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고문’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려고 한 영화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두운 역사를 함께 아파해야할 책임이 있다.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이 그 총대를 멨다.
6일 오후 부산 해운대 CGV 센텀시티점에서 열린 영화 <남영동1985>(감독 정지영)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정지영 감독과 배우 박원상, 이경영, 명계남, 서동수, 김중기가 참석했다.
영화 <남영동1985>는 <부러진 화살>(2012)로 화제를 모았던 정지영 감독의 신작으로 고 김근태 고문이 22일 동안 겪은 고문 상황을 담은 작품으로 김근태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했다.
영화의 전반을 차지하는 고문 장면은 보는 내내 관객을 고통스럽게 한다. 정 감독은 “제가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고민했던 것은 내가 묘사하는 고문이 실제로 고문 받았던 사람들처럼 아플 수 있을까, 이 작품은 관객들도 그만큼 아파해야 하는데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라며 “실제 그런 장면을 찍을 때 너무 힘들었다. 찍고 난 후 후유증으로 한참을 힘들었다. 제 영화 인생 동안 가장 찍기 힘들었던 작품이다”고 털어놨다.
옆에 있던 명계남도 “촬영하면서 감독님이 고문당하시는 것을 봤다. 당신 스스로가 고문당하는 것처럼 함께 고통을 느끼며 촬영했다”고 덧붙였다.
고문이 고통스러웠던 것은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문당하는 장면들을 맨몸으로 소화한 박원상은 “원래 체력이 좋다. 어떤 선배는 저에게 노비의 몸을 갖고 태어났다고 했다”고 말해 주변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그는 “고문 연기가 쉽지는 않았다. 고문을 가하고 지켜보고 당하는 입장 모두가 쉽지 않았다. 저는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임했다”고 답했다.
고문전문가 이두한 역을 맡은 이경영은 “저는 고문 내내 즐거웠다. 만약 제가 고문하는 장면에서 적당히 하거나 상대 배우를 염려해 살살 했다면 촬영은 지연됐을 것이다. 편집본을 보면서 좀 더 했으면 어떨까라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기 고문을 제외한 모든 고문은 사실과 같을 정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박원상 씨에게 물고문을 할 때 극중의 김종태가 아닌 박원상의 목소리가 나왔을 때 이쯤에서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라며 힘겨웠던 고문 장면에 대해 설명했다.
정 감독이 배우들과 고통을 감수하고 영화를 만든 것은 과거의 어두운 역사가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가 대선 전인 11월 전에 개봉을 할 생각이다. 이 작품이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영화감독이 자신의 작품이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감독의 보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 감독은 “대선 후보들을 반드시 초청할 것이다. 초청에 응해주실 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 착품은 대선후보들이 다 보셨으면 좋겠다. 바로 이 작품을 통해 통합과 화해의 길로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며 심경을 전했다.
영화 <남영동1985>는 오는 11월 개봉할 예정이다.
부산 =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