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은 12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북한 3차 핵실험 강행과 관련해 긴급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열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기 전인 지난 7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등과 3자 회담을 갖고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강력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경고하는 ‘공동 발표문’을 내놓은 바 있다. 이쯤 되면 이번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민주당의 대북정책과 접근법에 큰 변화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법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대하는 민주당의 태도를 자세히 뜯어보면 주어진 자극에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 대해 전례 없이 강한 어조로 우려를 표하며 규탄했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민주당은 또 새누리당 등에서 ‘핵 무장론’ ‘전략 핵배치론’ 등이 제기되자 “핵 무장론, 군비 강화론으로는 한반도 평화를 이룰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민주당의 시각은 문희상 위원장의 지난 13일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토론회 축사에 그대로 드러난다. 문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5년 대북정책은 한마디로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한다”며 “정책을 전략적 개념으로 쓸 때에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게 기본 상식인데, 지난 5년간은 그야말로 일관된 대북 강경책을 썼지만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그러면서 “아무쪼록 박근혜 정부는 그 전의 개혁민주정부 10년이 이룩했던 병행정책, 그것을 계속 잇는 정권이 되길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요컨대 이번 핵실험 사태는 10년간 이어진 민주당 정부의 대북포용정책(햇볕정책)을 내팽개친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론에 귀책사유가 있고,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똑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5년’을 반면교사로 삼아 햇볕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에도 햇볕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3차 핵실험 이후 국제 사회와 전문가 집단에서 나오는 대응들에 비춰 보면 이 같은 민주당의 태도는 지나치게 한가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당장 진보진영 내에서도 이번 3차 핵실험은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북한 및 남북관계 전문가로 한때 민주당 후보로 선거에 출마한 적도 있는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북한의 핵실험에 앞서 한 인터넷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예상되는 현 국면은 이른바 북핵문제의 본질적 전환이 예고되는 상황”이라며 1·2차 핵실험과 3차 핵실험이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임을 경고한 바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과거 ‘평화적 핵동력 공업’으로 출발, 미국의 적대정책에 맞서는 ‘자위적 핵 억제력’으로 한 단계 심화됐던 북한의 핵 개발이 이번 3차 핵실험을 거치면서 ‘공세적 핵 능력’ 보유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3차 핵실험을 통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훨씬 더 심각한 상황으로 북핵문제가 전환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며 “해답은 명확한 현실인식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북한이 이번 3차 핵실험 후 “소형화, 경량화를 이뤘다”고 발표한 것이나 최근 ‘은하 3호’ 발사에 성공한 사례 등을 감안하면 김 교수의 이 같은 분석과 진단에는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김 교수의 말대로 바뀐 상황에 맞는 ‘명확한 현실인식’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미국 등 국제 사회 역시 이번 3차 핵실험을 계기로 북한 핵문제를 대하는 정책 목표를 ‘비핵화’(Nuclear Disarmament)에서 ‘비확산’(Non-Proliferation)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금융제재와 북한에 대한 군사기술 이전 전면금지 등은 북한의 지위가 핵보유국으로 바뀌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햇볕정책은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북전략이었는데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된다면 햇볕정책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민주당의 햇볕정책이 밑둥부터 흔들리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새누리당과 보수 진영에서 “좌파 정부 10년간의 ‘대북 퍼주기 정책’이 결국 북한의 핵 개발을 불러왔다” “지난 20년간의 비핵화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민주당만 무슨 신줏단지 모시듯 햇볕정책을 싸고 돌 수도 없게 됐다.
문제는 민주당이 당장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마땅한 게 없다는 데 있다. 햇볕정책이 북한의 ‘핵 보유 인정’이라는 대세로 밀려 설 자리가 상당히 좁아졌고, 그렇다고 그동안의 유연한 접근전략에서 벗어나 강경론으로 돌아서기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당 일각에서는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퍼주기 해서 핵을 만들었다 했는데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식량차관도 전혀 안 주고 퍼주기를 전혀 안 했는데 왜 핵실험을 두 번이나 했느냐”고 반박하는 기류도 있다.
하지만 핵문제로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가기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향후 민주당의 대북 스탠스 정리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대선 패배에 이어 북한 핵실험이라는 안보정국에서도 민주당의 설 자리는 별로 없어 보인다. 당에서 “북핵으로 멘붕에 멘붕이 겹쳤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민주당 민병두 전략홍보본부장은 최근 “민주당이 대선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권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해 총체적인 개혁과 환골탈태를 해야 한다”면서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도 ‘햇볕정책 2.0’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과연 민주당의 업그레이드된 햇볕정책이 통할지, 아니면 완전폐기 뒤 원점에서 재출발하는 게 맞을지 향후의 안보정국에서 그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
박공헌 언론인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