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슨 말 오갔나 안철수 원장이 13일 서울시청을 방문해 박원순 시장을 만났다. 안 원장은 그 다음 날 5·18 묘역을 참배하는 등 지지율 회복을 위해 광폭행보를 나선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서울시청 |
안철수 원장의 서울시장 선거 불출마 뉴스가 타전되자마자, CBS 라디오에서 리얼미터에 연락이 왔다. 긴급 여론조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던 박근혜 후보의 야권 대항마로 안철수 원장을 상정하여, 여야 1대1구도로 조사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긴급 여론조사 결과, 안철수 원장이 야권단일 후보로 출마할 경우 43.2%의 지지를 얻어 여당 박근혜 후보(40.6%)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 소식은 정치권을 강타했다. 안철수 원장은 본인이 대선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루아침에 서울시장 후보에서 대통령 후보로 격상되는 순간이었다.
반면 당시까지 야권 후보 1위였던 문재인 후보는 하루아침에 ‘찬밥’ 신세가 됐다. 문 후보는 대선 후보로서 데뷔한 지 4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당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를 제치고 두 자릿수 지지율(11.5%)로 야권 1위, 여야 전체 2위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안 원장 등장으로 8.1%로 한 자릿수 지지율로 하락하면서 야권 2위, 여야 전체 3위로 내려앉았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 격이었다. 두 사람의 악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문재인 후보의 정치권 데뷔는 사실 안 원장처럼 화려하지 못했다. 문 후보가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포함된 때는 2011년 5월 3째주로 데뷔 첫 주 지지율은 3.3%로 초라했다. 당시 1위는 박근혜 후보로 33.1%, 2위는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로 11.3%를 기록했었고,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8.5%로 그 뒤를 이었다. 그 다음으로 오세훈 서울시장, 한명숙 전 총리, 김문수 경기도지사, 정동영 최고위원이 뒤를 이었다. 문 후보 앞에 7명의 잠룡들이 즐비해 있었다.
안 원장이 대선후보로 격상된 이후 대선 다자구도에서 1위로 올라선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10·26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물리치고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직후였다. 안 원장은 재보궐 선거 직후 26.3%를 기록, 26.1%를 기록한 박근혜 후보를 0.2%p 격차로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면서 다자구도에서 처음으로 선두로 올라섰다. 박 후보가 대선후보 다자구도에서 누군가에게 선두를 뺏긴 적은 2007년 대선 이후 처음이었다.
선두를 빼앗긴 박근혜 후보는 그로부터 1개월여가 지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나서야 다시 선두를 되찾았다. 장외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안철수 원장은 지지율이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 문재인 후보는 2012년 1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면서 지지율 만회를 하기 시작했다.
문 후보는 <힐링캠프> 출연 이후 지지율이 계속 올라, 2월이 되자 안 원장을 제치고 대선 다자구도에서 다시 2위로 올라섰다. 안 원장이 대선 후보로 편입된 이후 5개월 만에 야권 1위 자리를 되찾은 것이다. 당시 박 후보는 31.6%, 문 후보는 21.5%, 안 원장은 19.9%였다. 하지만 대선 양자구도에서는 여전히 안 원장이 박 후보를 앞서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4·11 총선을 맞이했다. 새누리당이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과반 의석 획득으로 총선에서 승리하자, 박근혜 후보는 양자구도에서도 안 원장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안 원장은 총선 이후 14주간 다자와 양자구도 모두 박근혜 후보에 밀리게 됐고, 문 후보 역시 낙동강 벨트의 기대이하 성적으로 안 원장에게조차 다시 밀리기 시작해 다자구도에서 3위로 떨어졌다.
총선이 끝나고 통합진보당의 종북 논란이 한창 진행되고 나서 올 7월이 되자,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 대선 경선을 앞두고 서서히 지지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문 후보는 급기야 리얼미터 7월 둘째주 주간집계에서 17.9%를 기록, 총선 이후 처음으로 안 원장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침묵이 길어졌던 안 원장은 15.7%를 기록하면서 3위로 내려앉았다. 1개월에 한 번가량 강연이나 인터뷰 등으로 지지율을 유지하던 안 원장은, 이른바 출마의사를 밝히지 않은 피로감 때문에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안 원장은 회심의 반격 카드를 꺼내들었다. 바로 대담집 출간이었다. 원래 안 원장이 출간할 책은 에세이집으로서 그 시기는 7월말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총선 이후 문 후보가 3개월여 만에 지지율이 회복되며 안 원장을 앞서자, 전격적으로 대담집 출간을 하게 된 것이다.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대담집 출간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출판사인 김영사 측이 밝힌 출간 과정에 따르면, 리얼미터 조사에서 문 후보가 다자구도에서 안 원장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선 것으로 보도된 7월 16일 밤 10시, 초고 없이 최종 원고가 대담자 제정임 교수로부터 김영사 측으로 긴급하게 전달됐다. 받은 원고가 편집이나 수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거의 완성된 수준이었다. 출판 작업은 나흘 만에 이뤄졌고, 책 만드는 데 소요된 시간은 59시간이었다.
안 원장은 책 출판 이후 지지율이 곧바로 상승했다. 여야 양자대결 구도에서 44.8%로, 47.7%를 기록한 박 후보를 오차범위 내인 2.9%p로 격차로 추격했고, 다자구도에서도 18.8%를 기록, 17.2%를 기록한 문재인 후보를 1주일 만에 다시 재역전시켰다.
