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권 초반부터 불어닥친 총풍 세풍 등으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는 DJ에게 깊은 ‘원한’을 품었다. DJ 역시 이 총재의 ‘한풀이’를 두려워했다. 97년 대선후보 토론회 에 나온 두 사람. | ||
여권과 한나라당은 정권 초반부터 상대측 ‘코드 원’을 겨냥해 막말을 퍼부었다. 인신공격과 험담 상소리가 수시로 난무했다. 일부 수준 낮은 정치인만 그런 게 아니었다. 중진이나 소장파 재야 출신과 고위직 출신 등 구별이 없었다. 심지어 양측의 최고 수뇌인 김대중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간의 관계부터 ‘막가는’ 수준이었다.
99년 5월께 이회창 총재는 당 부총재단과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여권의 ‘야당 탄압’ 등이 화제에 올랐다.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이 총재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총재는 손에 들었던 술잔으로 테이블을 내려치자 술잔은 깨져버렸다. 깜짝 놀란 K부총재 등 주변 사람들은 이 총재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순간 이 총재는 “내가 반드시 DJ를 손보겠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차기 대선에서 집권하면 DJ를 가만 두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한 부총재는 “이 총재가 무서운 사람임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나 세풍 총풍 등으로 괴롭히고 동생인 회성씨까지 구속시킨 DJ에 대한 이 총재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고 털어놨다.
99년 7월 초순 이 총재는 당에 새로 출입하게 된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DJ에 대한 인식을 솔직하게 엿보이기도 했다. 한 기자가 정국 돌파를 위한 영수회담 개최 필요성을 묻자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다.
“DJ는 몇 차례 만났다. 그런데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만나서 나눈 얘기는 밖에 발설하지 않기로 단단히 약속해 놓고 두 차례나 말을 흘렸다. 그런 식인데 무슨 대화가 오갈 수 있겠느냐. 만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 총재가 이처럼 적개심에 불탔던 데는 물론 DJ의 책임이 적지 않았다. 집권하자마자 총풍 세풍 등으로 몰아치면서 이 총재를 궁지에 몰았다. 당시 민주당 한화갑 원내총무 등과 같은 온건파 인사들조차 “이래서야 여야관계가 풀리겠느냐”고 푸념할 정도였다. DJ는 이 같은 여권내부의 문제 제기에 대해 ‘원칙론’으로 맞섰다. 검찰 자체의 수사를 두고 권력이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다른 것 같다. 여권 핵심부가 줄곧 이 총재를 향해 칼날을 겨누고 있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예컨대 민주당 기조실장을 지냈던 동교동계 설훈 의원은 사석에서 이 총재의 차기 대선 당선 가능성이 도마 위에 오르면 “절대 안된다. 두고 보면 안다”고 호언하곤 했다. “약점이 있느냐”고 캐물으면 “지금은 말할 수 없다. 지켜보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곤 했다.
실제로 설 의원은 2002년 4월 ‘이회창 후보 20만달러 수수 의혹’을 폭로했다. 민주당도 그 해 10월 이 총재의 부인 한인옥씨의 ‘기양건설 비자금 수수의혹’을 터뜨렸다. 여권 핵심부가 오랫동안 이 총재 낙마를 겨냥한 폭로전을 준비해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검찰수사 결과 이 같은 폭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한나라당이 줄기차게 주장한 반면 민주당과 청와대측은 단호하게 부인했던 ‘공작정치’가 실제로 행해졌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선기간중에는 ‘불개입’원칙을 강조했지만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뒤에 속내를 드러낸 적 있다. 박 전 실장은 이회창 후보의 패인과 관련, “이 후보가 당선되면 좋을 것이라는 여론은 없었다. 그가 당선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여론만 있었다. 이 후보는 이점을 모르고 스스로를 과신했다”고 분석했다.
