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래도 제가 태어나기 전에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이다 보니 저도 성인이 된 이후에야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었어요. 이번 작품 제안을 받고 나서는 그저 '이렇게 큰 사건이 있었구나' 정도로만 알았던 것을 다시 시간을 돌이켜 가며 찾아볼 만큼 인지할 수 있게 됐던 거죠. 더욱이 이 시대 안에 뛰어들어야 하는 기자 역이니까 그 시대의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연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감독님과 이야기도 정말 많이 나눴고요. 당시 살았던 본인의 경험, 바라봤던 시대의 이야기, 이런저런 사건들, 시대 속에서 느낀 관계들을 감독님께 들으며 저도 차츰차츰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관객이 그 시대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보게 만드는 통로는 박해일이 연기한 신문사 사회부장 재환이다. 영화 속 재환은 전사나 별도의 부연 설명 없이 철저히 '기자'로 존재하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신문사라는 공간 안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박해일에게도 재환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비어 있는 서사를 상상해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오랜 시간 몸에 익혀온 직업적 감각을 어떻게 스크린 안에 자연스럽게 새길 것인가에 있었다.
"제가 영화로 2000년에 데뷔했는데, 2026년까지 작품을 하면 꼭 한 번씩 거치는 게 기자들과의 만남이었어요. 그런데 문득 내가 이렇게 이 직종을 자주 겪어왔는데 왜 이제껏 기자 역할을 한 번도 못 해봤나 싶더라고요. 다른 것보다 더 물리적으로 체화하고 기억할 수 있는 캐릭터인데 미처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던 중 이 역을 맡게 되니까 '무조건 잘해내고 싶다'라는 마음을 출발점 삼아 시작하게 됐어요. 그 시대든 지금이든 구분을 두지 않고 그저 '기자'라는 가장 보편적인 부분에 집중하려고 했고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그 장면은 앞선 이야기들을 잘 엮어서 차곡차곡 쌓아가다가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십 명 언론인들이 연대하는 가장 중요한 신이니까요. 촬영에서 정말 기억에 남는 게, 저는 연설문을 외쳐야 하는 와중에 정면에서 사람들이 치고 들어오는 상황이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공간에 함께하신 모든 배우분들이 저와 똑같은 온도로 준비해주고 계셨어요. '와 진짜 (연기하기) 부담스럽다' 싶었는데(웃음), 한편으론 재환이란 한 인물을 모두가 이토록 배려하고 지켜주는 것에서 이제까지 제가 보지 못했던 단결된 힘이 느껴지더라고요."
박해일이 말한 '단결된 힘'은 화면 밖에서도 이어졌다.'암살자(들)'은 박해일·유해진·이민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그 주변을 채우는 배우들의 면면 역시 만만치 않다. 특히 정우성을 비롯해 오정세, 배성우, 박지환, 류혜영, 김대명, 박해준, 심은경 등 20여 명에 달하는 특별출연 배우들이 크고 작은 역할로 곳곳에 등장하며 똑같은 에너지로 영화의 밀도를 끌어올린다. 이 가운데서 박해일은 그가 염원해 왔던 한 배우와의 첫 호흡을 회상하며 "한국영화의 대표 아이콘을 드디어 만났다"고 웃어 보였다.

이렇게 여러 인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퍼즐을 맞추지만 '암살자(들)'은 그 조각을 모아 하나의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는 영화는 아니다. 실제 역사를 모티브로 삼되 영화가 파고드는 것은 사건 자체의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것보다 당시 이를 쫓았던 사람들의 시선에 집중한다. 경찰은 수사하고 기자는 질문하지만 이들이 마주하는 사건의 파편들과 권력이 내놓은 설명 사이에서 계속 틈이 생긴다. 영화는 그 간극을 억지로 메우는 대신 끝까지 남겨두면서 관객들에게 이 시대에서도 질문을 던진다. 박해일은 그 점이야말로 허진호 감독다운 방향성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건의 진실은 모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관객분들께 그 점을 느낌표 또는 물음표로 질문드리는 게 우리 영화가 가진 톤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정답이나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큰 사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으로 스토리를 펼쳐가니까요. 1970년대 역사를 다루고 있다고 하지만 '진실'이란 단어의 뜻은 그때나 현재나 다르지 않을 거예요. 과거든 지금이든 항상 어려웠던 것은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니, 그런 메시지까지 영화가 담아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