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국내 최고 재벌 중의 하나인 A 그룹은 임직원 수가 많아서 그런지 지난해부터 빈발하고 있는 성추문 때문에 가히 ‘성추행의 왕국’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것은 지난 8월 A 그룹의 금융계열사에서 모 임원이 사내 여직원을 성추행한 일이 사건이다. 회사 쪽에서는 쉬쉬했지만 사건 소식은 일파만파로 번져나갔다. 그러자 회사 쪽에선 사건을 일으킨 임원의 사표를 받았다고 밝혔었다. 퇴직이 아니라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 처리를 했다는 것.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자 파문을 우려해 서둘러 불을 끄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애초 사직 처리했다는 그 임원은 9월 말까지도 여전히 그 회사에 몸을 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재계에선 A 그룹의 사내 감사시스템이 다른 그룹보다 엄격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성추문과 관련된 뒤처리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관전평이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이는 지난해 A 그룹의 또다른 계열사에서 벌어졌던 ‘사랑과 음모’ 시리즈를 보면 더욱 그렇다.
A 그룹의 또다른 제조업 계열사는 국내 대표기업으로 분류되는 회사다. 이 회사의 전무 상무급이면 다루는 금액만 수천억 원대에 이른다.
지난해 상반기 이 회사의 대외관계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전무-상무-부장급 책임자들의 인사에 변화가 있었다. 업계에서도 잘 알려진 이들인 만큼 이들의 보직 변화는 업계의 화제가 됐다.
부서 책임자였던 X 전무가 퇴직하고 Y 상무는 보직을 유지하고 Z 부장은 다른 계열사로 발령난 것. 수년째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던 X, Y, Z 씨는 나이가 엇비슷하다 보니 소위 말하는 ‘인사정체’ 상태였다. 그런데 촉망받는 엘리트로 A 그룹에 스카우트됐던 X 전무가 뜬금없이 사표를 내고 Z 씨가 전출을 가면서 최종적으로는 Y 씨의 한판승으로 싱겁게 끝난 것이다.
당연히 업계에서는 그 내막에 관심이 쏠렸다. 알고보니 X 씨가 사내에서 여직원과 ‘로맨스 그레이’를 즐기다가 그룹 감사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X 씨가 스스로 사표를 썼다는 것. 연애당사자로 지목된 여직원도 결국 이직을 했다.
그렇다면 X 씨의 ‘성추문’을 그룹 감사팀에선 어떻게 알게 됐을까. X 씨의 ‘로맨스 그레이’는 한쪽 당사자가 ‘연애’를 하는데 아무런 결격사유가 없었고 X 씨 가족 쪽에서도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었던 걸로 알려졌는데 말이다.
업계에선 이 사건이 ‘Y 씨가 투서’했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는 얘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안 X 씨가 불같이 화를 냈다는 얘기도 함께 돌았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Y 씨가 강남 요지에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이는 가족 명의였고 시설물은 임대를 준 상태였기 때문에 그가 직접 운영하지는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Y 씨 주변에선 이런 루머가 광범위하게 유포된 배경으로 X 씨를 지목하는 분위기다. Y 씨가 자신과 관련된 사안을 그룹 측에 투서한 것에 대해 ‘부동산 관련 투서’로 맞대응을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X 씨나 Y씨는 투서 사실에 대해서 “그런 적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이 X, Y, Z 삼인방은 Z 씨가 또다른 추문으로 대미를 장식하며 또 한번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상반기 새로운 계열사로 발령난 Z 씨는 그 회사의 부서 책임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그는 부서 회식 마무리 장소로 노래방에 갔다가 손을 잘못 간수했다. 여직원 두 명의 가슴을 더듬었다는 것.
‘사고’ 이후 그 상무는 “술이 취해서 인사불성이었다”며 사태 수습에 안간힘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도 살아남고 멀쩡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다. 때문에 그 회사 주변에선 엄격하기로 소문난 A 그룹의 그룹 감사를 그가 어떻게 통과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일각에선 A 그룹의 그룹 감사가 ‘선택적으로 작동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사내 정치’가 다른 어느 그룹보다도 심한 게 A 그룹이라는 것이다. 점심식사 시간에 다른 어느 그룹보다 계열사 사람끼리 점심 약속이 많고 사내 정보 교환에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어쨌든 X 씨는 A 그룹 퇴사 이후 다른 그룹에 스카우트돼 실세로 활동하고 있고 그의 연애대상자로 지목됐던 이도 다른 회사로 옮겨 일하고 있다.
이런 직장 내 성추문 사건이 터지면 대개는 하위 직급인 여성이 이중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불명예도 뒤집어쓰고 회사도 그만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
하지만 지난해 10월께 모 회사에서 벌어진 사건은 여직원의 당찬 대응으로 이런 선례를 깼다.
전자 제조업체로 대기업 반열에 올라선 B 회사의 임원 V 씨는 남직원 한 명과 여직원 한 명과 함께 외부 손님에게 일식당에서 식사대접을 했다. 자리가 술자리까지 늦게까지 이어지자 V 씨는 자기 차의 운전기사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술자리가 끝나자 이 임원은 자신의 차에 남직원과 여직원 모두를 태웠다. 세 사람의 집이 모두 비슷한 동네였기 때문이다. 먼저 남자 직원이 내리자 뒤에 앉았던 여직원이 조수석으로 옮겨탔다.
차가 여직원 사는 곳에 도착하자 V 씨는 여직원이 아파트 앞에서 내리겠다는데도 굳이 차를 지하주차장으로 몰고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단이 났다. V 씨가 여직원을 성추행한 것. 여직원은 거세게 반항해 그 자리를 탈출했고 V 씨의 시도는 ‘미수’에 그쳤다.
다음날 B 회사는 난리가 났다. 놀란 여직원이 밤새 고향의 부모님께 남자친구에게 모두 알리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여직원의 부모님과 여직원이 회사 오너인 부회장실로 ‘쳐들어’간 것.
부회장 앞에 불려나온 V 씨는 그날 밤 있었던 일을 시인하며 ‘각서’를 썼고 여직원의 부모는 부회장에게 징계를 요청했다. 형사처벌로 갈 수도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V 씨는 사직서를 냈다.
재미있는 점은 B사의 부회장이 ‘그래도 내가 데리고 있었던 사람’이라며 친분이 있던 재벌을 통해 V 씨를 모 금융사의 임원으로 추천한 것이다. 그 여직원도 B 사에서 능력을 평가받으며 지난 봄 결혼도 하고 회사생활을 잘하고 있다. 공교로운 점은 V 씨가 옮겨간 그 회사에 그 여직원의 남편이 촉망받는 젊은 사원으로 다닌다는 점이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