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기자 |
▲ 이승한 회장 |
한밤중에 불려나가는 일은 거의 사라졌으나 오전 5시나 주말에 불려나간다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적지 않다. 한 협력업체 직원은 “새벽에 불려나가는 것은 비일비재하고 일방적인 리뉴얼 작업 일정 때문에 주말을 고스란히 반납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일부 대형마트의 경우 몇몇 바이어들은 ‘출석체크’도 한다고 한다. 만약 약속한 시간에 늦거나 출석체크를 하지 못한 협력업체는 ‘발주제한’ 등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는 것.
더 심각한 문제는 리뉴얼 작업에 소요되는 비용을 전부 해당 협력업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 디스플레이(진열) 작업을 다시 하면서 새로 만드는 집기와 독특한 물품을 따로 연출하는 헤더 등의 설치비용을 전부 협력업체가 떠안고 있는 것이다. 홈플러스 협력업체 관계자 A 씨는 “매장 디스플레이에 필요한 집기 설치비용은 대략 20만~200만 원”이라며 “일부 매장은 그 이상 소요되기도 하는데 리뉴얼 작업 기간 동안 수십 곳 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소요 비용은 어마어마하다”며 한숨을 토해냈다.
이런 식으로 매장당 많게는 수백만 원을 들여 만들어놓은 집기와 헤더가 불과 2주 만에 교체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계절이 바뀌고 유행이 지나가면 자연스레 디스플레이에 변화를 줘야 하기 때문. 고객 취향과 분위기에 따른 변화도 필요하다. A 씨는 “올해까지 리뉴얼과 디스플레이 변화에만 들어간 비용이 5억 원이 넘는다”며 “그만큼 매출이 발생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가 겉으로는 중소상인, 협력업체와 상생을 약속하면서도 실제 행동은 그렇지 않은 셈이다.
또 다른 협력업체 관계자는 “리뉴얼 작업이 우리 매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홈플러스에도 도움이 되는데 소요 비용을 전부 협력업체에 떠안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성토했다. A 씨도 “‘착한 홈플러스’라는 광고가 나올 때마다 민망하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홍보실은 “리뉴얼은 협력업체에서 먼저 요구할 수도 있고 매장별로 따로 요구할 수도 있다”며 “요구 주체가 어느 쪽이냐에 따라 소요 비용은 주체 쪽이 부담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협력업체들은 “리뉴얼을 업체에서 먼저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반박했다.
매장 리뉴얼 작업은 대형마트 입장에서 나쁠 것이 없다. 영업시간 내에 하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면이 없지 않지만 분위기 쇄신과 매출 증대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 그런 작업에 드는 비용을 협력업체에 다 떠안긴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홈플러스가 신규 매장을 오픈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0월 23일 홈플러스는 관악구청에 ‘대규모점포개설등록신청서’를 제출했다. 쉽게 말해 새로운 대형마트 매장을 열겠다는 것이다. 홈플러스가 개점하려는 새로운 매장은 서울 관악구 남현동의 지하 5층, 지상 3층 규모의 ‘홈플러스 남현점’. 또 서울 합정점에 대해 새로이 오픈할 것을 알리기도 했다.
더욱이 남현점의 경우 10월 22일 중소상인과 상생협력을 강조한 바로 다음날 개설등록신청서를 제출한 터여서 더 큰 비난을 사고 있다. 홈플러스 측은 “2008년에 이미 계획한 것이어서 신규 출점이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시기적으로 충분히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홈플러스 측이 “엄청난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있어 마냥 놔둘 수 없다”며 영업 개시 계획을 밝힌 합정점의 경우도 중소상인들은 “상생을 포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은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등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체인스토어협회 회장이다. 이 회장은 중소상인들과 상생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위치에 있는 셈이다. 실제로 협의회 발족 움직임이 가시화될 때만 해도 홈플러스 측은 상생협력을 주도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경제부 주도로 함께 해나가는 것”이라며 한발 물러서고 있다.
혹시나 홈플러스가 부진한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협력업체들을 쥐어짜고 지역 중소상인들의 처지를 아랑곳하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마지못해 상생에 나서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