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대통령 동선이 언론에 노출된 지난 5월 21일, 국민의힘은 벌집 쑤신 듯 시끄러웠다. 윤 전 대통령 본인에 대한 내란 혐의 재판에서 여러 불리한 증언이 쏟아지고 있는 데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샤넬백 수수 의혹 수사에서 핵심 증거가 확보됐다는 뉴스가 조간신문에 도배된 바로 그날이었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물론, 당직자들도 윤 전 대통령 얘기가 들려오자 “정말 그랬어? 하필 오늘 나왔데?”라는 반문부터 쏟아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의 영화를 공개적으로 지켜봤다. 그는 서울 동대문구 한 영화관을 찾아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관람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파면 결정 이후 첫 공개 행보로 부정선거 영화 관람을 선택한 셈이다. 보수 열혈 지지층을 상대로 대선 정국에서 ‘부정선거론’을 합리화하고 또다시 공론화해보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자신이 받고 있는 형사 재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도 이어진다.
윤 전 대통령이 영화관에 도착했을 때 ‘너만 몰라 부정선거’라는 글귀가 적힌 붉은색 풍선을 든 지지자들이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고, 윤 전 대통령은 가볍게 눈인사를 하면서 상영관으로 입장했다. 또 영화관에 설치된 홍보 포스터에는 영화 제목과 함께 ‘6월 3일 부정선거 확신한다’라는 문구가 크게 새겨졌다.
현장에는 영화를 감독한 이영돈 PD, 제작을 맡은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 등이 함께 나왔고, 이미 오래전부터 부정선거론을 주장해온 무소속 황교안 대선 후보도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 관람 후 이영돈 감독은 기자들과 만나 “윤 전 대통령이 ‘컴퓨터 등 전자기기 없이 대만식이나 독일이 하는 투명한 방식으로 선거가 치러져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부정선거에 대한 의구심을 윤 전 대통령이 여전히 거두지 않고 있는 대목으로 여겨지는 발언이었다.
국민의힘에서는 윤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 논란을 또 건드리자 불만이 폭주했다. 5월 12일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윤 전 대통령이 탈당, 국민의힘이 새출발을 한다는 산뜻한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주려는 계획을 당 관계자들은 갖고 있었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이 탈당을 질질 끌자 초반 기선제압 기회를 막아버렸다는 하소연이 나온 바 있다.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윤 전 대통령은 당 안팎의 ‘절연’ 요구가 쏟아졌음에도 버티는 모습을 보인 끝에 공식 선거운동 엿새째인 5월 17일에야 뒤늦게 탈당했다.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파면 결정 이후 44일 만의 탈당 선언이었다. 윤 전 대통령의 한발 늦은 탈당으로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정리를 제때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윤 전 대통령 탈당 관련 브리핑에서 “지난 일주일 동안 언론의 관심이 윤 전 대통령의 탈당 문제에 집중돼 있어서 김 후보의 장점과 진면목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는 내부 분석이 있었다”며 “남은 2주 동안은 더 자유롭게 선거 유세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의 늦은 탈당이 김 후보 선거 유세를 발목 잡은 악재가 돼왔고 이제 걸림돌이 해소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구속되고 파면되는 과정에서 대통령 재임 때와는 달리 편협한 정보만 제공받게 될 윤 전 대통령의 처지를 생각하면 정치적 판단력이 예전보다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사법 판단 앞에도 서 있어 자신을 옹호하는 목소리에 기대기 쉽고 결국 열혈 지지자들의 강성 의견에 함몰되는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데 지금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이 특정 세력의 리더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통치자였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김문수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실패 및 후보 교체 시도 파동 과정에서도 ‘그림자 논란’에 휩싸였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최종 경선에 오르지 못하자 탈당, 미국에 머무르고 있으며 “선거유세를 도와 달라”는 당의 요청을 끝내 거절했다. 경선 과정에서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것으로 전해진 홍 전 시장은 “경선 과정에서부터 이미 후보 단일화를 염두에 둔 ‘용산과 당 지도부의 공작’이 있었다”면서 윤 전 대통령을 직격했다.