DJ의 최측근인 박 전 실장의 발언은 DJ측이 이 총재의 집권을 ‘최악의 상황’으로 여겨왔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DJ 집권기간에 이뤄진 이 총재에 대한 각종 압박은 ‘원칙론’의 명분 아래 행해졌지만 기실은 경쟁자를 무력화시키려는 권력의 생리가 동력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이중 플레이’라고 비난하곤 했다.
▲ 이회창 전 총재와 “그가 당선되면 좋을 것이란 여론은 없 다”던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 ||
2002년 대선 직전에 이 총재의 부인 한인옥씨가 “이번에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대선에서 승리를 해야 한다”고 말해 구설수에 오른 적 있다. 그 직후 이회창 후보는 기자들과 오찬을 가졌다.
한 기자가 공직자 골프 금지를 화제에 올리면서 “이 총재가 집권하면 공직자 골프를 허용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이 후보가 난감해 하며 즉각 답변하지 못하자 또 다른 기자가 “요즘 추세를 보면 ‘하늘이 두 쪽 나도 골프를 허용하겠다’고 말해야 될 겁니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순간 이 총재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동석했던 권철현 후보 비서실장은 냉랭한 분위기를 간파하고 “누가 그런 얘기했어”라며 총대를 멨다. 이에 한 구석에서 “누군지 알면 보복하려고 하나”라고 꼬집자 권 실장은 황급히 변명조로 “아니, 보복은 안 하지만 잊지 않고 기억해두겠다는 얘기지”라고 말했다.
분위기가 썰렁해졌음은 물론이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이 후보가 언급해 화제가 됐던 표현이었다. 이 후보뿐만 아니라 측근들조차도 집권하면 ‘한풀이 정치’를 할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이 후보는 이 같은 이미지를 해소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오히려 특유의 깐깐한 스타일로 인해 측근들조차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이 후보의 측근이었던 한 중진의원은 “이 후보는 카리스마가 있다. 보고하러 들어가면 바짝 긴장이 된다. 이 후보가 원체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보고 추궁하기 때문에 어설프게 보고하면 혼나고 나온다”라고 고백했다.
후보 비서실의 젊은 보좌관들은 이 후보를 ‘빨간 펜’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연설문 초안을 들고 가면 연필로 빼곡하게 교열을 보기 때문이다.
한 보좌관은 대선기간중 “이 총재의 DJ 불신이 갈수록 깊어져서 당내 온건파보다 강경파가 중용되는 경향을 보인다. 합리적이고 전략적인 사고를 갖춘 윤여준 의원 같은 사람이 왕따를 당하고 대여 강경론자들이 득세하고 있다. 가뜩이나 이 총재가 DJ를 싫어하는 데다가 그 분위기에 편승하는 매파들이 실권을 잡는 것은 문제점이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결국 DJ가 가졌던 이 후보에 대한 ‘두려움’과 이 후보가 DJ에 대해 품고 있는 일종의 ‘원한’이 물밑에서 대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깊은 상호불신은 바로 DJ정부 5년 동안 여야관계가 뒤틀리고 삐거덕거렸던 근본원인이었다.
그 절정은 2001년 1월4일 열린 여야 영수회담이다. 한국정치사상 최악의 영수회담이었다. 회담 일정이 잡힌 뒤인 2000년 말에 각종 악재가 터진 게 화근이었다. 민주당이 자민련을 원내교섭단체로 만들기 위해 의원 3명을 이적시켰을 뿐만 아니라 ‘안기부 자금 1백50억원 15대 총선 지원’의혹이 제기됐다. 한나라당은 당연히 발끈했다.
무산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열린 영수회담에서 DJ와 이 총재는 마주 앉자마자 예의와 격식을 완전히 던져버렸다. 이 총재는 “대통령이 야당할 때 싸웠던 독재정권이 하던 말과 뭐가 다르냐”고 치고 나갔고, DJ는 “야당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하면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고 맞받는 식이었다.
