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잘한 거 맞지? 박근혜 후보와 관계가 소원했던 원조 친박 김무성ㆍ유승민이 전면에 다시 등장하면서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돌아온 팽자(烹者)는 박근혜를 살릴 수 있을까. 김무성 전 국회의원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최측근 자리로 귀환하면서 정치권의 이목이 김 전 의원에게 급격히 쏠리고 있다. 정치권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퇴출당한 김무성의 복귀를 두고 과연 김무성이 그때(2007년 대선후보 경선)와 같은 마음으로 움직일까, 그때만큼 열성적으로 일할까, 아니 그때보다 더 잘할까, 그가 박 후보를 살릴까 죽일까를 두고 내기까지 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2007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김 전 의원은 박근혜 캠프의 ‘군기반장’ 역할을 유일하게 해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고, 그 일을 하려면 누구를 통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아는 마당발이어서 그의 말은 통했다. 박 후보 캠프가 느슨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누구나 아는 이 시점에 김무성의 등장은 ‘내무반 허리(상병)’의 복귀를 의미한다. 자취를 감췄던 ‘좌장’의 등장은 거중조정자의 출현을 뜻한다는 이야기다. 박 후보의 최측근, 일명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보좌진 4인방’도 김 전 의원 앞에서는 꼬리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의원이 박 후보 곁을 떠난 것이 4인방의 견제와 거기에서 생긴 갈등과 오해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김무성 성격 상 안하무인격으로 나오는 4인방을 이번에는 절대 그대로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어쨌든 물밑에서 박 후보를 도왔던 ‘2007년 그때 그 사람들’이 다시 박 후보 주변으로 모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의리’를 중시하는 김 전 의원의 성격상 ‘팽박(烹朴)’으로 박탈감을 겪었던 이들의 결집이 예고된다.
김 전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라서 정치를 시작했다. 상도동계, 또는 YS계로 분류되는 그는 ‘옛날 정치’의 낭만을 알고 있다. 국회 기자실을 지키는 각 지역 차·부장급 올드보이들에게 김무성은 ‘정보와 전략’의 수문장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김무성을 박근혜의 독으로 보는 것은 그의 거친 입에 기인한다. 그가 2007년 경선 당시 “이러다 박근혜 후보가 질 수도 있다”는 말을 반복하다 캠프 내에서 그에게 저항하는 부류까지 생겨난 것은 당시 취재하던 기자들 사이에서 두루 아는 이야기다. 김무성이 박 후보를 두고 ‘가시X’ 운운한 것, 그런 내용이 여러 루트를 통해 박 후보에게 직접 전달된 것도 그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 뜻이 왜곡돼서 (박 후보에게) 전달되는 일이 잦아졌다. 사실 내 말이 거친 것이 사실이고 그것은 내 약점이다. 하지만 YS를 모실 때에도 측근들끼리 모이면 YS 욕을 했는데 그것은 애정이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중앙선대위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선대위의 간판이자 얼굴이란 점에서 그의 설화 가능성은 폭발성을 가진다. 그가 최근 “박근혜 대선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어떠한 임명직에도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서 기자들의 추가 질문을 피해 도망치듯 나간 것도 그 스스로 그의 ‘입’을 믿지 못한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또 김무성의 성격상 아군도 많지만 적도 적지 않다는 사실, 그의 출현이 저축은행 사태나 가덕도 신공항 무산으로 등을 돌린 부산 민심을 달랠 수는 있지만 그 외 지역의 ‘표 확장’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분석, 김무성이 혹 차기 보궐선거(부산 포항 등)를 염두에 두고 정치판에 다시 등장한 것이 아니냐는 ‘진짜 목적설’ 등 비판적인 해설이 나오는 것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특히 김무성이 박근혜와 멀어진 이유, 즉 이명박 대통령이 권유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박 후보의 반대에도 받아들인 것, 또 정부의 세종시 수정 움직임에 박 후보의 뜻을 거슬러 찬성한 것을 두고 볼 때 김무성은 “(보스의 성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정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누구의 밑에 있기에 김무성의 권력의지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내 정치적 꿈은 ‘국회의장’”이라고 말하곤 한다.
김무성의 등장으로 꼴이 우스워진 사람은 바로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이다. 김무성의 퇴장으로 부산의 좌장 자리에 우뚝 선 서 사무총장은 김 전 의원에게 총괄선대본부장직을 내줘야 했다. 이 둘이 결집해 힘을 키울지, 반목해 균열을 불러올지 지켜볼 일이다.
올 초 “박 후보가 잘못된 보좌를 받고 있다”는 발언이 보도되면서 박 후보의 눈 밖에 나 서로 소원해졌던 유승민 의원. 그 역시 팽자(烹者) 중 한 명이었는데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부위원장으로 복귀했다. 박근혜 대표 시절, 대표실에 드리운 햇빛이 박 후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는데도 절대 커튼을 대신 쳐주지 않았던 사람,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개명할 때에도 끝까지 반대하면서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으로 심판받자”고 주장한 사람(그는 지금도 한나라당이라고 부른다), 친박계에서 유일하게 쓴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으로 꼽히는 유 의원은 최근 “중앙선대위 부위원장은 큰 직책이 아닌 것 같다”며 여전히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 의원이 일종의 태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박 후보가 이제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기 때문이다. “후보를 바꿀 순 없으니 후보 빼고 다 바꾸자”며 친박계와 당 지도부 2선 후퇴라는 카드를 내민 것도 텃밭이라는 대구에서부터 ‘안철수 바람’이 불어 닥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야권단일화를 넘으려면 꼭 필요한 수가 바로 새 판을 짜서 재출발하는 것이었는데 박 후보는 최경환 비서실장을 사퇴시킴으로써 미봉했을 뿐이다. 박 후보 캠프에 있는 대부분의 실무진이 유 의원 ‘유임’의 필요성을 제기, 시시때때로 그에게 연락한 것은 그야말로 ‘전략의 부재’에 있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유 의원은 정책메시지본부장으로서 박 후보의 모든 정책을 손봤다.
