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위 도중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 중인 김화경 목사. |
지난 9월 25일 한국 개신교계 최초로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에서 교회세습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교회 권력’ 대물림을 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길자연 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71)이 담임목사로 있는 서울 왕성교회가 최근 당회를 열어 아들 길요나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넘기는 안을 통과시킨 것으로 알려져 ‘세습 금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특히 감리교가 국내 개신교단 중 처음으로 교회 세습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지 불과 이틀 만에 벌어졌다는 점에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한기총 관계자 등에 따르면 왕성교회는 지난 9월 27일 저녁 당회를 열고 길요나 목사를 후임 목사로 추대하는 안건을 투표에 부쳐 출석 당회원 99명 중 85명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왕성교회는 이달 7일 공동의회를 열어 세습 찬반 투표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나 당회 결정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개신교 최대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 합동) 소속인 왕성교회는 국내의 대표적인 대형 교회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교회는 지난 3월 아들 길요나 목사가 있는 과천왕성교회와 합병을 결의하는 등 사실상 세습을 준비해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교계 거물급인 길자연 목사의 교회 세습 소식을 접한 한국목회자개혁중앙협의회 등 개혁파 목회자들은 왕성교회 세습 반대를 주장하며 시위를 전개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일부 목사는 시위 도중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실제로 개신교계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김화경 목사는 지난 3일 오후 6시 30분 경 서울 왕성교회 앞에서 교회세습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최근 감리교단이 교회세습 금지를 교법으로 정한 가운데 한기총 회장을 세 번이나 지냈고 합동총회장을 역임한 교계 어른인 길 목사가 솔선수범해야 함에도 교회를 세습하려는 움직임에 경종을 울리려고 했다는 게 시위 이유였다. 문제는 김 목사가 시위 도중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가해자는 왕성교회 소속 교인(4~5명)으로 김 목사는 울대를 맞고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김 목사는 이들로부터 준비해간 시위 현수막을 뺏기고 일부는 파손당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김 목사는 112에 신고, 경찰이 출동해 현수막을 돌려받았다. 김 목사에게 폭행 등 위협을 가한 이들은 경찰조사를 받은 상태다. 김 목사는 폭행 당한 다음날(4일) 오후 2시 왕성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었으나 폭행 후유증으로 병원에 입원해 회견은 무산됐다.
김 목사는 지난 5월에도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길 목사를 서울 중앙지검에 고소한 바 있다. 합동총회에서 모금한 아이티 지진피해 구호기금 횡령 의혹 사건에 길 목사가 관련돼 있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이에 검찰은 지난 9월 17일 관할인 남부지검으로 사건을 이송, 길 목사의 혐의 내용을 조사 중에 있다.
폭행 사건을 넘어 법정 공방전으로 비화되고 있는 ‘교회 세습’ 논란을 둘러싼 개신교계의 이전투구가 향후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1000만 교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