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의 전쟁>의 ‘폭넓은 공감대’ 형성에는 드라마 못잖은 현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카드 사용 활성화’란 명분으로 DJ정부는 사채업자의 악성 부채를 카드회사로 전가하는 것을 사실상 방치했다. 그러면서 새우잡이배니 낙도 다방 레지니 하는 사채업으로 인한 인신매매 얘기가 쑥 들어갔다. 그러나 현 정부들어 카드 발급 규정이 강화되면서 사금융 폐해가 다시 돌출하고 있다. 여기에 대부업체까지 가세해 ‘무이자’를 외치며 ‘고리대금’ 쓰기를 권장하고 있다. 이에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는 ‘드라마에서 배우는 상황대처법’ 등을 보도자료로 내면서 ‘고리대 추방과 고금리 인하운동’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일요신문>은 드라마 속 장면과 민노당의 상황대처법, 경찰청 ‘1379 생계침해형 부조리사범 통합신고센터’에 상담·접수된 불법 사금융 실제 피해 사례를 비교해봤다.
드라마는 주인공 금나라(박신양 분)의 아버지가 사채를 쓰고 자살하면서 시작된다. 여기서 사채업자 마동포(이종원 분)가 등장한다. 그의 업체가 무등록업체라면 대부업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등록업체라 하더라도 금나라의 아버지는 1억 원의 사채를 썼는데 갚아야 할 이자만 4억 원을 넘었다. 살인적 고리 대출을 받은 셈인데 대부업법상 연 66% 초과의 고리대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5회 방송분에서는 사채업자 마동포가 3년 전 조폭에게 빌려준 2000만 원을 돌려받기 위해 금나라에게 채권추심(빚 독촉)을 맡긴다. 금나라의 계산법에 따르면 이자를 ‘파격적으로’ 탕감해주고도 돌려받을 원리금은 1억 원이나 된다. 이 조폭은 상당분의 이자를 빼고도 3년간 400%의 폭리를 뒤집어 쓴 셈이다.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불법 고리사채의 이자율은 연 130%대에서 900%를 넘어 수천%까지 됐다. 통합신고센터에 접수된 한 사연을 들어보자.
A 씨는 2006년에 100만 원을 빌렸다. 물론 선이자 공제 후 80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2~3일에 한 번씩 이자를 지급했다. 원금 80만 원에 대한 이자율은 3000% 이상, 원금을 100만 원으로 치더라도 이자율은 2000%를 넘어서는 엄청난 고리다. A 씨는 처음 계약한 곳에서 다른 곳을 소개받아 200만 원을 빌렸다. 10일에 한 번 이자 20만원을 지급했다. 이자율은 300%. 보통 원금이 많을수록 이자율은 낮아진다. 대출 상환기간은 3개월. A 씨는 갚을 금액 500만 원을 다 갚은 것으로 생각했지만 업자는 200만 원을 더 요구했다. 이를 갚지 않자 업자는 주위 사람들을 협박하고 보증인을 세우라며 불법추심까지 일삼았다.
드라마에서 마동포는 금나라의 아버지가 빚을 갚지 않자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금나라의 직장에 찾아가 돈을 받아낸다. 추심원이 채무자의 집에 쳐들어가거나 폭행과 욕설은 물론, 가족에게 불안감과 공포심을 유발하는 행위는 셀 수도 없었다. 이는 모두 불법으로 처벌 대상이다.
이런 불법추심 행위는 현실 속에서도 적지 않다. B 씨는 사채 7000만 원을 빌렸다. B 씨에게 돈을 빌려준 이는 다른 사람에게 환수를 맡겼다. 채권 추심에 나선 이들은 B 씨가 일했던 식당을 감시하고 “B 씨를 데리고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면서 식당 안에서 임의로 밥을 해먹고 소주 맥주 등을 꺼내 마시고 자장면을 시켜먹고 방바닥에 이불을 꺼내 펴고 지내며 무려 3일간 식당을 점거했다.
▲ 불법사채업자들은 협박 폭행 감금 등을 서슴지 않는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내용과 관계 없음. | ||
D 씨는 등록된 대부업체로부터 사채를 썼다가 갚지 못했다. 사채업자는 D 씨에게 전화를 해 “돈을 갚지 않으면 네 딸을 찾아내서 피눈물 나게 해주겠다”면서 “빚 갚을 때까지 딸 시집 못 가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 업자는 한술 더 떠 딸에게도 전화를 해 “네가 돈을 갚지 않으면 공증을 붙여 시집가더라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협박했다.
주인공 금나라의 아버지가 써주고, 주인공 금나라가 초상집에서 내민 신체포기각서. 법적으로 무효다. 우리 민법은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를 규정한 제103조에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하고 있다. 또한 금나라는 경위야 어쨌든 여주인공 서주희에게 인신담보대출까지 한다.
특히 드라마에서 사채업자들이 주인공의 여동생인 금은지에게 성매매를 강요하면서 유흥업소에 소개하는 등의 행위는 민법상 무효이고,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드라마에서처럼 불법사채는 여성을 ‘성적 위협’에 노출시킨다. “몸뚱아리를 팔아서라도 갚으라”는 것. 실제 통합신고센터에서 상담을 한 피해자 E 씨의 사연은 기막히다. E 씨는 300만 원을 빌리면서 차용증을 썼다. 대출 조건에는 ‘업자가 연락하면 언제든지 그 즉시 만날 수 있어야 이자를 제외해 주겠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지만 E 씨는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도장을 찍었다. 인신담보대출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E 씨가 돈을 빨리 갚지 못하자 업자는 ‘조건’대로 E 씨를 불러냈고 불행하게 성폭행까지 당했다. 악몽은 계속됐다. 업자는 E 씨의 집과 아르바이트하는 곳까지 찾아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었고 이후 성폭행도 3~4차례 계속됐다. 상담할 때까지 원금은 200만 원 정도 갚은 상황. 하지만 업자는 ‘조건’을 번복하고 이자도 내라고 종용했다.
사금융에서 돈 때문에 전쟁이 일지는 않는다. 사상자만 나올 뿐이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