하지만 유 의원의 중용은 여러 친박 의원이 반대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삼수(이회창 2번, 박근혜 1번)를 한 패장 중 패장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본질적인 이유는 유 의원의 등장을 경계하는 경쟁자들이 힘을 모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 의원은 까칠한 사람이다. 그는 그 스스로 박 후보와의 관계를 상하나 주종으로 보지 않는다.
최고위원 자리이기는 하지만 이혜훈 중앙선대위 부위원장이 너무 조용하게 있다는 말도 들린다. 혹자는 이 의원이 너무 똑똑해서 “지금은 조용히 숨죽이고 있을 때란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부위원장도 나서서 일하기에 박 후보에게 맺힌 것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능력에 맞는 역할을 주지 않는다는 일종의 반감이다.
버림(烹:팽) 받은 것은 아니지만 공보단장으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이정현 최고위원을 하루라도 빨리 내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TV 토론회에서 이 단장이 보여주는 모습은 박 후보의 표 확장에 마이너스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적쇄신에 나선 박근혜 후보는 정작 핵심요직에 다시 ‘팽박’을 앉히는 회전문 인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돌아온 팽박들이 과연 마지막 도전에 나서는 박근혜 후보를 살릴 수 있을까.
선우완 언론인
주군의 무한신뢰 ‘3선급’ 파워
지난 10월 8일 밤이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시절 외부 영입 인사였던 이상돈, 이준석 전 비대위원과 당시 현역 의원으로 비대위원이었던 김세연 의원이 시내 한 호텔에 모였다고 한다. 그들은 “박 후보의 일정과 메시지를 담당한 비서진이 오늘의 사태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소위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최측근 4인방에게 공격의 화살을 겨눴다. 그들은 누구인가.
박 후보는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치권에 입문한다. 그 뒤 박 후보를 이재만 보좌관, 이춘상 보좌관, 안봉근 비서관, 정호성 비서관이 보좌했다. 이 중 지금 가장 큰 권한을 쥔 쪽은 정호성 보좌관이다. 정 보좌관은 박근혜 경선 실무캠프가 꾸려지면서 메시지와 연설문 업무를 맡았다. 그 아래 몇 명의 실무진이 있다. 한 관계자는 “정 보좌관은 의원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도 몇몇 의원을 직접 거론하면서 나쁜 평가를 내놓는다”고 전했다. 의원 앞이든 뒤든 상관없이 직설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의원 위의 상관’이라는 비판도 그가 박근혜로 통하는 문고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 보좌관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기자들과도 지금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한다. 휴대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메시지를 남겨도 콜백(call-back)하지 않는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정호성 많이 컸다”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박 후보를 그림자처럼 수행했던 안봉근 비서관은 지금 ‘일정’을 담당하고 있다. 무슨 일에선지 모르겠지만 수행 업무에서 몇 칸 뒤로 밀렸다는 후문이다. 그림자 수행은 이건하 비서관이 넘겨받았다. 안 비서관은 그동안 박 후보의 휴대전화를 관리해오며 국회의원들이나 박 후보 최측근의 통화를 연결하는 말 그대로 ‘문고리권력’이었다. 박 후보는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거는데, 안 비서관이 먼저 전화를 걸어 사람을 확인한 뒤 다시 버튼을 눌러 박 후보를 바꿔주는 식이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안 비서관은 3선급”이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그를 통해서만이 박 후보가 만나줄지의 여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11총선 때 그에게 줄을 대려는 공천 신청자가 줄을 선 이유다.
이춘상 보좌관은 박 후보 지지모임과 홈페이지를 관리해오다 이번 실무 캠프에서 온라인 홍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맡고 있다. 언론과는 거의 접촉도 없고 성격도 소극적이라고 한다. 박 후보의 해외출장에 동행한 자리에서다. 이 보좌관은 몇몇 기자에게 “박 후보 곁에 있을 때 (박 후보 몰래)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당시 기자들은 꽤 의아하게 여겼다고 한다. 10여 년을 모신 보좌관이 그때까지 ‘보스’와 찍은 사진이 변변찮은 것도 그렇고, 사진 한 장 함께 찍자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박 후보를 어렵게 여기느냐는 것도 이상했다는 것이다.
이재만 보좌관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름만 알려졌을 뿐 그의 존재를 아는 기자들은 드물다. 공약과 정책 분야를 맡고 있다고 하는데 실은 ‘박근혜의 집사’로서 박 후보 개인사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박 후보의 치부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비대위원과 언론에서 이들 ‘환관권력’의 교체를 요구하고 있지만 박 후보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그들에 대한 ‘무한신뢰’를 의미한다. 현역 의원보다는 측근 보좌진을 더 크게 믿는다는 것이다. 의원들의 통화나 보고서가 다 그들의 손을 거쳐야 한다. 국회의원으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데 그런 불쾌감이 이번에 비대위원들의 ‘폭로’를 거쳐 폭발한 셈이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이들을 교체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