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검의 한 관계자는 “이제 검사들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며 내 부의 결연한 분위기를 전했다. 사진은 지난 3월 대검찰청 간부들의 모습. | ||
서울지검 소속의 한 평검사가 한 이 말은 최근 검찰의 분위기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굿모닝시티 분양 사건 수사를 둘러싼 ‘정치권과 검찰 힘겨루기’ 양상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는 “언론이 일부 정치인의 말을 빌려 ‘검찰이 통제불능에 접어들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만큼 우리 검찰을 지금껏 권력의 시녀로 바라봤다는 반증”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또다른 한 평검사는 “청와대와 민주당은 엄연히 다르다”는 상당히 함축적인 의미의 말을 하기도 했다. 실제 상당수 평검사들은 현재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장관의 중립적인 태도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분위기라는 것. 그러나 정치권을 향해서는 “이번에도 밀리면 정말 검찰의 자존심은 끝장난다”며 결연한 모습이다.
현재 검찰 내 분위기는 사뭇 비장하다. 가뜩이나 딱딱한 송광수 검찰총장의 얼굴은 더욱 굳어져 있다. 대검이나 서울지검이나 할 것 없이 기자 만나기를 아예 피해버리기 일쑤다. 지금과 같이 예민한 시기에 괜한 말로 오해나 구설수에 오르기 싫다는 것. 대검의 한 관계자는 “송 총장이 수사내용 등에 있어 극도의 보안을 유지토록 엄명을 내렸다”고 전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굿모닝시티 사건의 ‘기획 수사설’에 대해 검찰에서는 한 마디로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는 반응. 이번 사건 수사에 비교적 깊이 관여해온 한 관계자는 이 사건의 최초 시작을 굳이 따지면 지난해 4월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한다.
당초 이 사건은 굿모닝시티 분양과정에 조직폭력배가 개입돼 있다는 민원이 제기되면서 불거졌다는 것. 서울지검 강력부가 초기 수사를 맡게 된 것도 이 때문.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살인 피의자로 조사받던 조아무개씨가 검찰 수사과정에 사망하는 일이 터지면서 이 수사를 맡고 있던 홍경령 당시 주임검사가 구속돼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것.
대검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에서는 마치 굿모닝시티 비리에 연루된 일부 검찰 간부들이 이 사건의 수사를 중단토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나리오를 흘리기도 하지만, 당시 수사가 중단됐던 것은 홍 검사의 구속사태 때문이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굿모닝시티 분양자들의 민원이 계속 제기되자, 검찰에서는 다시 이 사건의 수사를 재개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초점이 조폭 개입에서 사기 분양 쪽으로 옮겨가면서 수사담당 역시 특수2부에서 행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수사 과정에서 정대철 민주당 대표 등 윤창렬씨로부터 로비를 받은 정치권 인사들의 이름이 나왔다.
서울지검의 한 관계자는 “정 대표의 경우 정치권 인사들 가운데 제일 처음 이름이 나온데다가 워낙 사안이 명백했기 때문에, 이후 정치권 관계자들의 추가 조사를 위해서라도 공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라고 밝혔다. 정 대표의 구속수사 방침은 원칙적인 수사를 위해서는 불가피했다는 주장이다.
최근 상황과 관련해 ‘청와대의 검찰 통제권 상실’, ‘검찰과 정치권의 한판 힘겨루기’ 등에 대해서도 검찰의 반응은 여러 가지. 대검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와 관련해 일일이 청와대의 통제를 받아야 할 이유도 없지만, 딱히 통제권을 벗어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우리는 법과 원칙에 충실하게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또 청와대에서도 이를 인정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 검찰과 청와대 및 법무부 사이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민주당은 좀 다르다”라는 말로 정치권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얼마 전 옷을 벗은 한 인사는 “새 정부 출범 후 청와대와 법무부는 검찰의 독립 수사권을 인정해주고자 하는 분위기나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검찰을 하수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일례로 그는 얼마 전 정 대표가 언급했다는 “감히 일개 차장 따위가 날 소환하다니”라는 말을 들었다. 발언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면서 검찰의 감정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노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장관에 대한 최근 검찰의 변화된 시각을 얼마 전 강 장관이 쓴 편지내용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강 장관은 검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이 사람들을 사랑하는구나. 이 사람들이 나였으면 좋겠다”라고까지 언급한 점이 그것.
서울지검의 한 평검사는 “사실 지금까지 검찰의 이미지를 흐린 것은 일부 정치지향적 검사들의 행태 때문이었지, 대다수 검사들은 오직 일만 할 뿐이다. 그런 모습을 최근 장관이 제대로 알아주는 것 같아 한결 마음이 편했다”고 언급했다. 이 검사는 “과거 정권에서 검찰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대통령 뒤에서 소위 실세라고 하는 정치권 인사들이 좌지우지한 탓에 아직도 정치인들이 검찰을 업신여기는 경향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직격탄을 퍼부었다.
법무부의 또다른 한 검사는 “누구보다 자존심과 명예욕이 강한 검사들은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잘한다”면서 “일각에서는 검사들이 매우 독선적이고 편협한 것처럼 오해하지만, 사실 우리처럼 끊임없이 토의하고 상사들과 부딪히고 논쟁하는 직업도 드물다. 무조건 상명하복식의 군대문화로 검찰을 보면 안된다”고 밝혔다.
지난 21일 노 대통령이 정치자금 공개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수사권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하자 검찰 내부 분위기는 더욱 고무되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이제 검찰은 국민만 보고 수사해야 한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9일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는 우물안 개구리였던 평검사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혁명적 사건이라는 것. 나름대로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은 평검사들의 ‘오기와 자존심’, 여기에 검찰 수뇌부의 ‘사기 높이기’, 노 대통령과 강 장관의 중립적 태도 등이 한데 어우러져 검찰이 정치권과 한판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상대는 국민들로부터 최고의 불신을 받고 있는 정치권이다. 검찰이 전에 없이 기세등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