그는 경선 종료 이후인 5월 7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용산과 당 지도부가 합작해 느닷없이 한덕수를 띄우며 탄핵 대선을 윤석열 재신임 투표로 몰고 가려고 했을 때 나는 설마 대선 패배가 불 보듯 빤한 그런 짓을 자행하겠냐는 의구심이 들었다”면서 “그게 현실화하면서 김문수는 김덕수라고 자칭하고 다녔고 용산과 당 지도부는 김문수는 만만하니 김문수를 밀어 한덕수의 장애가 되는 홍준표는 떨어뜨리자는 공작을 꾸미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홍 전 시장은 윤 전 대통령을 향해 “나라 망치고 이제 당도 망치고 있다”고 때리면서 “용병 하나 잘못 들여 나라가 멍들고 당도 멍들고 있다. 3년 전 당원들이 나를 선택했으면 나라와 당이 이 꼴이 됐겠나. ‘오호통재라’라는 말은 이때 하는 말”이라고 짚었다.
최종 경선에서 탈락한 한동훈 전 대표 역시 5월 20일부터 뒤늦은 김문수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섰지만 선거운동보다 당내 계파 갈등 양상을 확산시키는 언급이 더 주목받고 있다. 후보 지원 선거운동이 아니라 ‘자기 정치’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 전 대표는 5월 22일 충북 청주 육거리시장 유세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향해 “(대통령 선거에서) 발목 잡지 말고 민주당으로 가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노쇼 경제학’이나 ‘120원 커피 경제학’처럼 그런 말 같지 않은 (말을 하는) 무능하고 위험한 세력에게 왜 우리가 밀리고 있나”라며 “계엄의 바다를 제대로 건너지 못하고, 부정선거의 늪을 제대로 건너지 못하고, 윤석열 부부와 제대로 절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여기 이렇게 빨간 옷 입고 2번 달고 호구처럼 나선 건 저 친윤(친윤석열) 떨거지들의 호구가 되기 위한 게 아니다. 바로 여러분과 대한민국의 호구가 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은 영화 보러 다니고 김건희 여사는 검찰 출석에 불응한다”면서 “(윤 전 대통령이) 진짜 이상한 행동으로 선거판을 망쳐 놨다. 갑자기 한덕수 띄우고, 갑자기 전한길 부르면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판이 망가졌다”고 비판했다.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친윤(친윤석열)계 인사들이 개혁신당에 당권을 대가로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다는 폭로가 나온 데 대해서는 5월 22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번 대선은 친윤 구태를 청산하는 혁신의 장이 돼야 한다”면서 “친윤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뒷배로 호가호위하고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망상을 옆에서 자극하고 이용해서 나쁜 정치 해 온 사람들”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탄핵으로 인한 혼란을 극복하는 길은 당의 화합이었는데 윤 전 대통령 쪽에서 여러 경솔한 행동이 나오면서 당이 사분오열 쪼개졌고 결집과 연대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재명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윤 전 대통령까지 악재로 작용하자 국민의힘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라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당 지도부는 “탈당한 윤 전 대통령의 행보는 당과 무관하다”며 “윤 전 대통령은 이제 남”이라는 메시지를 연이어 내고 있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부정 선거 관련 영화 관람 소식이 알려진 5월 21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전 대통령은 탈당했다. 저희 당과 이제 관계없는 분”이라며 “개인적 입장에서 봤을 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에 대한 반성·자중을 할 때 아닌가”라고 말했다. 신동욱 수석대변인도 기자들에게 “윤 전 대통령은 저희 당을 탈당한 자연인”이라며 “윤 전 대통령의 일정에 대해 코멘트해 드릴 것이 없다”고 밝혔다.
김문수 대선 후보도 윤 전 대통령 영화 관람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거리두기를 했다. 그는 이날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 나가 “누구라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해명하고, 해명할 노력을 계속 해야 한다”는 원론적 발언만 내놨다.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한 가운데 상황이 급박하다고 판단했던지 김용태 위원장은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그는 “국민의힘은 김건희 여사의 과거 행위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헤아리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 앞에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지도부가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당 안팎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조경태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재명 민주당 제1호 선거운동원을 자청하는 건가”라고 윤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김근식 송파병 당협위원장도 페이스북에서 “제발 윤석열, 다시 구속해주세요”라며 “우리 당이 살고 보수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재구속만이 답”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보수정당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봤는데 언제나 악재는 혼자 오지 않았던 터라 탄핵 당한 국민의힘 앞에 연쇄적으로 지뢰가 폭발하고 있고 더 터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