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두고 여야 대립, 공청회 서면 진행돼 지적…‘탈피오트’ 본뜬 ‘과학기술전문사관제’와 중복 비판도
#서면으로 할 일인가
7월 28일 김 의장은 ‘국방첨단과학기술사관학교 설치법’ 제정안과 군인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방첨단과학기술사관학교를 설립해 첨단과학 분야 엘리트 군인을 육성하겠다는 취지다.
국방첨단과학기술사관학교는 이스라엘의 ‘탈피오트(Talpiot)’를 모델로 삼았다. 탈피오트는 이스라엘어로 ‘최고 중의 최고’라는 뜻으로 국방 과학기술 전문장교 육성제도를 말한다. 고등학교 졸업자 가운데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 3년 동안 히브리대학교에서 기초 과학과 무기 개발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친다. 학생들은 졸업 후 6년 동안 장교로 의무복무하게 된다.
김 의장이 발의한 법안에 담긴 교육 과정은 탈피오트와 유사하다. 사관학교 생도로 선발된 인원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서 4년 동안 국방 연구·개발과 관련한 교육을 이수한다. 1년에 50명 정도를 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름·겨울 방학 때는 12주 동안 군사훈련을 받는다. 졸업자는 국방첨단과학기술사관학교와 카이스트의 공동 학위를 받게 된다. 희망자는 추가로 카이스트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할 수 있다.
학사 졸업자는 소위로 임관한다. 석사 과정 이수자는 중위 계급을 달고 현장에 투입된다. 임관된 다음에는 국방과학연구소 등 국방 관련 연구기관에서 4년 동안 의무 복무한다. 의무 복무가 끝난 다음 스타트업 창업에 나서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원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다.
법안 발의 당시 김 의장은 “탈피오트 출신 인재들은 다양한 기술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이 기업들이 나스닥에 진출해 이스라엘을 창업 국가로 거듭나게 했다”며 “우리 역시 과학군과 기술군을 이끌 장교 양성과 기술 벤처 창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법안은 김 의장 숙원 사업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은 교육부총리 시절이던 2006년 1월과 2023년 3월 탈피오트를 방문했다. 그는 8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두 차례 견학이 국방첨단과학기술사관학교 설립 추진 배경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방위 내부에서는 법안이 졸속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불만이 나왔다. 공청회가 서면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11월 8일 국방위 전체 회의에서 공청회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의원들 대립으로 공청회는 열리지 못했고, 서면으로 대체됐다.
국방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들에게 충분한 설명 없이 서면으로 대체한 것”이라며 “(일부 의원들이) 관계 부처 사람들도 출석했는데 그냥 돌려보내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공청회를 따로 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전했다.
#실효성 부족하다는 지적
국방위 내부에서는 법안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나왔다. 이스라엘과 한국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탈피오트는 1979년 도입됐다. 군사 장비를 첨단화하고 과학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스라엘은 탈피오트 출신들을 활용해 과학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러나 한국은 카이스트 같은 전문 교육기관이 갖춰져 있다. 이미 과학 인프라가 구축돼 있는 셈이다.
국방첨단과학기술사관학교와 유사한 ‘과학기술전문사관제도’도 운영되고 있다. 과학기술전문사관지원센터는 홈페이지에 탈피오트를 벤치마킹한 제도라고 밝히고 있다. 교육 과정도 비슷하다. 이공계 대학 우수 학생을 사관후보생으로 선발해 재학 기간 국방과학교육을 실시한다. 매년 20명 정도 선발된다. 이들은 졸업 후 8주 동안 군사훈련을 받은 다음 소위로 임관된다. 그리고 나서 국방과학연구소 등 국방 연구개발 기관에서 3년 동안 의무 복무한다. 사관학교가 설립될 경우 제도가 중복으로 운영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국방위 내부에서는 돈을 들여 사관학교를 만드는 것보다 전문사관 육성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력 유출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3년 6월까지 과학기술전문사관 후보생 98명 중 22명이 임관을 포기했고, 이 기간에 의무 복무 3년을 마친 인력 79명 중 장기 복무를 신청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승진 기회가 없다는 점이 인력 유출 원인으로 지목된다. 과학기술전문사관은 대위 이상 계급으로 승진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관학교를 설립해도 인력 유출 문제는 해소되기 어렵다.
국방위 또 다른 관계자는 “(전문사관처럼) 교육비용이 무료기 때문에 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나면 돈을 더 많이 주는 곳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며 “(과학기술전문사관제도와) 기능이 중복되는 학교를 만들지 말고, 있는 제도에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기본적으로 군에 좋은 인력이 남아 있는 이유는 진급 때문”이라며 “해당 전문가들에게 진급 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하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양 연구위원은 “군 혼자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다른 부처들과 그림을 그려가면서 인력을 육성하는 식의 접근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의장실 관계자는 제도의 정상화를 추진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김 의장은 교육부총리 시절인 2006년부터 한국형 탈피오트 도입을 주장했다. 그러나 제도 도입은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지금의 과학기술전문사관제도가 만들어졌다. 이 관계자는 “일반 학부생들은 국방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며 “4년 동안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대학에서 각자 전공을 하다가 들어온 친구들의 (업무 능력은) 큰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인력 유출 문제에 대해 “(전문사관들이) 영관급에 올라가고 나중에는 장성까지 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놔야 하는데, 국방부가 정비를 안 하고 있다”며 “(국방부에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답했다. 서면 공청회 논란에 대해서는 “(서면 공청회의 경우는) 의장실이 행정적인 부분은 관여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국방위 행정실에 문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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