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영화는 흥행 반등의 기미를 찾지 못하고 있고,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도 해외 OTT 플랫폼을 거치지 않으면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K-팝 역시 외형적 성장은 유지하고 있지만 국내 대중과의 정서적 거리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등 돌림’이 지속될 경우 2026년 한국 연예계는 여전히 빙하기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업계에서 자주 거론되는 문제 원인 중 하나는 연예계, 그리고 연예인들과 대중 간의 정서적 괴리다. 올해 상반기 대중은 물론이고 스타들의 든든한 지지층이었던 팬덤까지 들썩이며 업계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정치색 논란’도 그 예 가운데 하나다.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와 방송인 홍진경 등이 6월 대선 전 붉은색 옷을 입은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하면서 번진 이 논란은 해외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다.
연예인들을 향한 대중들의 냉소적인 시선이 뚜렷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를 기점으로 보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탄핵 시위는 2030 여성을 주축으로 한 젊은 세대들이 중심이었는데, 특히 아이돌 팬들이 응원봉을 들고 대거 참여한 것이 큰 화제가 됐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모인 팬들이 이끈 이 응원봉 시위는 이른바 ‘빛의 혁명’으로 불리며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대중의 정서와 반대되는 행보를 보인 것은 영화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마약 상습 투약으로 물의를 일으킨 유아인은 지난 4월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주최하는 제23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시상식 영화부문 남자배우상 후보로 올랐으며, 가장 최근에는 ‘파묘’의 장재현 감독이 차기작 캐스팅 고려 중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대중들의 거센 분노를 맞닥뜨렸다. 심지어 유아인은 수상 후보로 거론될 땐 아직 대법 선고가 나기 전이었고, 차기작 논의가 이뤄진 시점은 ‘집행유예’ 기간이다.
이미 이전부터 영화계는 ‘대중 장사’를 하면서도 유독 대중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돼 왔었다. 2016년 홍상수 감독과 불륜한 배우 김민희를 향해 디렉터스컷 어워즈 시상식에서 시상자로 나선 이현승 감독이 “민희야, 감독들은 널 사랑한단다”고 공개적인 응원을 보내거나, 2024년 11월 제45회 청룡영화상에서 혼외자 논란이 불거진 배우 정우성의 ‘사과 스피치’ 자리가 마련되고, 업계인들의 물개 박수와 환호가 이어진 것이 대표적인 ‘그들만의 리그’ 예시로 꼽힌다. 당시 비판에 대해 이들은 “이게 논란이 될 줄 몰랐다”며 가볍게 넘어가는 태도를 보이면서 더 큰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대중을 등 돌리게 만든 사건사고가 연달아 터졌던 2025년은 연말까지도 조용할 새가 없었다. 배우 조진웅, 방송인 박나래, 그룹 샤이니 키, 유튜버 입짧은햇님 등 비교적 대중적 호감도가 높았던 연예인들까지 불법 행위 논란에 잇따라 휘말리며 신뢰의 균열은 더욱 깊어졌다. 일부 사안은 형사 처벌 여부와 무관하게 “연예인이 또 문제를 일으켰다”는 피로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영화제작사 관계자 B 씨는 “예전에는 ‘그래도 한국 노래를 듣고,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영화를 봐줘야 해’라는 연대 의식 같은 게 있었는데 지금 사람들의 반응은 ‘우리한테 뭐 맡겨놨냐?’라는 게 가장 정확한 해석인 것 같다”며 “대중 사랑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눈치도 보지 않고 계속 실망감과 피로감만 안겨주고 있는데 굳이 내 돈 써가면서 지지해줘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화계를 포함해 국내 엔터 산업은 대중을 상대로 장사하지만 정작 대중 정서를 가장 뒤에 두는 구조가 굳어진 것 같다”라며 “가뜩이나 제작판도, 투자판도 좁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들마저 이렇게 냉소적인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내년에도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