그리고 나서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첫 TV토론이 있던 7월 23일, <<힐링캠프>>에 전격 출연한 안 원장은 박 후보를 양자구도에서 총선 이후 처음으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고, 다자구도에서도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박 후보를 앞섰다.
문 후보 역시 안 원장의 지지율 급등으로 지지율이 하락,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문 후보 입장에서는 총선 이후 야권 후보 1위로 올라서고, 당내 경선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안 원장의 대담집 출간과 예능 프로그램으로 좋은 기회가 날아간 셈이었다.
하지만 대담집 출간과 힐링캠프 효과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안 원장은 책 출간과 힐링캠프 출연 40여 일이 지나자 또다시 피로감에 의해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그와는 반대로 문 후보는 민주당 경선 공정성 논란과 더불어 예상 밖 흥행실패 속에서도 순회경선 연승으로 지지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민주당 순회경선의 관심은 9월 6일 광주·전남 경선에 쏠렸었다. 광주·전남 경선에서 문 후보가 1위를 차지할 경우 문재인 대세론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됐고, 안 원장을 다시 역전할 것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안 원장 측은 다시 회심의 카드를 꺼냈다. 그것이 바로 금태섭 변호사의 안철수 불출마 협박 기자회견이었다.
과녁은 박근혜를 향했지만, 파편이 문재인에게로 튀었다. 문 후보는 안 원장과 함께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하락했고, 민주당 내부, 그리고 문재인 지지층으로부터 기자회견 일시 선택과 관련한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철수의 ‘타이밍’ 정치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 뒤 안 원장은 일주일간 지지율이 내리 하락했다. 새누리당 지지층은 물론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지지율이 하락했다. 타이밍 정치에 따른 견제심리였다. 안 원장이 급기야 문재인 후보에게 야권 단일화 양자대결에서 처음으로 9월 10일 역전되었는데, 그날 오후 3시 아니나 다를까 유민영 대변인이 안 원장의 출마와 관련하여 민주당 경선 후보 확정 이후 거취를 표명하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이 또한 안 원장 측의 메시지가 시점 선택에 있어서 순수하지 못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안 원장은 정준길 전 공보위원을 태웠던 택시기사의 인터뷰로 지지율이 다시 회복 중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그다지 녹록지 않다. 문 후보는 어쨌거나 전당대회 효과로 다자구도 지지율에서도 안 원장을 앞설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다자, 양자 구도 모두 안 원장을 앞서게 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안 원장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던 대선 출마의 명분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고, 단일화 과정에서 쓸 수 있는 카드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한 상황에서 안 원장은 9월 13일 박원순 시장을 만났고, 14일 5·18 묘역을 참배했다. 문 후보의 지지율 상승에 앞서, 하락한 본인의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광폭행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대선 출마를 최대한 늦추면서 문 후보를 견제하던 안 원장의 타이밍의 정치가 대기만성이 될 것인지, 만시지탄이 될 것인지 주목된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문재인 상승? 좀더 기다려봐
한국갤럽 정지연 이사는 “8월 마지막 주부터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안철수 원장을 앞서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한 정 이사는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를 놓고 조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9월 첫째 주 발표한 결과를 살펴보면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 가운데 문재인 후보의 지지도가 37%로 안철수 원장(36%)보다 처음으로 높아지기 시작했다”며 “지지정당이 없다고 밝힌 응답자의 경우 여전히 안철수 원장(33%)에 대한 지지율이 문재인 후보(12%)보다 높다. 하지만 민주당 경선이 끝난 이후 예정된 양자대결에서는 그 격차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라고 내다봤다.
한국갤럽은 민주당 경선이 모두 마무리되고 야권후보가 결정되면 9월 셋째 주부터 야권단일화 여론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리얼미터의 경우 100% ARS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한국갤럽은 조사면접원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 이사는 “ARS 방식의 경우 응답률이 낮고 정치관심층의 반영비율이 높게 나타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고 전했다. 반면 한국갤럽의 조사면접원 방식은 응답자들이 조사원에게 자신의 본심과 다른 의견을 밝힐 가능성이 있어 여론조사를 살필 때 두 차이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한편 대선 100일 전을 맞아 각 언론사들이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발표한 대선후보 지지율을 살펴보면 문재인 후보의 상승세가 돋보인다. 지난 8일 한국일보와 한국리서치가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야권 단일후보 조사에서 안 원장의 지지율이 42.5%로 문 후보(36.9%)와 오차범위 내에 있었다. 같은 날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포함한 3자 구도에서 안 원장이 28.6%로 문 후보(14.6%)를 2배 정도 앞섰지만 양자대결에서는 안 원장 43.0%, 문 후보 40.4%로 접전을 이뤘다.
한겨레신문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유권자 700명으로 대상으로 실시한 야권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안 원장(40.9%)은 민주당 후보(42.6%)에게 근소한 차이로 뒤지는 결과가 나왔다.
윤희웅 KSOI 조사분석실장은 “이번 조사는 문재인 후보가 아닌 민주당후보로 질문했기 때문에 안 원장을 앞선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경선이 끝난 이후 문재인 후보가 다른 후보들의 지지율까지 그대로 흡수할지는 미지수”라며 “여전히 중도층과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은 안철수 원장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문 후보가 앞서기 시작했다고 보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 안 원장이 출마를 선언한 이후 명절 전까지 누가 승기를 잡느냐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