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수위 건물에 모인 기자들이 출근하는 김용준 인수위원장에게 질문세례를 퍼붓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최근 국회를 출입하는 중앙언론의 여당 반장들 몇몇이 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 행정실 관계자와 밥을 먹었다고 한다. 행정실에 대고 비비고 찔러봐야 나올 게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말 들을 말이 없었다”는 전언이다.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인수위 사무실 밖 사람들은 아는 바가 없다.
인수위가 본격 가동 중이지만 우습게도 언론의 촉수는 모두 당선인과 그 비서실에 뻗어 있다. 기밀 유지와 함구령, 인터뷰 금지 등 인수위의 입을 틀어막아놓은 탓이겠지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 봐서다. ‘박근혜 정부’ 국정운영의 큰 틀과 세부전략은 인수위와 1.7km 떨어진 당선인의 집무실과 비서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박 당선인의 ‘가이드라인’이 없이 행해지는 모든 일들은 모두 ‘돌출행동’으로 비치는 분위기다. 일부 신문과 방송은 인수위 건물 밖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한 게스트하우스(하루 7만 원)를 빌려 아지트로 삼고 인수위 관계자의 출퇴근 길목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 인수위에서 ‘특종은 없다’.
지난 일이지만 지난해 새누리당 대선 경선과 본선에서 “박 후보가 이제는 자기 식대로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는 말이 자주 오르내렸다. 경선 룰 논란에서도 이런저런 충고와 지적, 직언과 충언이 있었지만 박 당선인은 ‘마이 웨이’를 굽히지 않았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며 메시지와 일정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에서도 자신의 시간표를 고집했다. 이 사람을 써야 한다, 저 사람은 내쳐야 한다는 주변 인사들의 권고도 듣지 않았다. 지금 ‘박근혜 인수위’는 그 연장선에 있다. ‘내 식대로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다.
먼저 비서실과 인수위의 인적 구성을 보면 한눈에 드러난다. 정치권과 언론은 일단 당선인 비서실은 대부분 청와대로 옮겨갈 것으로 보고 있다. 유세 수행 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진 고 이춘상 보좌관을 뺀 ‘보좌진 3인방’ 그 중 이재만 전 보좌관과 정호성 전 비서관은 친박계 중에서도 가장 충성파로, 유일하게 비서실에 안착한 이정현 정무팀장과 한 조를 이뤘다. 이 팀장의 보좌관이었던 음종환 씨는 당선인 대변인실에 소속됐다. 조인근, 최진웅 등 대선 때 활약한 당직자 출신도 합류했다. 이 팀장을 뺀 대부분은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며, 가까운 기자들에게도 입이 무거워 설화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수위 행정실에는 이학재 전 당선인 비서실장의 보좌관인 남호균 보좌관, 박 당선인의 경제 공약을 주도한 안종범 의원실의 이희동 보좌관이 들어갔다. ‘보좌진 3인방’ 중 안봉근 전 비서관은 인수위 행정실 전문위원에 포진해 비서실과 인수위 간 연락책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전광삼 장덕상 새누리당 부대변인과 최경환 이상일 의원의 보좌관인 장성철 이동빈 보좌관이 대변인실로 갔다. 실력파라기보다는 모두가 ‘충성파’로 분류된다. 철저하게 박근혜의 ‘1인 지상주의’다.
▲ 친박계 ‘충성파’인 이정현 비서실 정무팀장이 임명장을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무색무취’한 인수위도 “박 당선인이 권력을 나눠주지 않을 인사로만 채웠다”는 평가와 맥을 같이한다.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의 공동선대위원장이었지만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김용준 위원장에다,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에 임명된 유민봉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형 행정 환경을 연구해 온 정통 학자로 외골수로 정평이 나 있다. 대구를 지역구로 둔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이 경제1분과 간사로 발탁되자 그 지역 정치권에서는 “웬 류성걸?”이라는 반응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인수위 인선을 종합해서 들여다보니 답이 나왔다고 한다. 자기 세계가 분명하고, 언론과 주변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으며, 철저하게 입이 무거운 인사들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부려 먹기 좋은’ 전문가 집단이고, 제 할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학자들에다, 인수위 이후를 봐주지 않아도 애국한 것으로 만족할 소박한 인물군이란 이야기다.
‘박근혜의 인수위’의 특징은 ‘이명박과 거꾸로라면 좋다’는 ‘Anything but MB’로 볼 수 있다. 이명박의 인수위를 학습한 효과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이명박 당시 당선인은 정권교체를 했기 때문에 ‘점령군’ 행세를 할 수밖에 없었다면, 박 당선인은 정권을 재창출해 ‘아군’ 행세만 하면 되는 것이 큰 차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어떤 인사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파악이 어려우니 이명박 인수위는 철저하게 ‘수사관’의 입장에서 전 정부를 ‘취조’해야 했다.
하지만 박근혜 인수위는 그럴 필요가 없다. 판을 뒤집어야 하는 이명박 인수위는 철저하게 ‘충성파’로 채우면서도 CEO 출신이 정치를 잘할 수 있도록 내조할 수 있는 전문가로 채워졌다면, 박근혜 인수위는 퍼스트레이디 역할 때부터 철저하게 정치를 배워온 ‘정치의 대가’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입장이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인수위 태생과 역할은 이렇게 다르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철저하게 ‘이명박과 반대’다. 한번 실패한 재수생 출신 대통령으로 더 많은 내공을 쌓은 셈이다. 우선은 ‘철저한 보안’이다. 막말 논란에도 자리를 꿋꿋이 지킨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철저하게 입과 귀를 닫고 있다. 인수위가 가동되고 일주일이 흘렀지만 기자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는 자리에서도 ‘모르쇠’로 일관한다고 한다. 자가발전을 위해서는 인수위 분위기나, 기삿거리로는 모자란 뒷이야기 등을 풀 수도 있다. 그는 기자들의 모든 질문에 “좀 더 지켜보자”고 입을 닫는다. 오로지 박 당선인만 바라보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이명박 인수위의 인수위원, 자문위원, 실무위원들이 설화에 휘말린 것과는 정반대다. 안정돼 보이지만 투명하지는 않다.
이번 인수위는 ‘인수위 따로, 청와대 따로’라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에 속해 있던 인사들이 대부분 청와대와 그 주변부로 향했다. 손병두 당선인 정책자문위원은 KBS 이사장이 됐고, 임태희 당선인 비서실 실장은 대통령실 실장이 됐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맹형규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된 식이었다. ‘당선인 빼고 다 바꿔’ 분위기였다.
인수위에 친박계 인사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것도 이명박 정부와 아주 다르다. 인수위 인선에서부터 정두언 당선인 비서실 보좌역과 박영준 비서실 총괄팀장이 불필요한 알력다툼으로 소모전을 펼쳤다. 이 당선인은 그만큼 링 위에서의 자유를 줬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그런 비생산적인 권력투쟁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철저한 ‘수직적 분할통치’로 권력의 균점을 내주지 않는다. 좌장 정치를 않는 그의 용인술은 여전히 ‘마이웨이’다.
선우완 언론인,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