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백화점 식료품 매장에는 ‘헉’소리가 날 만큼 고가의 과일들이 진열돼 있다. 가령 미야자키현의 ‘태양의 알 망고’, 시즈오카현의 ‘크라운 멜론’, 이시카와현의 ‘루비로망 포도’ 등이다. 이는 일본에 깊이 자리잡은 선물문화와도 무관치 않다. 선물용 프리미엄 과일은 각 지역의 특산물로 브랜드화돼 고급화 전략을 펼친다.
멜론 한 통이 1만 5000엔(약 14만 원)에 판매되는가 하면, 15알가량이 붙은 포도 한 송이가 8000엔, 프리미엄 흰 딸기는 한 알에 3000엔에 달한다. 홋카이도 유바리시의 특산품 ‘유바리 멜론’은 2019년 삿포로 도매시장 경매에 등장해 개당 250만 엔(약 2334만 원)에 팔리는 경이적인 기록도 세웠다. 이 같은 고급 과일의 경매 낙찰가는 일본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에 브랜드 홍보 효과도 크다.
‘명품 과일’ 열풍은 미국에서도 본격화되고 있다. 영국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고급 과일이 미국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떠올랐다”며 “소셜미디어(SNS)와 미식 문화 확산이 시장 확대를 이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일본산 과일의 인기가 두드러진다. 로스앤젤레스의 프리미엄 유기농 마트 에레혼(Erewhon)은 최근 일본산 딸기를 수입해 개당 19달러(약 2만 6000원)에 판매해 화제를 모았다. 생산량이 한정된 일본산 크라운 멜론은 수백 달러에 거래되기도 한다.

미국 경제지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일본 정부가 고급 과일의 수출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내수 시장의 축소 때문이다. 일본 농업은 젊은 세대의 농업 기피 현상과 농가의 폐업 등으로 해마다 쇠퇴 중이다. 미쓰비시종합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일본 농업 생산액은 8조 9000억 엔이었으나 2050년에는 그 절반 이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일본 정부가 과일의 명품화를 통해 해외 소비층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일본 내 농업 종사자 수를 늘리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기후변화로 인한 농산물 수급 불안정 등이 과제로 지적된다.
#과일 재배도 장인 정신으로 승부
일본의 고급 과일 재배를 단순한 농업이 아닌 ‘장인 문화’의 연장선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방일 당시 방문했던 스시 맛집의 주인공, 오노 지로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스시 장인: 지로의 꿈’이다. 해당 작품에서는 스시 요리사를 꿈꾸는 지망생들이 최소 10년간 수행을 거치고, 처음 3년 동안은 오직 밥 짓는 법만 배운다는 일화가 나온다.

온도, 물 주는 시점, 수분 조절 등 작은 수치 하나로 상품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교한 관리를 요구한다. 한 멜론 농가는 “단순히 멜론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각오로 매일 온실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보통은 한 줄기에 8개 이상의 열매가 달리는데, 하나의 멜론만 남기고 모두 솎아낸다. 이른바 1그루 1과실 농법으로 하나의 열매에 영양분이 응축돼 당분이 높아지고 식감과 향은 극대화된다.
크라운 멜론을 비롯한 일본산 과일은 국가적 품질 등급 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과일의 크기와 모양, 당도, 색깔 등을 기준으로 등급이 세분화되며, 이를 통해 전국적으로 균일한 품질 유지와 소비자 신뢰 확보가 가능하다. 일부 지자체는 독자적인 채점 기준도 있다. 가령 시즈오카현은 최고점을 받은 크라운 멜론에 ‘후지’라는 등급을 매긴다. 쉽게 말해 ‘과일계의 미슐랭 3스타’와 같다. 1000개 중 1개 정도만 후지 등급을 받기 때문에 그만큼 가격이 비싸다. 보통 한 통에 3만 엔(약 28만 원) 이상에 거래된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생산되는 명품 딸기
딸기 재배는 더욱 애물단지다. 일조량, 더위, 건조, 해충에 민감한 탓에 딸기 농가는 하우스 재배를 하고 환경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달콤함의 열쇠가 되는 것은 수확의 타이밍이다. 딸기는 줄기에 오래 붙어있을수록 달다. 그러나 완숙 딸기를 수확하면 수송 중에 쉽게 상할 수 있다는 문제가 따른다.

미국 내에서 일본 품종의 고급 과일을 직접 재배하려는 시도도 있다. 일본 출신인 고가 히로키는 2017년 뉴저지에 식물공장 ‘오이시이(Oishii)’를 공동 창업했다. 일본식 과수 농법을 적용한 이 공장은 일본 딸기 품종인 ‘오마카세 베리’를 주력으로 생산한다. 일반 딸기보다 훨씬 달콤해 6개들이 한 상자가 14달러(약 1만 9000원)에 판매된다. 슈퍼마켓 월마트에서 파는 딸기보다 3배 정도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연일 품절 사태를 빚고 있다.
고가 히로키 대표는 “파티에 와인 대신 이 딸기 세 박스를 가져가 보라”며 “그 어떤 선물보다 강한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급 과일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늘면서 ‘값비싼 과일’의 매력은 세계 시장으로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