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기 조건 적금 상품 두고 “너무 길다” 지적…주택 대출도 “서울에선 비현실적”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6월 출시한 청년도약계좌는 만 19세에서 만 34세 이하 청년이 5년(60개월) 동안 매달 최대 70만 원을 적금할 수 있는 상품이다. 5년 동안 납입하면 은행이자와 정부기여금을 합산해 최대 6%의 금리와 비과세 혜택으로 만기 때 약 5000만 원의 목돈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해 왔다. 그런데 가입을 희망하는 청년들 입장에선 ‘5년’이란 만기 조건이 큰 장애물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소득 수준에 비해 일시적으로 목돈이 들어갈 일이 많은 상황에서 5년 동안 적금을 해지하지 않고 계속 납입만 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사는 직장인 하 아무개 씨(25)는 “청년도약계좌 이용 시 4200만 원을 넣어 5000만 원을 최종 수령할 있는 혜택은 매력적이지만 의무 가입 기간이 그 장점을 전부 상쇄시켜버린다”며 “청년희망적금의 만기 조건이 2년이었던 것을 고려할 때 5년 조건은 너무 부담이 큰 기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혜택이 확실한 만큼 만기 조건이 3년 정도로 조정된다면 가입을 고려해볼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A 씨(26)는 “5년 사이에 결혼을 할지도 모르고, 차를 살지도 모르는데 덜컥 가입을 했다가 중간에 큰 돈이 필요하면 어떻게 하나”라며 “그럴 돈으로 전세 대출금을 갚는 것이 더 이득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부담감은 단순 호소에 그치지 않고 실제 중도 해지 선택으로 증명될 가능성이 높다. 청년도약계좌보다 만기 조건이 짧고, 최대 납입 금액도 적은 청년희망적금의 중도해지비율이 근거다. 2022년 출시된 청년희망적금은 월 최대 50만 원을 2년 동안 납입하면 최대 10%의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총 289만 5043명이 최초 가입했는데 지난해 12월 말 기준 무려 86만 1309명이 중도 해지해 30%를 훌쩍 넘는 중도해지율을 보였다. 이보다 만기 조건이 3년이나 더 긴 청년도약계좌의 경우 중도해지율이 훨씬 클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기 충분하다.
이런 지적에 대한 개선책의 취지로 정부가 내놓은 추가 대책에도 불구하고 수요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다. 현재 정부는 청년도약계좌 특별중도해지요건(사망, 해외이주, 천재지변, 퇴직, 폐업, 입원 치료, 첫 주택 구입)에 ‘결혼’과 ‘출산’을 추가하기로 하고, 관련 시행령 개정을 앞두고 있다. 이들 사유로 계좌를 중도 해지할 경우 정부 기여금과 비과세 혜택은 그대로 제공되도록 했다. 더불어 3년 이상 가입을 유지한 사람이 중도 해지를 하는 경우에도 비과세 혜택을 적용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청년들 입장에선 이 3년의 기간 조건도 여전히 부담으로 느껴진다는 호소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B 씨(22)는 “2년 이상 가입한 사람에 대해 비과세 적용해주는 식으로 기준을 낮추면 좋을 것 같다”며 “청년도약계좌를 3년 이내 중도해지하면 청년도약계좌만의 특별한 혜택을 받는 게 없다고 느껴져서 개설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청년희망적금 만기자가 청년도약계좌 연계 가입을 통해 일시 납부를 했을 때 만기가 똑같은 점도 문제로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청년도약계좌 가입자 유치를 위해 청년희망적금을 청년도약계좌로 연계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청년희망적금 만기자가 만기 환급금을 청년도약계좌에 일시 납입하면 최대 18개월을 낸 것으로 간주하고, 이후 매달 설정한 납입금액을 넣는 식이다. 그러나 일시 납입해도 만기는 60개월에서 18개월을 뺀 42개월이 아닌 똑같이 60개월이다. 만기액을 18개월 동안 예금상태로 거치하고 있는 셈이다. 오는 3월에 청년희망적금이 만기되는 직장인 선 아무개 씨(26)는 “청년희망적금 만기액을 도약계좌에 일시 납부 했을 때와 연계 없이 나중에 신규 가입 했을 때를 비교해봤는데 그렇게 혜택이 차이 나는 것도 아니더라”라며 “일시 납부를 해버리면 1200만 원이 넘는 돈이 묶이는 건데 차라리 재테크, 투자를 하거나 고금리 저축계좌에 두면 더 이득일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2월에 출시 예정인 청년주택드림 청약통장은 최대 4.5% 금리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청약통장이다. 기존 청년 우대형 주택청약을 확대 개편한 것으로, 소득기준 연 5000만 원 이하이면서 무주택자인 만 19세 이상 만 34세 이하 청년이 신청할 수 있다. 청년주택드림 청약통장을 1년 이상 가입하고 1000만 원 이상 납입한 가입자가 주택청약에 당첨되면, 청년주택드림 대출을 이용할 수도 있다. 청년주택드림대출은 청년주택드림 청약통장과 연계된 것으로, 주택 분양가격의 80%를 2%대 저금리로 대출 지원을 해준다.
