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는 고대의 사진’ 증명한 강운구 이번 전시…다양한 암각화 제시해
1941년생 강운구는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의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산업 사회로 바뀌는 한국 사회의 국면들을 끊임없이 기록해 왔다. 수입 사진 이론 잣대를 걷어내고 우리 시각언어로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적 영상을 개척하여 가장 한국적인 질감의 사진을 남기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로 사람, 그리고 사람이 사는 방법과 환경에 관해 관심을 두었던 강운구는 그간 같은 시대와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을 기록하고 해석해 왔다. 이번 ‘암각화 또는 사진’은 한국을 시작으로 중앙아시아, 러시아, 중국, 몽골 등 여러 나라의 광범위한 지역을 아우르고, 그가 사는 현시점보다 한참이나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강운구는 ‘50여 년 전 신문에서 접한 울산 반구대 암각화 속 고래는 왜 세로로 서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품었다고 한다. 궁금증을 품었던 강운구에게는 오래도록 그것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그간 아무도 왜 고래가 서 있을까? 하는 질문도 없었고, 해석한 대답도 없었다. 그래서 강운구는 스스로 그 답을 찾으려고 나섰다.
2017년 강운구는 고고학적 사진을 추구하겠다면서 이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강운구는 약 3년간 국내 암각화와 더불어 한국과 문화의 친연성이 있다고 일컬어지는 중앙아시아 계열의 지역인 파미르고원, 톈산산맥, 알타이산맥에 걸쳐 있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4개국과 러시아, 몽골, 중국 등 총 8개국의 30여 개 사이트를 답사했다. 마침내 강운구는 5000년 전쯤 제작된 암각화 속 사람들을 사진으로 포착해 냈다. 이 작품으로 그는 고대인들 삶을 통해 예술과 학문을 섞은 서사를 풀어낸다.
전시는 총 9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지하 1층 멀티 홀에서는 강운구가 방문한 8개 나라 여러 지역에 펼쳐져 있는 다양한 암각화 중 비슷한 형태를 띤 핵심 암각화 작업을 계절별로 재구성하여 전시 요약본으로 제시한다. 이어서 지하 1층 복도형 전시실부터 1층 전시실까지 중앙아시아 4개국과 러시아, 한국, 중국, 몽골의 암각화를 선보인다.
특히 전시 마지막 섹션인 제2전시실에는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 된 한국의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를 소개한다. 또한 전시 작품은 암각화로 대변되는 과거는 흑백사진으로, 현대인의 삶과 풍경은 컬러사진으로 구성된 이중구조를 가진다. 이를 통해 강운구는 암각화를 그린 고대의 사람들처럼 현시대의 시간성과 역사성을 기록하는 기록자의 시선으로 암각화는 곧 고대의 사진이라는 정의를 증명해 낸다.
이와 더불어 본 전시와 연계한 사진집이 발간된다. 강운구와 1987년 ‘경주 남산’ 책 등을 함께 작업했던 편집디자이너 정병규가 완성한 ‘암각화 또는 사진’에는 전체 연작과 함께 사이트별 강운구의 글과 작품 설명이 수록되었다. 특히 고래가 왜 서 있는가를 규명한 심도 깊은 에세이를 주목할 만하다.
한편, 전시 기간에는 아티스트 토크, 전시 연계 강연 그리고 전시관람객 참여 워크숍 등 다양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먼저 12월 9일에는 전시작에 얽혀 있는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작가의 작업 세계에 대해 강운구 작가에게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된다. 1월 27일에는 전시의 주제와 연계하여 깊이 있는 내용에 대한 강연과, 후배 사진가가 직접 진행하는 특별 도슨트가 전시 기간에 3회 진행될 예정이다. 이 밖에도 관람객이 직접 준비된 교구를 활용하여 진행되는 전시 투어 프로그램과 가족끼리 참여할 수 있는 어린이, 가족 대상 프로그램 등이 마련돼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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