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의 발단은 2009년 8월 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지방 토착 비리 근절’ 선언 직후 검찰과 해양경찰청은 SLS그룹을 겨냥해 3년간 전방위적인 수사를 벌였다. 대검 중수부부터 창원지검, 서울중앙지검까지 동원 가능한 모든 공권력이 투입됐다.
이 회장은 본인의 횡령 혐의가 무죄로 밝혀지던 날, 산업은행이 이미 작성해 둔 ‘SLS조선 사전 파산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고 주장한다. 대주주 동의나 주주총회 승인도 없이 전산으로 신용등급을 조작해 ‘강제 워크아웃’을 개시했다는 것이다.
주목되는 대목은 국부 유출 의혹이다. 당시 산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선주들이 건조를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47척의 선박 계약을 강제로 취소했다. 이 과정에서 선수금과 이자 등 1조 2000억 원 이상의 국민 세금이 해외 선주들에게 현금으로 반환됐다.

이국철 회장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역설적인 선택을 했다. 검찰이 법원에 서류를 제출하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 ‘판을 키워’ 구속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2011년 구속 결정 당시 그가 ‘만세삼창’을 불렀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교도소 안에서 1000여 건에 달하는 민·형사 소송 자료와 법정 증언을 대조하며 수만 쪽 분량의 퍼즐을 완성했다. 훗날 대법원은 무역보험공사 등의 주주권을 박탈하고 이 회장의 대주주 지위를 다시 인정했다. 이로써 당시의 워크아웃 절차가 위법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했다.
SLS조선 파산으로 숙련된 기술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한국 조선업의 허리는 끊어졌다. 이 회장은 책을 통해 “정치적 목적으로 기업을 살해하는 일이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17년의 침묵을 깨고 나온 이 ‘실록’은 특정 정파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기록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묻혀있던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당시 권력기관들이 이 사건에 어떻게 개입했는지에 대한 재조사 여론이 조성될지 주목된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