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이웃사람>은 이웃끼리 살인을 저지른다는 내용 탓에 촬영장소를 섭외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
영화 촬영 장소 선정을 위해 방문한 제작진이 처음부터 문전박대를 당한 건 아니다.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 부녀회는 김윤진 천호진 등 유명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으며 <이웃사람>이라는 제목만 보고 아파트 단지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것이라 여겨 일단 승낙했다. 그렇지만 영화의 내용을 파악한 후 뒤늦게 말을 바꾸기 일쑤였다.
연출을 맡은 김휘 감독은 “처음 섭외 제안을 하면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원작 만화의 내용을 알고 있는 젊은 부녀회 회원들이 정보를 공유한 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확인 후 거절을 당한 곳은 수십 곳이 넘고 연출부가 찾아다닌 아파트까지 따지면 몇 백 군데는 될 것이다”고 말했다.
결국 촬영 막바지에 섭외한 아파트는 부산 만덕동에 위치한 한 주공 아파트다. 이미 주민이 퇴거한 지 5년이 지난 아파트였기 때문에 손을 봐야 할 곳이 많았다. 실제 사람이 사는 아파트처럼 꾸미기 위해 조경까지 새로 하면서 만만치 않은 금액이 투입됐다.
역시 강풀의 웹툰을 영화화한 <아파트> 역시 아파트가 공포의 공간이 된다는 설정 때문에 장소 섭외로 골머리를 앓은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새로 지은 아파트를 섭외해 계약까지 해서 촬영을 진행했지만 주민들의 항의로 촬영이 중단되곤 했다. 결국 여러 아파트에서 나눠 찍은 분량을 한데 모아 사용해야 됐다.
그럼에도 개봉을 앞두고 영화의 배경으로 쓰인 경기도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연출자인 안병기 감독을 상대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5억여 원의 보상금까지 요구했지만 결국 법원이 제작진의 손을 들어줘 영화가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 영화 <무서운 이야기>. |
옴니버스 영화인 <무서운 이야기>의 또 다른 이야기인 ‘앰뷸런스’에 출연하는 김지영의 집이 장소 섭외로 애를 먹고 있는 제작진에게 단비 같은 존재가 됐다는 사실은 화제를 뿌렸다. 하지만 집을 촬영 장소로 제공한 주인공은 김지영이 아니라 그의 남편인 배우 남성진이다. 남성진은 동국대학교 동문이자 ‘해와 달’의 연출자인 정범식 감독을 돕기 위해 흔쾌히 집을 비워줬다는 후문.
<무서운 이야기>의 관계자는 “‘해와 달’은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이 공포의 장소로 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집 안에 있는 남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귀신으로부터 달아나려 한다는 내용을 알고도 선뜻 장소 섭외에 응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남성진에게 거듭 감사의 뜻을 표했다.
▲ 영화 <추격자>. |
실제 행정 명칭이 연쇄 살인 사건의 발생 장소로 사용되자 주민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추격자>가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할수록 불만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망원동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지자 마포구청 측이 <추격자> 제작진에 자원봉사활동을 하라고 요청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당시 나홍진 감독은 “망원동이란 지명을 서른이 넘어서 처음 들었다. 분명히 존재하는데 나는 모르고 있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망원동을 다 알더라. 그래서 그 공간을 선택했다. ‘망원’이란 글자에서 연상되는 의미도 있어 택했다”고 설명했다.
<추격자> 때 지명 때문에 한 차례 곤욕을 치른 나홍진 감독은 차기작인 <황해>에서는 ‘논현동 99-1번지’를 등장시켰다. 이곳은 주인공 구남(하정우 분)이 죽여야 하는 청부 살인의 대상자가 살고 있는 6층 건물의 주소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99-1번지에는 영화의 배경으로 쓰인 6층 건물이 존재한다. 실제 주소와 건물이 영화 속에서 그대로 쓰인 것.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이기 때문에 제작진은 또 다시 장소 섭외에 난항을 겪었다.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건물을 영화사용을 위해 장기간 빌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논현동 99-1번지가 최종 낙점된 이유는 <황해>의 제작사인 팝콘필름이 입주해 있던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제작사와 친분이 있는 건물주는 촬영을 허락했고, 덕분에 촬영을 마친 후에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또 다른 영화 관계자는 “장소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적 소재를 다룬 영화의 경우 주민들이 집값 하락이나 이미지 저하를 우려해 촬영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공포나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만드는 제작진이 촬영 전 풀어야 하는 가장 어려운 숙제라 할 수 있다”고 한숨지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