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동료도 천천히 뜯어보면 힘든 정신적 변화를 겪고 있을 때가 많다. 특히 과로로 인해 잠을 못자면 우울증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일본의 <주간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직장인의 우울증의 유형과 특징을 살펴봤다.
시계 바늘이 새벽 3시를 가리킨다. ‘안 돼, 이제 정말 자야해’라고 간절히 외치며 거실 한쪽에서 술잔에 위스키를 붓는 40대 샐러리맨. 벌써 4잔째다. 술기운으로 졸음을 느끼기 시작한 그는 자리를 펴고 누웠다. 하지만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잘리는 악몽을 꾸고 일어나고 말았다.
그는 최근 사내에서 추진 중인 대형프로젝트를 여러 개 맡았는데 매일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올 정도로 야근을 했다. 그래도 별 성과는 없고 비난받기 일쑤였다. 귀가해도 편안히 쉬지 못한 그는 사흘 연속 잠을 제대로 못 자다가 결국 서류에 거래액수를 틀리게 기입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런 사례는 과로로 인해 불면증이 생긴 직장인의 전형적인 예다. 불면증이 1개월 이상 계속되면 가벼운 조울증으로부터 중도의 우울증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굳이 과로가 아니더라도 직장인이 마음의 병에 걸릴 함정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근무하는 회사가 합병이나 인수되거나 인원이 감축될 때처럼 외부에 큰 변화가 있을 때 직장인은 스트레스를 강하게 느낀다. 더욱이 인사이동, 전직, 정년퇴직과 같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거치는 환경변화도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다. 남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몰라도 당사자가 변화로부터 느끼는 스트레스는 매우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두가 부러워하고 축하하는 승진도 우울증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직책으로부터 오는 책임감을 과도하게 느끼면서 중압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이를 소위 ‘승진 우울증’이라고 하는데 이제 막 중간층 관리자로 승진을 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어렵게 승진을 하기는 했는데 사측이나 직위가 높은 상사와 부하직원들 사이를 잘 조율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대인관계가 고통스럽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게다가 승진을 둘러싼 주위의 기대와 시샘도 스트레스다.
반대도 있다. 애가 타게 승진을 바라는데 정작 본인만 못해 스트레스를 느낀다. 입사동기, 라이벌, 후배가 자기보다 높은 직책에 올랐는데 혼자만 정체돼 있어 불안해한다. 일 하나만 알고 줄곧 꾸준히 노력해온 사람이나 출세지향적인 이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유독 두드러진다.
그런데 직장인이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우울증에 빠지기 전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현상이 있다. 위 사례와 같은 불면증이다. 일본의 후생노동성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울증을 앓는 직장인이 발병 초기 하나같이 지니고 있던 문제는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와 불면이었다.
불면증을 방치하면 우울증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 불면증을 가진 이들은 일반인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두세 배나 높다. 또 우울증이 낫거나 호전 기미를 보이더라도 불면증이 계속 남아 있으면 우울증이 재발할 확률이 크다. 그밖에도 불면증으로 인하여 성인병에 걸릴 위험도 크다. 불면증이 있는 중년남성은 4년 후 고혈압이 생길 확률이 일반인의 약 두 배이며, 8년 후 당뇨병에 걸릴 위험은 일반인에 비해 3배나 높다.
직장인이 불면증으로부터 시작해 우울증에 걸리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무리해 일을 하고 심신이 지쳤지만 잠은 안 온다. 이런 일이 되풀이 되다보면 어느 새 불면증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우울증이 생기는 것이다.
잠이 안 와 긴장감을 덜고 스트레스를 풀고자 마시던 술로 알코올 중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잠이 잘 오지만 매일 조금씩 더 양을 늘려 마셔야 잠이 오니 주량이 자기도 모르는 새 늘어난다. 술의 부작용으로 자는 도중에 깨기도 쉽다.
불면증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즉시 싹을 잘라내는 게 좋다. 수면시간을 확보하는 게 가장 나은 방법이다. 불면증을 보이는 직장인은 대부분 단기간에 생긴 가벼운 불면증인데 일찍 귀가해 잠이 안 오더라도 침대에 가서 누워 숙면을 취하고자 노력하면 어느 정도 불면증이 해결된다. 수면시간은 7~8시간이 적당하지만 설사 이보다 짧더라도 일과 중 졸리지 않을 정도면 괜찮다.
하지만 이미 불면증이 생겼고 우울증이 상당히 진전된 경우는 생활습관을 바꾸거나 수면 시간을 확보하고 수면제를 복용하는 정도로는 해결이 어렵다. 이런 경우 경험이 풍부한 의사와 상담하며 처방에 따라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게 효과가 있다. 기분이 전혀 우울하지 않고 의욕저하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 등 우울증 증세가 없더라도 불면증과 함께 두통, 식욕부진이 있다면 우울증을 의심해보는 게 좋다. 이런 우울증은 이른바 ‘가면 우울증’으로 가면을 쓴 것처럼 우울증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직장선 ‘우울’ 집에선 ‘쌩쌩’
직장에만 오면 우울증이 발병하는 기이한 현상도 있다. 신형 우울증으로 ‘디스티미아(Dysthymia, 기분변조증)’라고 하는데 일할 때는 우울하지만 취미생활을 할 때나 놀 때는 정상으로 돌아온다. 주변에서 보면 우울증에 걸린 게 마치 거짓말처럼 보인다.
주로 20~30대 젊은 직장인들에게서는 나타나는데, 뭐든 다 들어주는 부모 밑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탓에 스트레스에 취약하여 상처를 쉽게 받고 소심한 성격이 많다. 예를 들어 부서 이동으로 새로운 일을 하다가 실수를 해 상사가 크게 꾸짖자 다시는 관련된 일을 하지 않으려고 도망가는 식이다. 싫은 상황이 되면 스스로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몸이 축 늘어지는 느낌이 들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증상으로는 과식이 동반되며 짜증이나 화를 잘 내고 심한 경우 자해 행위를 하기도 한다. 수면과다가 수반되는 점도 특징이다. 신형 우울증에 걸린 동료나 부하직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상담해보겠다고 나서지 말고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게 낫다. [조]
불면 체크리스트
□ 아침에 깼을 때 잘 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
□ 깊은 잠에 들지 못한다. *
□ 밤중에 몇 번 깬다. *
□ 아침에는 항상 생각보다 일찍 일어난다. *
□ 자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매일 다르다.
□ 평일에 많이 자지 않고 주말에 몰아서 잔다.
□ 낮에는 졸리다.
□ 집중력이 금방 떨어지고 안절부절 한다.
□ 재밌는 일이 생겨도 해볼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 건강한 체질이라 그렇게 많이 자지 않아도 괜찮다.
□ 잠을 잘 못 잔다고 해서 몸에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 바쁘면 잠을 안자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밤을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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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면을 위한 충고
1.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라.
2.자기 전 컴퓨터, 휴대폰은 쓰지 말라.
3.자기 전 소화가 나쁜 음식은 먹지 말라.
4.불면을 완화하는 콩 식품, 칼슘을 많이 섭취하라.
5.잠들기 위해 음주를 하지 말라.
6.잘 때 전등은 끄되 너무 깜깜하게 하지 말라.
7.자기 전 스트레칭과 같이 격렬하지 않은 운동을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