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중연 회장과 조광래 전 감독. |
문방위 소속 의원 5~6명은 축구협회 측에 8월 말부터 자료 요구를 본격화 했다.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에서 홍명보호가 일본을 꺾고 3위에 올랐을 때, 미드필더 박종우(부산 아이파크)의 ‘독도 세리머니’ 사태가 빚어진 이후다. 당시 축구협회는 박종우와 관련해 일본축구협회(JFA)에 사과 문구가 명백하고, 심지어 어법에도 맞지 않은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해 논란을 빚었고 이에 문방위는 조 회장과 박용성 체육회장을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시켰다. 거의 청문회 수준의 날선 비난에 국내 체육계 최고 수장들은 진땀을 흘리는 굴욕을 맛봤다.
그때 ‘책임론’이 불거졌다.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느냐고 의원들이 묻자 조 회장은 “글쎄요”라며 대충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계속 질의가 이어지자 결국 조 전 회장은 “책임져야 할 상황이라면 책임을 질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번 국정감사가 ‘책임’의 진짜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시선을 축구계가 주고 있다.
다만 변수는 있다. 일단 법률상의 국정감사 피감기관은 국가기관, 자치단체, 국가 보조금 등 예산 지원 사업 등에 한정돼 있다. 엄밀하게 말해 축구협회는 감사 대상이 될 수 없다. 국가 보조금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는 영역은 극히 한정돼 있는 데다, 지원 규모도 전체 예산의 2%도 채 안 된다.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문방위 요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대신, 일부 자신들과 해당되는 영역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다.
축구협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린 피감기관이 아니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엄밀하게 말해 국정감사라고도 보기 어렵다. 국회의원들이 보낸 일부 질의들에 대해서는 ‘답변할 수 없다’는 뜻을 공문화해서 해당 의원실로 발송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번 국정감사가 축구협회에 달가울 리 없다는 사실이다. 정황부터 예년과는 다르다. 작년까지만 해도 매년 체육회가 받아온 국정감사를 위한 자료 제출에 그쳐왔지만 올해는 증인 출석까지 포함됐다.
이번에 국회의원들로부터 자료 제출을 요구받은 국정감사 주요 쟁점들도 축구협회한테는 굉장히 껄끄러운 부분들이 많다. 현금과 현물을 포함하는 초대형 공식 스폰서 계약, 특정 에이전시와의 계약 관계, 축구협회 내 임직원들의 급여 내역, 전임 국가대표팀 감독 계약건 등이다. 대개 금전적인 부분과 얽혀있다고 볼 수 있다.
축구협회의 최근 일처리를 보면 최악에 가깝다. 축구협회 행정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축구인들은 “(축구협회를) 쑤시면 쑤시는 대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들이 쏟아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축구협회는 지난해 말부터 논란을 빚어왔다. 축구협회 용품을 몰래 챙기려다 적발되고, 간부들의 법인카드 내역을 사적으로 유용하려던 비리·횡령 직원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억대 위로금까지 줘가며 내보낸 전례가 있다. 이들의 허술한 정책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조광래) 국가대표팀 전 감독과 코칭스태프를 기술위원회도 배제한 채 경질시켰고, 그것도 부족해 코치진의 계약서에 명시된 잔여기간에 대한 급여 지급을 차일피일 미뤄 지탄을 받았다. 몇몇 코치들의 경우, 프로축구 K리그에서 새 직장을 구했기 때문에 잔여 임금을 줄 필요가 없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했다. 법적 판결은 축구협회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국내 코치들에게는 본래 줘야 하는 7개월이 아닌, 4개월 치만 지급했고 브라질 국적의 가마 코치에게는 대한상사중재원과의 소송 끝에 몽땅 지급하게 됐다. 그러나 조 전 감독에게는 지금 이 순간까지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조 전 감독이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채택됐다는 것이다. 조 전 감독은 직접 국회로 출석하는 대신, 서면 질의응답 형태를 취하기로 했다. 하지만 형식을 떠나 국가대표팀 사령탑이 국회에서 국정감사를 위해 증언을 하는 건 사상 초유의 일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축구협회가 국정감사의 직접적인 타깃이 됐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 축구협회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축구협회는 내부 문제를 속속들이 잘 파악하고 있는 ‘야당급’ 거물 인사인 조 전 감독의 국회 증언이 당연히 껄끄럽다. 일각에서는 축구협회가 국정감사를 받는 게 국제축구연맹(FIFA)이 요구해온 ‘정치적 중립’의 가치를 깨뜨리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몇몇 축구협회 관계자들은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됐다고 FIFA가 판단하면 조사단이 꾸려지게 되고, 대표팀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FIFA가 이미 정치권과 깊숙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은 전 세계에 파다하다.
축구협회는 2005년 9월 요하네스 조 본프레레 감독의 경질 과정과 회계부정 의혹, 상표권 보호 실태 등을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받은 바 있다. 그때도 FIFA의 개입은 없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