1시간30분 동안 계속된 회담에서 이 총재는 수시로 고함을 질렀다. 차를 들고 오던 청와대 직원이 그 소리에 놀라 돌아가기도 했다. 급기야 이 총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야당 총재가 대통령을 면전에 두고 뛰쳐나오는 초유의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DJ는 따라 나오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라고 권유했으나 이 총재는 “필요없다”며 걸어 내려갔다.
▲ 김홍신 의원의 ‘공업용 미싱’ 얘기를 다시 꺼낸 한나라당 이규택 의원(왼쪽)과 이회창 총재의 20억달러 수수설을 폭로한 민주당 설훈 의원. | ||
한나라당 의원들은 DJ를 직접 겨냥해 독설을 퍼부었고, 민주당은 이 총재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맞섰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도 야당 의원들은 대통령을 ‘독재자’로 비판했지만 인격적으로 모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DJ정권 동안에는 DJ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술자리에서처럼 비하적 표현으로 공격했다.
그 테이프는 한나라당 이규택 의원이 끊었다고 한국 정치사에 기록돼야 한다. 98년 9월11일 수석부총무였던 이 의원은 당 의원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DJ가 집권 초부터 총풍 세풍 등으로 몰아치는 데 대해 “77세나 되는 분이 계속 사정 사정 하는데 그러다 내년에 변고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비아냥거렸다. 검찰을 동원해 ‘사정정국’을 조성하는 것을 남자의 ‘사정’으로 비하하면서 근거 없이 대통령의 유고를 거론한 것.
이 의원은 나아가 “DJ는 정치보복을 안 한다는 약속을 어기는 등 거짓말을 너무 잘한다. 김홍신 의원이 얘기한 공업용 미싱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충격적이었다.
이날 한나라당 연석회의는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이 의원만 막간 게 아니었다.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은 “이 정권은 미치광이 정권” “DJ가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 등의 초강경 발언을 토해냈다. 물론 민주당은 정균환 사무총장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망동’이라고 격분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 의원을 윤리위에 제소하고 검찰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키로 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농담’이었다고 해명했고 발언파문은 시간이 흐르면서 유먀무야됐다.
민주당 의원도 이 전 총재를 원로나 선배로 대접하지 않았다. 2001년 7월5일 시내 한정식집에서 열린 민주당 바른정치모임 식사자리에서 추미애 의원은 법조계 선배인 이 총재를 빗대 ‘이회창 이놈’이라는 표현을 썼다.
1인당 5잔 정도의 폭탄주가 돌아간 다음 크게 취한 추 의원은 자신과 소설가 이문열씨와의 논란과 관련, “이문열 같이 가당치 않은 놈이 X같은 조선일보에 글을 써서”라고 운운하다가 ‘이회창 이놈’이라는 말까지 토해냈다. 추 의원은 다음날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고 부인했다.
같은 해 8월16일에는 민주당 안동선 최고위원이 한 술 더 떴다. 당 국정홍보대회에 연사로 나온 안 위원은 “광복절 기념식장에 이회창 총재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친일파인 이회창씨가 부끄러워서 못 나왔다는 생각을 했다”고 이 총재를 친일파로 규정했다.
그는 이어 “남북이산가족 상봉 때 모두 우는데 돌하르방과 이회창 한 ‘놈’만 안 울고 버티고 있었다”고 직격탄을 날리고 “더 할 말이 많은데 이만 참는다”고 맺었다.
‘금도 없는 폭언 정치’는 DJ정권이 낳은 비극적 결실이다. 과거에도 정치인들이 서로 멱살잡이하고 상소리하는 추태는 적지 않았지만 여야 최고지도자에 관한 한 예의를 지켰었다. 그 마지노선이 무너진 이유는 뭘까.
한나라당의 중진의원은 이규택 의원 발언 파문 당시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인은 국민 인기와 공천권을 쥔 당 총재의 신임을 먹고 산다. 막말을 하면 인기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금배지는 없다. 그래도 총재가 좋아하거나 지도부가 종용하면 총대를 멜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강경 발언을 하면 파문이 일지만 총재는 속이 후련할지도 모른다.”
이진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