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실장의 향응 문제를 자체 조사하고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양길승 실장의 술자리 참석 경위와 향응, 청탁 여부에 초점을 맞춰 조사할 것”이라고 밝혀 조만간 그 진상이 드러날 전망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양 실장의 동선을 몰래 촬영한 몰카에 있다. 지금까지 일반인이나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훔쳐보기 위해 몰카를 촬영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정치권에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들이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충격 때문인지 양 실장 몰카를 둘러싼 각종 ‘음모론’도 더욱 다각도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지난 6월28일 청주를 방문 해 K나이트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나오는 현장을 찍은 몰 래카메라 화면. 몰카의 제작자 등을 둘러싸고 갖가지 ‘음모론’이 나돌고 있다. SBS TV 촬영 | ||
수사는 몰카의 제작자와 기획의도, 그리고 언론 공개 경위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과연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양길승 몰카를 만들었는지 보이지 않는 실체에 ‘렌즈’를 들이대봤다.
양길승 몰카에 얽힌 시나리오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이번 사건 초기만 해도 정치적 의도 때문이라는 해석이 강했다. 특정한 지방 정치세력이 이번 사건 장본인 중 한 명인 오원배 민주당 충북도지부 부지부장과 참여정부의 도덕성을 훼손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기획했다는 시나리오다.
오 부지부장은 지난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를 열렬하게 지지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당시 유력한 후보였던 모 의원 지지파들과 심한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충북도지부의 한 관계자는 “오씨가 지난해 민주당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 과정에서 충북팀장을 맡은 이후 시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며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술자리 장면을 몰래 찍어놓은 것 같다”고 추측했다. 오 부지부장도 사건 초기 이런 해석에 어느 정도 무게를 두는 발언을 했다. 그는 “나를 음해하려는 일부 세력들이 이번 일을 꾸민 것으로 보인다. 내가 타깃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각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역의 정치권이 기획했다고 보기에는 몰카의 치밀함과 정보력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청주 지역의 A기자는 “이 지역 당직자들이 그렇게 치밀하고 정보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랜 야당생활을 하면서 말 그대로 투쟁해온 사람들인데 ‘음모’를 기획하고 행동할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고 반론을 폈다.
정치적 해석이 수그러들면서 술자리 파문의 장본인인 K나이트클럽 소유주 이아무개씨(50)를 둘러싼 의혹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경찰의 수사를 받아오던 이씨가 압력용으로 권력 핵심과의 친분을 내세우기 위해 직접 만들었다는 설과 이씨와 사업상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업주측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씨의 ‘자작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업 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씨는 정육업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 뒤 관광호텔과 오락실 터키탕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부를 쌓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씨는 이 과정에서 친인척으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등 지역 사회에서 그다지 좋지 않은 평판을 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소문과 투서 때문에 청주지검은 지난해 3월부터 이씨에 대해 은밀하게 내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이 조사한 혐의내용은 건설회사 인수과정, 볼링장 호텔 터키탕의 탈세여부, 조직폭력배 살인사건 배후 여부 등이었다는 것. 특히 지난 89년 청주 북문로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배후를 캐기 위한 조사에 주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씨에 대한 수사는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씨 수사를 담당하던 Y검사는 지난 3월 인사에서 전보발령됐다. 충북의 한 일간지 기자는 이에 대해 “이씨는 오래 전부터 힘있는 기관에도 손을 뻗쳐 검찰 경찰 등에 선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전직 검찰 고위간부였던 K, Y씨 등과의 친분을 내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청주 지역에서는 이런 소문이 거의 ‘정설’처럼 돼 있다. 검찰이 지난해부터 그를 쫓아다녔지만 막강한 배경 덕분에 살아남았다고 전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배경’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씨는 지난 4월부터 조세포탈과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위험을 느낀 이씨가 양 실장을 통해 수사 기관에 외압을 넣기 위해 ‘거래용’으로 몰카를 촬영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씨는 “사건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를 언론에 공개할 바보가 어디 있느냐”며 자신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극도의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씨를 둘러싼 또 다른 가능성은 그가 운영하는 K나이트클럽과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업체가 이번 일을 ‘기획’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씨는 1천여 평의 대형 공간에 3백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K나이트클럽을 새로 오픈해 후발업체임에도 청주 유흥가에서 독주를 해오던 터였다. K클럽은 지난해 10월 개점 이후 6개월간 매출액이 1백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호황을 누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경쟁 업소측이 치밀하게 ‘작품’을 만들어 이씨를 곤경에 빠뜨리려 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최근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검·경의 수사를 받고 있었다. 상대 업주측이 이를 호기로 여겨 양 실장과의 술자리 회동을 몰래 촬영한 뒤 이를 이용해 이씨에 대한 ‘방어막’을 차단하고 답보상태인 수사를 급진전시키려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근 청주지검 특별전담팀은 이 시나리오에 무게를 두고 수사의 초점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전담팀은 이씨가 주변 친인척, 청주지역 정치권 인사, 경쟁업체 등과 불편한 관계를 맺어온 사실을 밝혀내고 수사에 힘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지역의 사업주에 불과한 사람들이 청와대 부속실장의 은밀한 스케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몰카를 찍었다고 추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경쟁업소에 종업원 등으로 위장시킨 ‘프락치’를 심어 상대 업소의 정보를 캐내는 유흥업계의 관행상 이씨와 갈등관계에 있는 인물들은 양 실장의 청주 방문 사실을 어렵지 않게 사전에 포착할 수 있었고, 몰카까지 찍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이씨의 대외로비 창구역을 맡아온 국정원 출신 H씨가 최근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마지막 가능성으로는 이씨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는 수사기관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채증 차원에서 촬영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양 실장과의 술자리에 동석한 K나이트클럽 소유주 이아무개씨의 조세포탈 및 윤락행위 방지법 위반 혐의를 수사중인 수사기관 관계자가 이씨를 미행하며 증거 수집용으로 촬영하던 중 양 실장이 우연히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청주의 한 수사기관은 이에 대해 ‘말도 안된다’며 펄쩍 뛰고 있다. 이미 관련 장부 등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같은 무리수는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앞서의 A기자는 “이씨 비리에 대한 내사는 약 1년 전부터 진행되었지만 진척이 없었다. 이씨는 검찰 전직 고위간부들과 친분을 과시하기도 하면서 검찰의 내사에도 건재했기 때문에 지역의 수사기관이나 정보를 담당하는 곳에서는 몹시 언짢고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기획을 했을 수도 있다. 내사를 해도 안되니까 그를 잡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가설은 범죄의 생리를 잘 아는 ‘프로’ 수사기관이 주요 수사자료인 비디오테이프를 방송사에 제공했겠느냐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편 청주지역에서는 양 실장 몰카 비디오 ‘미공개 테이프’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다. ‘용의자’들이 13시간여 동안 몰카를 촬영했지만 SBS에 넘긴 비디오는 10여 분 분량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술자리 내부 몰카가 공개될 경우 오고간 대화 내용에 따라 엄청난 파문이 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