는 후보를 발굴해 집중 지원할지 아무도 장담할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대권구도에 최 대표의 영향력이 상상 이상 발휘될 것이란 전망이다.
최 대표는 당선 이틀째인 6월28일 대선구도에 대한 기본입장을 밝혔다. 최 대표는 이날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금은 당을 제대로 만드는 대표가 필요하며 차기 대선후보는 2005년쯤 부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또 “우리 당이 내년 17대 총선에서 이기면 당원들이 다음 정권 창출을 위해 총궐기할 것으로 본다”면서 “45~55세 전후의 연령층에 있는 사람이 우리 당 후보로 부상할 것으로 보며 서울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대권출마 여부와 관련, “나는 그런 사람들(대권후보들)이 공정하게 자기를 내세워 경쟁해 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라며 대표 경선과정에 제시한 ‘인큐베이터론’을 재강조했다.
이날 발언은 당 안팎에 적지 않은 파문을 던졌다. 최 대표가 대권후보의 부상시기를 2005년으로 예상하고, 적절한 연령대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당 안팎에서는 최 대표가 한나라당의 대권구도와 관련, 모종의 구상을 이미 갖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추진력이 강한 데다 명쾌한 사람이어서 최 대표의 한마디 한마디를 가볍게 들을 수 없다”면서 “발언을 놓고 보면 머릿속에 스케줄과 사람에 대한 그림이 꽉 차 있는 것처럼 보여 대권구도에 파란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에서 대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상당히 많다. 우선 광역단체장 가운데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김혁규 경남지사가 1차적으로 대권 꿈을 꾸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손 지사는 여러 차례 도전의사를 밝혔고, 이명박 시장은 비밀리에 대권프로젝트와 관련된 사설팀을 운영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내에서는 차기를 선언한 강재섭의원을 비롯, 박근혜 의원이 일찌감치 꿈을 직·간접적으로 피력한 바 있다. 이외에도 김덕룡 홍사덕 서청원 의원 등이 꿈을 버리지 않고 있고, 직선 운영위원으로 선출된 권철현 남경필 권오을 의원, 당내 활동의 선두주자인 김문수 홍준표 의원 등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러나 최 대표의 측근들은 45~55세란 시대분위기상 젊은 후보가 바람직하다는 당위론을 제시한 것일 뿐,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최 대표의 영향력은 대권주자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자천타천으로 10여 명에 이르는 한나라당의 후보군은 이제 무엇보다 최 대표의 의중을 가장 먼저 살펴야 하는 형편이다.
문제는 최병렬 대표 자신이다. 최 대표는 “나는 한 입으로 두 말 한적이 없다. 지금처럼 역동적인 시대에는 70대 대통령은 힘들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직접 대권에 뛰어들 가능성이 열려 있다. 최 대표를 주자군으로 보는 사람들은 최 대표가 확실히 당을 추스르고 내년 총선에 승리할 경우 당원들의 추대형식으로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한다. 정치란 살아있는 생물인데, 최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선 최 대표가 우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전당대회에서 다시 한번 대표직을 연임하는 데 1차 목적을 가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최 대표가 총선에 승리하면 대표직은 따논 당상인 셈이다.
내년에 새로 뽑힐 한나라당 대표는 임기 2년으로 차기 대선구도를 직접 관장하게 된다. 이 경우 최 대표가 ‘킹’이 되느냐 ‘킹메이커’가 되느냐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결론이다.
확실한 카리스마로 사실상 제왕적 대표로 군림할 것으로 예상되는 최 대표가 대권구도를 자기 입맛에 따라 선택,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한 변수다.
최 대표가 대구지하철 참사 추모행사 참석차 6월29일 대구를 방문했을 때 차기를 노리는 강재섭 의원이 계속 옆에 붙어 수행을 하다시피 했다. 김덕룡 의원은 비록 자의는 아니었지만 최 대표 체제에서 원내총무에 ‘도전’하려 했다. 벌써부터 최 대표에게 엄청난 힘이 붙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차기 주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최 대표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가 차기 주자의 가시화 시점을 2005년으로 잡은 것은 그때까지 차기군의 존재를 부인하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 일부에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차기 주자군을 일찌감치 부상시켜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최 대표에 의해 부정되고 있는 셈이다.
최 대표가 내년 총선에 승리한 뒤 킹메이커에 만족할지 여부는 속단할수 없다. 젊은 사람을 바라는 현재의 시대분위기가 계속 유지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권의 불안감이 확산된다면 경륜과 안정감을 최대무기로 하는 최 대표가 국민적으로 충분히 부상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으론 최 대표가 내년 총선 승리 후 개헌을 추진할 경우다. 최 대표는 현재까지 개헌이 실현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할 경우나 다당제에서 과반 1당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몇몇 정치세력의 연합으로 내각제 개헌이 추진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가령 한나라당과 호남권의 민주당 구주류가 손을 잡으면 원내 2/3 의석을 점령할 수 있고, 개헌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 경우 최 대표가 단순히 대권주자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판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이다. 내년에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노무현 대통령은 급속히 레임덕에 빠져들 것이고, 최 대표의 정국 주도권은 확고해질 것이다. 최 대표가 정치판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한다 해도 뚜렷한 견제세력이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
최 대표의 등장 이후 대권구도조차 급속하게 최 대표를 중심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정치권은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