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왼쪽),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 | ||
김남구 사장은 김재철 동원그룹 창업주의 2남 2녀 중 장남이다. 1963년생인 김남구 사장은 경성고와 고려대 경영학과(83학번)를 졸업하고 1987년 동원산업에 입사했다. 입사 뒤 곧 유학을 떠난 그는 일본 게이오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91년 동원증권 대리로 그룹에 컴백한다.
원양어선을 타며 일가를 이룬 부친 김재철 회장의 경영수업은 혹독했다. 김 사장이 입사를 앞두고 5개월간 알래스카행 원양어선을 탄 것은 유명한 일화. 망망대해에서 하루 16시간씩 중노동, 말 그대로 ‘체험 동원의 현장’이었다. 동원증권에 입사할 때도 여의도 본사가 아니라 명동 코스모스지점으로 발령받았다. 지점과 채권영업, 기획실을 거친 뒤에야 임원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새 증권업계의 최고 실력자로 우뚝 선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김 사장의 동원증권 선배다. 박 회장은 김 사장보다 다섯 살 많은, 그 유명한 ‘58년 개띠’. 광주 중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명문인 광주제일고를 나와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78학번), 김 사장과 동문이라는 인연도 겹친다.
대학 2학년 때부터 고향에서 올라온 학비와 생활비를 종자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한 박 회장은 1986년 동양증권을 거쳐 88년 동원증권 과장으로 들어간다. 광주일고 선배이자 친형의 동기동창인 김정태 당시 인사담당 전무(전 국민은행장)와의 인연이 있었다.
박 회장은 1991년 동원증권 중앙지점장이 된다. 당시 국내 최연소(33세)였다. 그리고 주식 약정 전국 1위 지점, 94년 압구정지점장 때 2년 연속 전국 증권사 지점 약정고 1위, 95년엔 전국 최연소 강남본부장 겸 이사 승진…. 성공가도를 달리던 박 회장은 1997년 6월 ‘박현주 사단’을 이끌고 나와 미래창업투자(현 미래에셋캐피탈)를 설립하며 독립한다.
그가 독립할 당시 박 회장을 친아들처럼 아꼈다는 김재철 회장과 김남구 당시 이사는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잡지 못했다고 한다.
박 회장은 98년 법 개정으로 간접주식투자의 길이 열리자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하고 뮤추얼펀드 판매에 들어가 ‘박현주1호’ 등 수익률 90%대 대박을 떠뜨렸다. 2000년 1월엔 미래에셋증권이 출범하면서 파격적인 위탁수수료 인하를 감행, 1년 만에 약정고 7위권 증권사로 도약했다.
하지만 ‘신화’는 DJ 정부 후반 들어 그를 둘러싼 이런 저런 소문 속에 안개에 가려졌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물밑 행보를 지속하던 박 회장은 다시 기지개를 켰다. 2004년 5월 SK투신을 인수, 맵스자산운용과 합병해 3개의 자산운용사를 거느리게 됐다. 2005년엔 SK생명을 인수, 미래에셋생명보험을 설립해 은행만 없는 금융그룹을 완성한다.
최근 주식시장이 불을 뿜으면서 미래에셋그룹은 펀드시장의 50% 이상을 싹쓸이하고 있다. 그동안 미래에셋이 만든 펀드가 고객의 돈을 불려서 돌려준 규모만 해도 7조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에 미래에셋증권 매장에는 대기 번호표까지 뽑아들고 모여드는 사람과 돈이 넘치고 있다. 모 재벌 구조본에서 미래에셋에 대한 특별보고서를 작성해 올렸다는 후문까지 나돌고 있을 정도다.
박현주 회장이 독립해 떠난 후 김남구 사장의 동원금융그룹은 KTB나 하나은행 등에 관심을 보이며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불리기에 나서는 등 차근차근 내실을 쌓았다. ‘김남구 이사’도 1998년 상무, 99년 전무, 2000년 부사장,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 2004년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그동안 쌓은 내공이 빛을 발한 것은 2004년 시작된 한국투자증권 인수전. 김 사장은 그해 3월 “자산운용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한투나 대투 단독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고 2005년 인수에 성공했다. 동원이라는 이름도 과감히 버리고 한국투자증권과 한국투자금융지주로 거듭났다. 이로써 한국투자금융은 제2금융권에서 비은행계 금융그룹의 정상을 넘볼 수 있는 플랫폼을 완성했다.
합병 이후 비슷하던 한투와 대투는 2년여가 지난 지금 동원에 인수된 한투가 하나금융그룹 품에 안긴 대투보다 월등한 성적을 올리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비은행계 금융그룹의 선두권으로 뛰어오른 두 기업의 대결구도도 본격화했다. 특히 미래에셋과 한국투자증권은 최근에 묘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미래에셋이 2분기에 엄청난 물량의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치웠다는 것은 증권가에 널리 알려진 사실. 일각에선 삼성전자 주가 하락의 주 원인으로 미래에셋을 지목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게 한국투자증권에 독이 됐다는 점. 한투에선 지난해 삼성그룹 펀드를 만들어 집중 홍보하기도 했는데 올해 삼성전자 주가가 52주 연속 신저가를 기록하면서 요즘 같은 상승장서도 맥을 못추고 있다. 때문에 ‘물 먹은’ 한투가 미래에셋을 벼르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돌고 있다.
해외에서도 미래에셋은 중국+인도의 ‘친디아’로, 한투는 베트남을 기반으로 한 ‘금융실크로드’로 경쟁하고 있는 두 기업은 지난 2월 베트남 증시 경고음으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박현주 김남구, 두 사람의 대결은 앞으로 더욱 흥미를 끌 전망이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