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 측 “실질적 경영권 담보해주지 않아”…해운업계 불황 예고, 향후 재매각 여부 불투명
#의견 차이 좁히지 못한 까닭
산은과 해양진흥공사(해진공)는 2월 7일 HMM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하림그룹과의 매각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고 발표했다. 이미 한 차례 기한을 연장한 양측은 6일 자정까지 협상을 이어가며 합의를 시도했지만 끝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결렬의 배경으로는 정부의 경영권 개입 요구와 영구채 전환 이슈가 거론된다. 투자은행(IB) 업계 등에 따르면, 배당 제한과 잔여 영구채 주식 전환의 3년 유예 등을 요구해 온 하림 측은 협상 막바지에 이르러 매각 측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산은·해진공이 보유한 1조 6800억 원어치의 영구채가 유예 없이 곧바로 주식으로 전환되면 경영권 인수 후 하림 측은 3년 기준 최대 2850억 원에 이르는 배당금을 포기해야 한다. 지분율이 57.9%에서 38.9%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림이 이를 받아들였는데도 마지막까지 산은 측이 ‘경영권 개입’을 요구하자 결국 하림이 지쳐 손을 들었다는 것이다. 산은 측이 하림의 재무적투자자(FI)인 사모펀드 JKL파트너스에게도 5년간 HMM 주식을 보유하고 있도록 요구한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하림은 협상 결렬 발표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하림 측이 8조 원 정도의 인수자금 조달계획을 수립한 상태였으나 은행과 공기업으로 구성된 매도인 간의 입장 차이가 있어 협상이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특히 하림 측은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 주지 않고 최대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기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산은과 해진공 측이 매각에 미온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협상 과정에서 하림이 산은 측의 양보를 이끌어낸 내용이 없다. 협상 과정에서 하림 측이 인수금융을 조달한 사모펀드 JKL파트너스에 대한 주식 의무 보유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여달라는 중재안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매각 과정에서 딜을 성사시키려는 우호적인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에 매력적인 인수자였으면 산은과 해진공도 이렇게 까다로운 태도를 고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해 10월에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HMM의 적격 인수자가 없다고 판단돼도 이번 입찰에서 반드시 매각하겠느냐”는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 질문에 “적격 인수자가 없다면 반드시 매각할 이유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답변한 적 있다.
산은의 자세와 별개로 준비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황용식 교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같은 경우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가 무산되자 산은이 미리 큰 그림을 그리고 모든 걸 다 세팅한 후에 대한항공에 러브콜을 했다”라며 “산업 정책을 맡고 있는 국책은행인 만큼 산업 전반을 들여다보고 마땅한 인수자를 적극적으로 찾아 준비를 했다면 이런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별 준비 없이 입찰하는 바람에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편에서는 협상 결렬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HMM 육해상노조는 2월 7일 파업 예고를 철회하는 입장문을 내면서 “산은과 해진공의 전향적인 결정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은이 배임 등으로 고발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국가 해운산업의 보호를 위해 굉장히 중요한 결정을 했다”며 “앞으로도 공공기관이 중요한 결정을 합리적으로 내릴 수 있도록 국가가 의사결정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가 더 녹록지 않을 수도
HMM은 다시 재매각을 기다리며 채권단 관리 체제로 돌아가게 됐다. 문제는 매각 타이밍을 놓치면서 앞으로가 녹록지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우선 해운업의 장기 불황이 예고되어 있어 마땅한 인수자를 찾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향후 2~3년간 MSC를 필두로 전세계 각국의 선사들이 기발주한 수백만TEU 이상의 컨테이너선들이 인도될 예정이다. 컨테이너선의 공급과잉 현상으로 인한 운임의 지속적인 하락이 예고된 상황이다. 다만 최근에는 홍해 사태로 단기운송계약 운임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2000선을 넘어 고공행진하고 있지만 홍해 사태가 진정될 경우에 다시 1000선 아래로 급전직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해운동맹 재편 역시 큰 위기다. 글로벌 5위 선사 하팍로이드가 HMM이 속한 ‘디 얼라이언스’를 탈퇴하고 머스크와 ‘제미니 협력’이라 불리는 신규 장기 운항협력 계약을 맺기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팍로이드는 지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기간 미국 서안 로스앤젤레스항, 롱비치항의 공급망 붕괴와 지연 사태, 수에즈 운하 마비 사태와 홍해 사태 등으로 인해 디 얼라이언스 소속 선사들의 정시성이 급격히 떨어진 점에 회의를 느끼고 탈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머스크와 하팍로이드 두 선사의 넷제로(탄소중립) 달성 예정 시점도 다른 선사들에 비해 5~10년 정도 일러 경영철학이 맞아떨어진다. 두 선사에 비해 정시성도 떨어지고 넷제로 달성 예정 시점도 늦는 HMM이 이 협약에 끼어들기는 쉽지 않다.
다른 해운동맹인 오션 얼라이언스와 MSC도 시장 점유율이 각각 30%, 20%에 달하기 때문에 HMM의 존재가 아쉽지 않다. 하팍로이드가 이탈한 디 얼라이언스로 이스라엘의 짐라인이나 대만의 완하이라인 등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지만 점유율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에 서비스와 운임 경쟁력 측면에서 현재보다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은 “여러모로 타이밍이 나쁘지만 그래도 재매각 시점을 최대한 빠르게 잡아야 한다. 디 얼라이언스가 이미 해체 위기에 있고 홍해 사태는 일시적인 이벤트이기 때문에 5월이 지나면 거의 해소될 것으로 예측돼 운임이 다시 하락할 것”이라며 “향후 재매각 입찰 시에는 반드시 글로벌 선사들과 경영철학이 맞고 대형 선박 투입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이 인수 예정자로 선정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와 관련, 산은 관계자는 “앞으로의 행보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 향후 관계 기관 간 협의를 통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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