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림과 한화가 합작해 설립한 여천NCC의 여수 사업장 전경. | ||
그런데 최근 검찰이 ‘여천NCC 일부 임직원들의 비리 혐의를 회사 내부로부터 제보 받아 내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화와 대림의 갈등이 증폭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느 쪽의 비리인지, 어느 쪽에서 제보를 했는지를 두고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0일 검찰의 한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윤갑근 부장검사)가 여천NCC 일부 임직원들의 비리에 대한 첩보를 입수해 내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수년 전 발전기 증설 공사 과정에서 업체로부터 500억 원가량의 시설을 공급받으면서 비용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수십억 원의 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현재 검찰은 이들에 대한 계좌추적을 벌이는 한편 일부 경영진에 대한 소환조사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특히 횡령한 돈이 비자금으로 활용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기 때문에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적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검찰은 공식적으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긴 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소식에 재계의 시선은 여천으로 모아졌다. 검찰이 내사에 착수하게 된 계기가 회사 내부의 제보라고 알려졌기 때문. 벌써부터 직원들 사이에서는 “누가 제보했고 빼돌린 돈이 누구에게 흘러들어갔다”는 등의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고 있다고 한다. 재계 일각에서는 검찰의 내사 결과에 따라 한 지붕 아래 불안한 동거를 해오던 대림과 한화가 또다시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여천NCC는 일단 검찰 내사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여천NCC 관계자는 “사실 예전부터 이 사안에 대해 검찰이 내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는데 조금 뒤늦게 불거진 듯하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어 뭐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회사 내부에서 제보를 한 것이라는 언론의 보도를 보고 지금 우리 쪽에서도 제보자가 누구인지 의견이 분분한 상태”라고 전했다.
현재 여천NCC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번 사건이 대림과 한화 간 갈등의 연장선상으로 비치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우려한 전국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여천NCC지회(노조)는 “전체 조직원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검찰과 회사가 신속한 조치를 취해 달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박인천 노조 지회장도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회사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확대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대림과 한화는 이번 사건에 대해 한목소리로 “우리와는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이름이 자꾸 거론되고 있기 때문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과거의 분쟁사까지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자칫 대우조선해양 M&A에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어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도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인수경쟁을 벌이고 있던 두산에 대해 ‘인수 반대’를 공식적으로 밝혔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두산 총수 일가 ‘형제의 난’ 때문이었다. 도덕적인 흠결이 있는 기업에 인수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앞으로 M&A에 뛰어든 기업들에 대해 차례로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화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에 대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한화로서도 적잖이 난감할 수밖에 없다. 한화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다. 또한 과거에 대림과의 사이에서 불거졌던 일들과도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대림은 이번 사건에 대해 한화보다 더욱 강경해 보인다. 검찰 안팎에서 여천NCC에서 빼돌린 돈이 대림 측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 실제로 일부 언론에서는 검찰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검찰이 이 부분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림 관계자는 “검증이 안 된 얘기들이 나돌고 있어 우리도 당황스럽다. 아마 한화 쪽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은 이번에 검찰이 내사를 벌인 여천NCC 임직원들 중에 대림 출신 인사 A 씨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현재 검찰이 대림 출신 A 씨가 횡령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A 씨의 계좌 추적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것 역시 대림에서는 “처음 듣는 얘기”라며 부인했다.
이처럼 양사는 겉으로는 이번 사건과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사뭇 다른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그동안 벌여왔던 양사의 다툼을 봤을 때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도 한 차례 큰 소용돌이가 일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제보자가 어느 쪽 직원인지를 놓고 여천NCC 내부에서 양사 출신들 간 공방이 오가고 있다고 한다.
한화 출신이면서 현재 여천NCC에서 일하고 있는 한 인사는 “자체적으로 상황을 파악한 결과 대림 쪽에서 제보를 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쪽에서는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따라서 파장이 커지면 대림에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림 측 인사는 “우리가 제보했다면 왜 우리 쪽으로 돈이 흘러들어갔다는 말이 나왔겠느냐. 앞뒤가 안 맞는다”라고 응수했다.
‘제보자 논쟁’이 해결되더라도 상황은 좋아질 것 같지 않다. 검찰의 내사가 끝난 후 비리를 저지른 임직원들 명단이 공개되면 그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 특히 합작 설립 후 양측은 인사문제를 놓고 끊임없이 다퉈왔는데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인사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비리 임직원들이 어디 출신이냐에 따라 현재 5 대 5로 이뤄지고 있는 임원비율과 승진 등의 ‘인사 균형’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