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홍사덕 총무가 지난 14일 당사에 서 열린 ‘노 정권 불법 선거자금 및 야당 언론탄압 대책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종현 기자 | ||
차기 대선은 지금부터 4년 4개월여 후인 2007년 12월에 있을 예정. 아직 먼 이야기인 듯싶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에선 벌써부터 유력 주자들이 대권을 향해 뛰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우아한 백조도 겉모습과는 달리 물밑에선 발길질을 엄청나게 하면서 앞으로 전진한다”며 당내 대권 후보군 인사들의 최근 행보를 비유했다. 차기 청와대 입성을 노리는 당내 인사들의 물밑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벌써부터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히기엔 이른 시기이지만 청와대 입성을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권 레이스 총성을 울린 한나라당 내 잠룡들. 과연 누가 어떤 방식으로 머리띠를 졸라맨 채 뜀박질을 시작한 걸까.
한나라당 내 대권 후보군 중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인사는 바로 손학규 경기도지사다. 손 지사는 얼마 전 YTN의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대권에 도전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한나라당 대권 후보군 중 대권 도전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손 지사가 유일하다.
차기 대권주자로서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손 지사의 정치적 행보는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5·18 행사 때 한나라당 광역단체장으로는 유일하게 광주묘역을 참배했다.
행자부에서 “장마 기간 중 해외순방을 자제해달라”는 단체장들에 대한 요청이 있었음에도 손 지사는 최근 잇따른 해외 일정을 추진했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차기 주자로서의 이미지 만들기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당내 다수 인사들도 손 지사를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 중 한 명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당 밖에서 활동하는 광역단체장으로서의 한계’가 약점으로 거론된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역대 당 대선 후보군 가운데 후보로 오른 인사들을 보면 대부분 당내에서 입지를 다졌던 전례를 주목하라”고 지적한다.
정가 일각에선 손 지사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구애’의 손길을 늦추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손 지사는 지난 3월 이 전 총재가 일시 귀국했을 당시 오찬을 대접하며 위로했는가 하면 이 전 총재 밑에서 보좌역을 지낸 차명진씨를 공보관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지난달 이 전 총재가 빙모상으로 일시 귀국했을 때 장례식장은 물론 이 전 총재가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데까지 배웅을 나갔다. 경선 기간 중 도움을 청했던 최병렬 대표에게 끝내 ‘응답’을 하지 않았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행보다.
손 지사만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이명박 서울시장 역시 이 전 총재측에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이 전 총재 빙모상 장례식장에서도 이 시장이 이 전 총재측 인사들에게 꽤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고 밝힌다. 실제 이 시장은 이 전 총재 일부 핵심측근들과의 유대관계를 끈끈하게 유지하는 것으로도 알려진다.
▲ 손학규 경기지사(왼쪽), 이명박 서울시장 | ||
이 인터뷰에서 이 시장은 손 지사의 대선 출마 시사 소식에 대해 “너무 빠르다. 노 대통령 임기가 5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지자체 단체장의 대권 도전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이 시장은 “이미 추세라 생각하며 바람직하다”, “내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국가운영을 위해서는 경륜 있고 검증 받은 이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정가 인사들은 청계천 복원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이 시장의 대권 도전 가능성은 거의 100%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6·13지방선거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이 진행중이란 점은 이 시장의 ‘아킬레스건’이다. 유죄가 확정될 경우 시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물론 대권 행보 역시 물거품이 되고 말 수밖에 없다.
한편 당내 일각에선 차후 전개될 대권 구도에서 홍사덕 한나라당 원내총무가 이명박 시장과 대립각을 세우게 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지난해 서울시장 후보 당내 경선에서 두 사람이 맞선 전력 때문이다.
물론 홍 총무측은 “같은 당 소속의 서울시장인데 적극 후원해줘야지 맞각 세우기는 말도 안된다”라고 밝힌다. 홍 총무는 당 강령 개정으로 인해 위상이 높아진 직선 총무직에 오르며 당내 2인자로 부각되는 중이다.
이에 발맞춰 홍 총무의 대권 도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그러나 홍 총무 역시 당내 세력이 약하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이에 대해 홍 총무 주변과 정가 일각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급부상 과정을 거론하며 “이와 흡사하게 당내 계보가 아닌 여론의 지지를 통해 그가 힘을 얻게 될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홍 총무 향후 행보에 크게 영향을 미칠 조직으로 ‘홍사연’(홍사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연대)이 거론된다. 노 대통령의 오늘을 일궈낸 ‘노사모’에 비견될 정도로 홍 총무에 적극적 지지를 보내는 유권자들의 모임이다.
▲ 김혁규 경남지사(왼쪽), 강재섭 의원 | ||
그러나 홍 총무가 정작 대권 레이스에 뛰어들 경우 ‘최병렬 대표를 가장 경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시각도 있다. 당사자들은 부인하지만 정가에선 최 대표와 홍 총무 간 ‘불협화음’이 향후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모른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홍 총무가 너무 앞서가는 것을 두고 최 대표가 이강두 정책위의장에게 “홍 총무 좀 잡으세요”라고 말한 것 역시 홍 총무에 대한 최 대표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것.
최 대표는 얼마 전 ‘병렬아 놀아줘’란 인터넷 토론회를 개최해 20~30대로 구성된 패널들과 토론을 벌인 뒤 맥주집에서 뒤풀이를 가진 바 있다. ‘보수’ ‘구닥다리’등의 수식어를 지우고 젊은 민심 속을 파고드는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내 일각에선 “최 대표가 대권을 의식하는 것 아닌가”란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보수를 대변하는 당의 대표가 파격적으로 젊은 층 파고들기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당 차원이 아닌 (최병렬 대표) 개인적 차원의 정치 행보로 보는 시선이 많다”라고 밝혔다.
한편 대표 경선 이후 잠시 주춤했던 강재섭 의원도 점차 기지개를 펼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표 경선 당시 ‘강 의원이 노리는 것은 2등’이란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어려운 때 대표가 되기보단 2위로서 얼굴을 알린 뒤 차후 ‘더 큰 것’에 도전하는 게 낫다는 뜻으로 주변에서 나온 말이다. 경선 당시 강 의원은 타 후보들과의 연대 파트너로 가장 가능성 높게 거론됐지만 경선을 끝까지 치러내 나름대로 차기를 위한 이미지 만들기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경선 당시 강 의원을 지지했던 인사들도 강한 결속력을 지녔다는 평이다. 한나라당의 대구·경북(TK)권 한 의원은 “한나라당의 존립 근거는 바로 TK권 유권자들의 절대적 지지”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TK권을 대표하는 동시에 젊음까지 갖춘 후보가 나선다면 정권 탈환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며 ‘강재섭 대망론’을 간접 시사하기도 했다.
TK권에 강 의원이 있다면 부산·경남(PK)권에선 김혁규 경남도지사가 눈에 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도 잘 알려진 김 지사는 관선 도지사 역임 이후 내리 세번 지자체 선거에서 당선돼 도지사 임기만 네 번째를 맞고 있다. PK권에서의 두터운 지지를 바탕으로 이제 그가 도전할 수 있는 것은 ‘대권’만 남았다는 풍문도 나돈다.
노무현 대통령이 신당 성공을 위해 김 지사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 역시 주목할 대목. 노 대통령의 부산 공략 기조와 맞물려 김 지사 주변에선 신당이 성공적으로 뜰 경우 신당의 대권 후보까지 염두에 둔 김 지사의 행보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는 시각도 있다. 여야 어디에서든 출마 가능한 대권 후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