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대위원장(가운데)이 지난 14일 제 1차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국민들은 ‘뼛속까지 다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민주통합당은 화장 또는 변장만 하려고 한다. 5년 전의 데자뷰를 보는 것 같다. 달리 말하면 ‘이렇게 가서는 5년 뒤도 어렵다’는 얘기다.”
민주당 내에서 김근태계로 통하는 민주평화국민연대 소속 한 의원은 최근 출입기자들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처럼 울분을 토했다. 민주당 혁신 논쟁이 한창인 와중에 안철수 전 무소속 대통령선거 후보의 입당 여부를 둘러싸고 당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안철수 입당론’은 위기의 본질을 호도하는 화장술, 변장술에 불과하다. 민주당이 그동안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근본적인 개혁은 등한시한 채 ‘외부 수혈’로 얼렁뚱땅 넘겨왔던 게 위기의 본질이라는 주장은 적지 않다. 이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위기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곤 했던 ‘새 피 수혈’ 전략을 답습해서는 더 이상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암울한 전망을 깔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7년 17대 대선과 2012년 18대 대선 과정을 비교하면 놀라우리만치 유사한 점이 있다. 실패한 세력으로 낙인 찍혔던 민주당이 외부 세력과 손을 잡았고, 그런 와중에도 본선에는 민주당 후보를 내세워 패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미 폐족 취급을 당했던 당시의 열린우리당은 구민주당과 한나라당 출신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무소속의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 등에게 손을 내밀었다. 열린우리당만으로는 대선은 해보나 마나였기 때문이다. 반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당명을 4번씩이나 바꿔 가면서 열린우리당은 결국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탈바꿈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열린우리당이 3분의1, 구민주당이 3분의1, 손학규계가 3분의1 지분으로 만들어졌지만 본선 후보는 열린우리당의 대주주였던 정동영 전 당의장이 차지했고, 이는 대선 참패로 이어졌다.
2012년 대선에선 안철수 전 후보가 민주당의 ‘변장 수단’으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불과 몇 달 전 4·11 국회의원 총선거 때 통합진보당 등과 야권연대를 성사함으로써 민주당 간판이 아닌 ‘야권연대 간판’으로 선거를 치렀던 것처럼 대선에서도 안 전 후보를 적극 활용했다. 새 정치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던 안 전 후보는 친노(친노그룹) 패권주의 논란을 잠재우는 데 더 없이 좋은 수단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에게 안 전 후보는 어디까지나 수단이었을 뿐, 본선 진출권은 이번에도 문재인 전 후보가 따냈고 결국 이는 대선 패배로 귀결됐다.
이처럼 외부 수혈을 통해 위기를 넘어서려는 전략은 사실 DJ의 특기였다. DJ는 호남이 고립됐을 때나 자신의 정치적 명분이 약해졌을 때 적극적으로 수혈 전략을 폈었다. 그 시초는 지난 1988년 2월 평화민주당의 대대적인 ‘새 피 수혈’이었다. 1987년 대선에서 철저히 호남에 고립돼 3위에 머무르는 치욕을 당한 DJ는 이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재야 출신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당의 면모를 일신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평화민주연구소(평민연) 출신들이 조직적으로 결합했고 문동환·박영숙 전 의원 등도 한 배를 타게 됐다. 그 결과 평민당은 총선에서 서울에서도 17석을 건지며 제1야당으로 떠올랐다.
1990년 1월 ‘3당 합당’의 충격을 돌파하기 위해 DJ가 선택한 전략도 외부 수혈이었다. 민주자유당에 동참하지 않았던 이기택·이부영 전 의원 등 통일민주당 잔류파와 손을 잡는 동시에 이우정·장영달 전 의원과 신계륜 의원 등 재야 출신을 다시 한 번 대대적으로 영입한 것이다. 이 역시 1992년 14대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포석이었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과정도 전형적인 외부 수혈 전략 하에 진행됐다. 김근태 전 의원을 중심으로 천정배 방용석 김희선 전 의원과 김영환 최규성 의원 등 재야 및 시민단체 출신들이 모여 있던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를 조직적으로 끌어들였고 김민석 전 의원과 허인회 씨 등 1980년 학생운동 지도부 출신 386세대, 정동영 신기남 추미애 의원 등 전문가 그룹도 대거 영입했다. 정계은퇴 약속을 번복한 것도 모자라 야권의 단일대오였던 민주당을 깨고 국민회의를 창당한 DJ가 그야말로 환골탈태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국민회의=DJ당=호남당’ 이미지를 탈피하려 했던 것이다.
현재 민주당의 모습에 개탄하는 많은 인사들은 DJ의 외부 수혈 전략을 비교적 성공한 전략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이를 현재의 민주당이 답습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DJ의 민주당과 지금의 민주당은 처한 환경과 사정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DJ의 약점은 호남 출신이고 ‘3김’이라는 닳고 닳은 정치인이라는, 다시 말해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며 “DJ가 이런 근본적인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들을 영입한 전략은 국민들에게 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당직자는 “반면 지금 민주당의 약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폐쇄성, 과도한 이념성, 당리당략적 정치행태, 후진적인 정당 문화와 선거 문화 등은 노력하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것들인데, 민주당이 그 노력을 안 하고 있으니 국민들에게 외면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직자의 진단처럼 최근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1월 28∼29일 <문화일보>와 코리아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전 후보의 정계복귀 방식을 질문한 결과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52.4%에 달한 반면 ‘민주당에 입당해야 한다’는 응답은 19.2%에 불과했다. 이는 호남 지역 응답자(‘신당’ 48.8%, ‘입당’ 29.0%)와 민주당 지지층(‘신당’ 50.7%, ‘입당’ 37.9%)도 예외가 아니었다. 또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도 민주당은 26.2%에 그쳤다. 49.4%를 얻은 새누리당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