문제는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주택의 조건이다. 분양가 6억 원 이하, 전용면적 85㎡이하인 주택만 대출이 가능하다. 서울에서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아파트를 찾기란 쉽지 않다. 부동산R114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서울에서 분양된 1만 6400여 가구를 조사한 결과 6억 원 이하이면서 전용면적 85㎡을 만족하는 가구는 전체의 약 9.8%, 1610여 가구에 불과했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서울에는 분양가 6억 원에 전용면적 85㎡인 아파트가 많지 않다”며 “대체로 수도권(경기·인천) 지역에서나 나올 수 있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의 일반적인 경제력을 고려하면 이러한 조건의 청년주택드림청약통장을 실제로 활용하거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청년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청년 세대 안에서도 자산 불평등이 존재하는데, 청약통장을 활용해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청년은 굉장히 일부 계층에 국한돼 있다”며 “청년 1인 가구 중 세입자로 살고 있는 비중이 80%가 넘는다”고 말했다. 지 위원장은 이어 “수십 년 동안 아파트를 계속해서 공급해오고 그렇게 많은 집들을 지었는데도 계속해서 세입자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10명 중 4명이고, 특히 서울은 10명 중 6명꼴이다”라며 “세입자로 살고 있는 청년들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들이 필요하건데, 정부에서는 ‘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집을 사야한다’는 식의 정책만 설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C 씨(26)는 “요즘은 집사고 70년 갚아나가는 구조인데 왜 빚을 내서 집을 사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연계 상품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지만, 저출생의 문제가 단순히 ‘집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청년금융상품 중에는 이용을 희망해도 올해부터는 가입할 수 없는 제도도 있어 논란이다.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올해 신규가입이 불가능해져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이 제도에는 신규 입사자가 가입할 수 있는 고용노동부 주관 ‘청년내일채움공제와 중소벤처기업부 주관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 플러스’가 있다. 고용노동부 소관의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청년이 2년간 400만 원을 납입하면 기업부담금과 정부지원금을 합해 120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 플러스는 제조업과 건설업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에 3년간 근로자가 600만 원을 적립하면 만기 때 정부와 기업의 자금을 더해 총 1800만 원을 모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두 제도 모두 올해부터 신규 가입자를 받지 않는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일요신문i’에 “청년도약계좌 같은 자산 형성 사업이 많이 생겼고, 공제 가입자의 중도해지율도 올라가는 등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올해부터는 신규 지원이 중단됐다”며 “기가입자에 대해서만 지원을 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청년내일채움공제플러스는 제조업과 건설업에 한정해서 모집을 했었는데 청년들이 그 업종으로 취업을 많이 하지 않다보니까 가입자가 많지 않아서 신규가입을 더 이상 안 받게 된 것으로 안다”며 “해당 제도를 대체할만한 혜택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의 장기근속을 돕기 위한 저축 제도가 신규 가입이 어려워질 경우 점차 중소기업 취업률 하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안 그래도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으로 청년들이 가지 않으려 하는데 청년내일채움공제 같은 유인책을 늘리지는 못할망정 없애면 어떡하나”라며 “대체할 다른 제도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주요 청년금융상품 제도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에 대해 전문가들은 소득 수준이나 연령 측면에서 최대한 많은 청년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그 수혜 대상과 조건을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도약계좌는 어느 정도 자금의 여유가 있는 청년들이 활용할 수 있는 건데 저소득층 청년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제도들을 확충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청년금융상품의 연령대가 대부분 만 19세에서 34세까지만 적용이 되는데 보통 사회에 진출하는 나이인 24세 이상부터 38세 이하로 연령대를 조정하면 좋을 것 같다”며 “사회생활을 주로 하는 연령대 청년들이 자산 형성하는 방향으로 제도 기준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주형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에서 다양한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산 형성 정책이나 사업이 아니더라도 불안정 노동을 하는 청년, 금융취약계층에 있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금융 교육 사업이나 신용 개입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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