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임명장 4명 중 1명꼴
최근 국가미래연구원(미래연)이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선언했다. 지난 2010년 12월 출범한 미래연은 박근혜 정부 초대 장관 17명 가운데 4명(윤병세 외교부 장관, 류길재 통일부 장관, 서승환 국토해양부 장관,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을 배출했다. 장관 4명 중 1명꼴이다. 때문에 미래연 출신이면 새누리당 현역 의원들보다 대통령과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요신문>이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 77명(박근혜 대통령 제외)과 현재 활동하고 있는 120여 명의 명단을 분석한 결과 미래연 파워는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일단 청와대 내에서부터 미래연 출신 입김이 거세질 전망이다. 민정수석비서관에는 곽상도 변호사가, 고용복지수석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고용복지분과 간사를 맡았던 최성재 서울대 교수가 발탁됐다. 청와대 비서급으로 내려가면 김재춘 교육비서관, 홍용표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 정영순 여성가족비서관이 포진해 있다.
출범 때부터 원장을 맡고 있는 김광두 서강대 교수 역시 경제부총리 등에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중용되지 못했다. 대신 김 원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부터 기업들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어 스케줄 잡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장관급과 청와대에 미래연 소속이 대거 기용되자 새누리당에서는 부러움과 동시에 견제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내정됐다 역외 탈세 의혹으로 3월 25일 자진사퇴한 한만수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대한 인선 책임에 대해 여권에서 더 강도 높게 제기됐다. 곽상도 민정수석과 한만수 교수 역시 국가미래연구원 법·행정 부문에서 활동하고 있다.
비박계인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3월 27일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좁은 인재풀 안에서 임명하다 보면 도덕적으로 하자가 있거나 능력이 부족해도 인사를 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면서 “여러 사람을 추천받아 그 중에서 고르는 형태가 돼야 한다”며 박 대통령의 ‘톱다운’ 방식의 인선을 비판했다. 미래연 출신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경제계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는 미래연 출신들이 만들어 낸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중 ICT(정보통신기술)·방송통신·소통 분야에서 활동하는 김대호 인하대 교수와 이병기 서울대 교수가 눈길을 끈다.
김대호 교수는 대선 이전부터 ICT 관련 독임제 부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학자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공영방송 이사 추천, 방송정보통신사업자 불공정행위 적발을 ICT 부서 안에서 관장하고 영상물등급위원회, 게임물등급위원회를 모두 통합하는 등 사실상 박근혜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와 다르지 않다.
그런가 하면 낙마한 김종훈 후보자의 뒤를 이은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역시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이다. 4월 1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야권에서는 최 후보자에 관한 △사외이사 겸직 △농지법 위반 △증여세 탈루 등 철저한 검증을 예고하고 있다.
기업 사외이사로 진출한 미래연 출신들도 있다. 지난 3월 22일 KB금융은 사외이사 선임을 의결했는데, 이 중 고승의 숙명여자대학교 교수가 미래연 출신이다. 최근 KB금융은 “관료 출신 이사들 때문에 KB금융지주의 ING생명 인수가 실패했다”는 보고서로 인해 내홍을 겪은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은 기존 사외이사 중임에 반대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산업·통상·부동산 분야에 있는 신건수 법무법인 케이씨엘 고문변호사 역시 최근 기아자동차 사외이사에 연임됐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지난 15일 예술의 전당 사장으로 임명된 고학찬 윤당아트홀 사장에 대한 눈초리가 매섭다. 고학찬 사장은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분야 간사이자 지난 대선 때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다. 그가 대표로 있는 윤당아트홀은 지금도 고 육영수 여사 헌정 공연인 <퍼스트레이디>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민주통합당 최민희 의원 측은 “고학찬 사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PD로 활동했는데 공연계에서는 별다른 업적이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라며 “예술계보다는 오히려 정치계에 더 헌신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탤런트 노주현 씨(노운영 한세대 교수)도 미래연에서 활동하고 있다.
새누리당 한 재선 의원은 “당 안에서는 이한구 원내대표가, 바깥에서는 최외출 영남대 교수가 권력을 쥐고 흔든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라며 “특정 단체 인물만을 계속 기용될 경우 여권 전체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염려했다.
하지만 유력 정치인이 자신이 만든 싱크탱크를 적극 활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정치인과 함께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인물이기에 보다 효율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이 당선되면 그 아래 싱크탱크 출신이 공직을 맡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우리 정치권과 언론에서만 유독 나눠먹기로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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