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곧 김 위원이 IOC 부위원장이 되기 위해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방해했다는 비난으로까지 발전됐다. 한 나라에서 동시에 개최지 선정과 부위원장 당선을 거둬들일 수 없다는 형평성 문제에서 김 부위원장이 평창의 올림픽 개최 대신 자신의 부위원장 당선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위원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평창 올림픽 유치활동과 부위원장 출마는 관련성이 없으며 최선을 다 한 사람에게 너무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지에 동행했던 인사들과 평창 유치위 인사들 그리고 외국 언론 등에 의해 김 위원에 대한 의혹들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중이다.
▲ 김용학 의원. < 이종현 기자 > | ||
이처럼 여러 번의 위기 속에서도 줄곧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 인사로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김 부위원장. 그가 거듭 해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창 개최지 선정과 부위원장 당선에 관련한 의혹들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과연 김 부위원장은 이같은 비난여론을 지난 사례처럼 이겨낼 수 있을까. 그를 둘러싼 의혹들을 짚어보며 그 가능성을 진단해 본다.
[1] 김운용 위원은 원래부터 평창을 무시해왔다?
“김 부위원장이 ‘평창은 아직 준비가 안됐다’는 말을 하고 다녀서 표를 깎아먹었다.”
김용학 의원과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유치위) 인사들의 주장이다. 유치 경쟁 초기부터 아예 김 부위원장이 평창을 공개적으로 무시해왔다는 것이다.
지난 4월30일 국회에서 열린 제1차 2010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특별위원회 회의에서 김 부위원장은 평창의 개최가능성을 폄하하는 듯 보였다.
“다른 나라 다 재수했어요” “우리가 꼭 되어야 하겠지만 너무 허황된 장밋빛으로 도민이나 국민에게 당연히 될 것처럼 하지 않고…” 등의 발언을 통해 평창에 대한 생각을 미리 밝힌 것이다. 월드컵 개최에 대해서는 “누가 돈을 몇백억 갖고 다녀도 안 돼서 그 당시 절대군주인 사마란치한테 YS하고 나하고 해가지고 공동개최를 겨우 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10년 개최지 선정이 이뤄지는 체코 프라하 현지에 유치위 인사들은 6월28일 도착했지만 김 부위원장은 30일에 도착했다. 김 부위원장은 “독일에 들러 IOC 위원 5명에게 표밭을 다지고 온 것”이라 해명했지만 “일찍부터 현지에 와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유치위 인사들의 주장에도 타당성이 적지 않다.
유치위측 한 인사는 “김 부위원장은 처음부터 2010년은 어렵고 2014년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혀왔다”라며 “우리나라 체육계를 대표하는 김 부위원장이 외신에까지 2014년 준비를 언급하면 어쩌란 말인가”라며 노골적으로 김 위원을 비난했다. 친 김 부위원장 성향의 한 외신언론이 IOC 위원들이 머물던 숙소에 ‘평창은 2014년을 준비해야할 것’이란 기사가 실린 잡지를 뿌린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라는 주장이다.
유치위의 한 관계자는 “김 부위원장은 ‘22표 정도를 자신이 얻어올 수 있으며 그래야 체면이 설 것’이란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왔다. 그러나 우린 1차 투표에서 51표, 2차 투표에서 53표를 얻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분이 우리 역량을 처음부터 무시했던 셈”이라고 밝혔다.
[2] 이틀 선거운동으로 IOC 부위원장 당선?
지난 2일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 이후 이틀 후인 4일 김운용 위원은 IOC 부위원장직에 당선됐다. 부위원장 선거에서 55표를 얻어 45표를 얻은 노르웨이의 게이하르트 하이베리를 제치고 부위원장에 당선된 것이다.
유치위의 한 관계자는 “김 부위원장은 개최지 결정 이전까지 부위원장 출마를 부인해왔다. 김 부위원장도 평창 개최지 탈락 이후에 출마를 결정했다고 하더라”라며 “그렇다면 불과 이틀 만에 표밭을 다져서 부위원장직에 당선된 것이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현지에 가있던 한 국내 언론인은 “부위원장 선거에 입후보한 아일랜드의 패트릭 히키 위원과 김 위원이 부위원장 선거에 대해 연대를 이뤘다는 소문이 나있었다”며 “패트릭 히키 위원이 선거에 출마해 연대 성사 여부는 알 수 없지만 6월30일까지 부위원장 출마를 부인하던 김 위원이 개최지 선정에서 평창이 얻은 표보다 더 많은 표를 얻고 당선된 것을 이틀 만에 이뤄낸 것이라 보기엔 힘들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부위원장은 “평창 개최지 탈락 이후 사마란치 명예위원장 등 IOC 인사들이 2014년 평창 유치를 위한 출마를 권유했다”고 밝혔다. 개최지 선정 이전에 부위원장이 되기 위해 벌인 선거운동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유치위 관계자는 “이틀 만에 55표를 얻어낸 능력으로 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평창을 2차 투표에서 패하게끔 만들었나”라고 꼬집었다.
고건 총리가 개최지 선정 하루 전날인 지난 1일 김 부위원장을 만나 부위원장 출마 포기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 본인은 개최지 선정 이전까지 부인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김 위원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3] 투표 결과 논란
프라하 현지에 갔던 한 국내 언론인은 “개최지 선정 1차 투표에 불참한 4명의 IOC 위원 중 3명은 지한파 인사로 잘 알려진 인물들”이라 밝혔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에 3표 모자라 2차 투표에 갔음을 돌이켜보면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1차 투표에선 4개의 무효표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검표원은 “일부 IOC 위원들이 전자투표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발생한 일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IOC가 전자투표기를 도입한 2000년부터 지금까지 무효표는 단 1표도 발생하지 않았다. 한편 이에 대해 김 부위원장은 “이미 다 끝난 일”이라며 문제 삼지 않은 바 있다.
유치위 한 관계자는 “지한파 인사 3명이 투표에 불참한 것이나 유례 없는 무효표 발생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라며 김 부위원장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김 부위원장측은 “말도 안되는 억측일 뿐”이라 일축해버렸다.
[4] 정치적 전술인가?
국내외 언론이 비난성 보도를 연일 내보내자 김 부위원장은 무척 불쾌한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 부위원장측 한 인사는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김용학 의원에 대해 “내년 총선에 대한 전략으로 활용하는 것”이라 맞불을 놓았다. 평창에서 인적 물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해온 동계올림픽 유치 시도가 물거품이 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한 정치적 전술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용학 의원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한 김 위원에 대해 강원도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되받아치고 있다. 이번에 프라하에 따라 다녀온 한나라당 의원들 역시 “김운용 위원이 평창 유치에 훼방을 놓았다”는 반응이다.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은 “김 위원의 IOC 부위원장 출마와 평창 유치 가능성 관계를 보도한 신문이 대회장에 뿌려져 우리가 제지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엄호성 의원은 “IOC 부위원장과 평창 유치를 동시에 따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김 위원 출마 소문이 돌아 속으로 화가 많이 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위원과 같은 당인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그런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며 김 위원을 옹호하는 인상을 보였다.
한편 한나라당은 국회 차원에서 진상 규명을 검토중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사이버공간에서는 김운용 국적박탈 운동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며 공직사퇴에 대한 여론이 거세다”고 밝혔다. 김 위원을 성토하는 여론을 등에 업고 한나라당이 김 위원과, 나아가서 여권에 대한 정치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