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회장의 보잉737 전용기. | ||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삼성 비자금 파문은 결국 해를 넘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검찰의 삼성 특별수사·감찰본부가 주요 팀장 인선을 끝내고 본격 수사에 나서게 돼 당분간 삼성 관계자들의 검찰청사 출입이 불가피할 것이다. 정치권의 특검은 일정상 대선 직전 수사 개시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최장 105일까지 수사기간 연장이 가능해 대선 이후 수사가 시작된다면 내년 3월까진 삼성 비자금 파문이 매스컴에서 사라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삼성 입장에선 어떻게든 여론 무마를 위한 특단의 해법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다.
정·관·재계 인사들은 삼성 안팎에서 활동하는 인사들의 의견을 토대로 ‘대국민 사과성명에 이은 삼성 총수일가의 사재 출연, 전략기획실 축소 혹은 해체’ 등을 거론하고 있다. 듣다 보면 지난해 초 상황이 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2005년 9월 이건희 회장이 국감을 앞두고 도피성 논란 속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이후 5개월 만인 지난해 2월 귀국하면서 삼성은 대국민 사과성명을 내놓았다. 이 회장 일가 사재 8000억 원 출연과 전략기획실 전신 구조본의 축소 개편 등이 골자였다. 과연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될까.
지난 11월 29일 용인 선영에서 열린 고 이병철 회장 20주기 추모식에 이건희 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대외적 불참 사유는 ‘건강상 문제’였다. 효심이 지극하기로 유명한 이 회장을 선친 20주기 추모행사에 못 가게 할 정도라면 감기 몸살 수준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는 이 회장의 외유설을 부채질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난 2005년 9월 미국 출국 당시 대외적 명분이 ‘신병치료’였던 까닭에서다.
이 회장 선친 이병철 회장은 연말이면 일본에 건너가 다음 해 사업구상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회장도 지난해 초 귀국 직전 일본에 머물며 국내 여론을 살폈던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 상황 변화에 따라 재빨리 움직일 수 있는 일본행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한다.
▲ 지난 16일 삼성본관 앞에서 비자금 사태를 규탄하는 민주노총의 결의대회 모습. | ||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 사건 재판과정에서 이 회장 소환설이 논란 속에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것을 감안하면 검찰 내 소환 논의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삼성이 꺼내들 수 있는 유효적절한 카드가 ‘신병 치료차 출국’ 외에 더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대국민 사과 성명을 통한 이 회장 일가의 사재 출연과 전략기획실 개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민단체들이 주장해온 지분 취득 과정의 논란을 털기 위해 상속세를 추가 납부할 경우 안 그래도 취약한 삼성 총수일가의 그룹 지배력이 흔들릴 수 있다. 차라리 지난해 8000억 원이나 그 이상 수준의 사재 출연을 하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힐 것이란 지적이다. 지난해 출연과정처럼 출연 기금 중 상당액을 삼성이 보유한 공익재단에 증여한다면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지배구조 유지와 사회공헌 강화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이 비자금 관리와 검찰 로비 장본인으로 지목한 전략기획실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 역시 불가피할 것이다. 지난해 대국민 사과성명으로 삼성은 구조본을 전략기획실로 축소 개편했지만 그 역할이나 위상은 종전과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일각에선 ‘아예 전략기획실을 없애야 부정적 여론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지주회사가 없는 일부 재벌들이 핵심 계열사 내 조직을 통해 그룹 전체 홍보와 대관 업무를 관장하는 사례가 거론되기도 한다.
전략기획실 개편설은 자연스레 그룹 살림을 주도해온 이학수 부회장(전략기획실장)과 김인주 사장 같은 전략기획실 핵심 인사들의 거취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세간에 나도는 삼성 사태 해결을 위한 희생양설의 주인공이 전략기획실 실세들 중에서 탄생할지에도 시선이 쏠린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지분 세습 과정은 물론 김용철 변호사가 공개한 삼성 비자금 파문과 검찰 로비설의 중심에 선 인물인 동시에 그룹 지배구조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 부회장 없는 삼성을 생각하기 어려운 현재 상황이 향후 검찰의 삼성 인사들 소환조사와 삼성이 꺼내들 비난여론 무마 카드 등과 맞물려 어떻게 변모해갈지에 정·관·재계 인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