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다가가기 위한 국내 기업들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사진은 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8일 전경련을 방문해 기업 총수들과 만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 ||
이명박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을 앞두고 각 기업 담당자에게 떨어진 특명이다. 이 대통령의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 정책이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본격화하면서 이 대통령의 ‘기업 다가서기’ 못지않게 기업들의 ‘이 대통령 다가서기’가 물밑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 대통령에게 힘이 가장 많이 실리는 정권 초기에 얼굴을 터 놔야 특혜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운털’은 박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각종 경제 관련 행사에 자신들의 주군을 끼워 넣기(?) 위한 기업 홍보팀과 대외협력팀의 노력은 상상 이상이다. 이 대통령의 당선과 동시에 시작된 기업들의 ‘얼굴도장 찍기’ 신경전 뒷모습을 따라가봤다.
대선 승리를 거머쥔 지 불과 10일 만인 지난해 12월 28일,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전격 방문했다.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 당선인이 전경련을 직접 방문한 것은 사실상 처음. 이날 ‘회동’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해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본무 LG 회장 등 20여 명의 기업 총수들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과 재계 총수와의 만남은 너무나 화기애애한 속에서 끝났지만 숨겨진 해프닝도 없지 않았다. 보복폭행 사건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김승연 회장도 법무부의 양해를 구해 당일 봉사활동을 미루고 참석했다. 그런데 회담 하루 전날, 주호영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은 ‘이 당선인-재계 회동’의 참석자들을 전하면서 “김승연 회장도 초청했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면서 한화그룹이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지사. 결국 주 대변인이 “초청 대상은 전경련에서 정한 것으로 김 회장이 사회봉사 명령을 이행 중이라 현실적으로 올 수 없다고 했다”면서 “그러나 법무부에 확인해보니 사회봉사 명령 시간만 채우면 되는 것이라고 해서 오실 수 있으면 와달라고 요청했다”고 해명하면서 ‘해프닝’은 일단락됐다.
공항 귀빈실과 ‘기업 핫라인(Hot-line)’을 놓고도 기업 간 치열한 신경전이 있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수출 등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기업인 1000명을 선정,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도록 했다. 이 대통령이 지난 1월 중소기업인들과 만나면서 “귀빈실에 가보니 기업인은 없고 정치인만 있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됐다.
취지는 좋지만 과연 누가 1000명에 들어가는지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비록 고용과 수출 등 국가경제에 대한 기여도와 성실납세 및 공정거래 준수 등의 기준에 따라 이뤄졌다고 하지만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인과 그렇지 못한 기업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항 귀빈실 이용 여부가 기업의 인지도와 직결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각 기업들은 리스트에 올라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고 전해진다.
▲ (왼쪽부터) 김승연 회장, 정몽구 회장, 이명박 대통령. | ||
‘기업 핫라인’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20일 이 대통령과 기업인들과 직접 통화할 수 있는 기업 핫라인을 개통했다. 1차적으로 비밀리에 102명에게 전달됐다. 경제단체 및 협회 대표 33명을 비롯해 대기업 8명, 중소기업 39명, 금융사 17명, 연구소 5명 등의 대표들이 포함됐다. 비밀리에 당사자에게만 이 대통령의 핫라인 번호가 전달된 것도 ‘공항 귀빈실’과 마찬가지로 배제된 인사들이 섭섭해 할 수 있기 때문.
기업들의 이 대통령에 대한 ‘짝사랑’ 하이라이트는 오는 15일로 예정된 방미·방일 수행 경제인 선정 과정이다. 이번 순방에 미국의 경우 26명, 일본에서는 22명의 경제인이 수행하게 된다. 이번 순방단은 특히 4대 그룹 총수가 모두 빠져 실무 중심으로 수행단이 구성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미 수행단에는 경제 5단체장 외에 비즈니스 협의를 위해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김윤 삼양사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등 7명이 참여한다. 여기에 한미FTA 지원을 위해 류진 풍산 회장도 동행한다. 방일에는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빠지고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 강영원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이 합류한다.
비록 4대 그룹 총수가 모두 빠졌지만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중견 기업들의 신경전은 대단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순방에 참여하게 된 한 기업 관계자는 “대통령의 첫 순방이기 때문에 다른 행사와 달리 의미가 크다”면서 “이번 수행단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이명박 정부에서 해당 기업의 위상을 사실상 보여주는 것으로, 순방에 포함되지 못한 기업은 적잖이 허탈해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체 수행단 규모를 맞추기 위해서 수행 기업인 수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때마침 삼성비자금 사건에 대한 특검 수사로 삼성 이건희 회장의 동행이 불가능한 상황이고 LG그룹 역시 구본무 회장이 개인적 사정으로 동행을 할 수 없었다.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 역시 미국 현지에서 합류하기로 해 4대 그룹 총수가 자연스레 순방에 동행하지 않게 됐다.
이 대통령 역시 지난달 30일 청와대 춘추관을 방문해 “기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쪽에서 가는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많이 줄이라고 했다”면서 “재벌 총수들은 다들 바쁜데 현지에 있는 책임자들이 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번에 동행하는 기업은 이명박 정부에서 ‘모범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이 수행단 규모를 대폭 축소하라고 직접 지시하는 등 그 어렵디어려운 관문을 뚫고 수행단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김명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