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중과 반전이 거듭되고 있다. 프로야구 개막 일주일을 살펴본 결과다. 애초 승승장구를 예상했던 팀이 부진하고, 부진을 전망했던 팀이 연승을 거두며 야구전문가들은 앞다퉈 하일성 KBS N SPORTS 해설위원의 “야구 몰라요”를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시즌 전 우승 후보가 예상됐던 팀들은 승패와 관계없이 탄탄한 전력을 과시하고 있다. 삼성, 두산, KIA가 주인공들이다. 세 팀은 비장의 키플레이어(key Player)를 중심으로 우승을 향한 힘찬 출발을 시작했다.
# 삼성 최형우
최형우.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삼성 김성래 수석코치는 그라운드에서 훈련 중인 한 선수를 가리키며 ‘시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 선수의 이름은 최형우였다.
지난해 최형우는 타율 2할7푼1리, 1홈런, 77타점을 기록했다. 리그 평균 이상의 성적이었다. 하지만, 전해 기록과 비교하면 퇴보도 이런 퇴보가 없었다.
2011년 최형우는 133경기 전경기에 4번 타자로 출전해 타율 3할4푼, 30홈런, 118타점을 기록했다. 타율 2위, 홈런과 타점 1위로 이대호를 능가했다. 야구전문가들은 “최형우가 몸쪽 공 공략에도 일가견이 있다”며 “2012시즌엔 40홈런 이상을 칠 것”이라고 잔뜩 기대했다.
하지만. 최형우는 시즌 초반 빈타에 허덕이다가 타선이 6번까지 내려갔고, 한때 2군으로 강등되기까지 했다. 시즌 첫 홈런이 5월 31일, 35경기 만에 터졌을 만큼 슬럼프는 오래갔다. 다행히 6월부터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며 꾸준히 개인 성적이 올랐지만, 시즌 전 기대치는 충족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올 시즌은 다르다는 게 삼성 코칭스태프의 중평이다. 김 수석은 “팀 내 타자 가운데 최형우가 가장 돋보인다”며 기꺼이 그를 키플레이어로 지목했다. 이유는 뭘까.
우선 시범경기 성적이다. 최형우는 10번의 시범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3리, 2홈런, 8타점을 기록했다. 팀 내 타율, 홈런, 타점 1위였다. 특히나 볼넷 6개를 얻어내며 뛰어난 선구안을 자랑했다. 두 번째는 책임감이다. 야구계는 올 시즌 삼성 마운드가 예년보다 낮아졌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믿을 건 타력밖에 없다.
박재홍 MBC SPROTS+ 해설위원도 “투수진이 약할 때 이를 보충할 수 있는 건 타선의 힘밖엔 없다”며 “삼성 타선이 지난해보다 강해져야 한국시리즈 3연패 달성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은 삼성 타선의 중심으로 최형우를 꼽았다.
“최형우처럼 중심타자들은 팀 상황에 따라 책임의식이 생긴다. 그 책임의식이 부담으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집중력 강화로 이어진다. 팀 사정을 잘 아는 최형우도 막중한 책임의식을 느끼면서 어느 때보다 집중력 있게 경기에 임할 것으로 본다.”
# 두산 홍성흔
홍성흔.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두산 운영팀 관계자는 웨이트트레이닝 중인 한 선참 선수를 가리키며 엄지를 들었다. 홍성흔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두산 코칭스태프도 홍성흔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한 코치는 “예상했던 것보다 홍성흔 효과가 훨씬 크다”며 “선수 한 명이 이처럼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지난해까지 두산은 “리더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김 감독도 “누군가 나서서 선수단을 이끌어가야 하는데 우리 팀엔 그런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며 “리그에서 우리 팀 벤치 분위기가 가장 조용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리더급 선수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팀의 최선참 김동주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감독과의 갈등설이 불거지며 지난 시즌 후반기엔 아예 2군에 머물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두산 벤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에 별 힘을 쓰지 못하고 패한 것도 벤치 분위기 싸움에서 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결국 두산은 클럽하우스에서 분위기를 이끌고 선수들의 파이팅을 하나로 모아줄 구심점으로 홍성흔을 지목했고, 우여곡절 끝에 그의 영입에 성공했다.
물론 영입 당시엔 반대 여론도 많았다. “38세의 지명타자와 4년 계약한 건 종신계약이나 다름 없다”며 계약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하지만, 시범경기가 끝나고서 반대 여론은 잠잠해졌다. 왜일까. 두산은 시범경기에서 6승1무4패를 기록하며 SK와 공동 2위를 기록했다. 팀 성적도 좋았지만, 두산 벤치는 시범경기 내내 생기가 넘쳤고, 벤치에서 나오는 “파이팅!”하는 응원 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과연 지난해 벤치가 너무 조용하다고 지적받은 팀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두산의 시범경기를 지켜본 골수팬 나영수 씨는 “선참임에도 벤치에서 누구보다 큰 소리로 응원하는 홍성흔을 보며 많은 걸 느꼈다”며 “이제 팀 분위기도 좋아진 만큼 올 시즌 두산이 반드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으면 좋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 KIA 김주찬
김주찬.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KIA 선동열 감독은 시범경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특히나 김주찬이 타석에 서면 굳어졌던 표정도 금세 활짝 펴졌다.
지난해 말 KIA는 60억 원에 가까운 거액을 쏟아 부으며 FA 김주찬을 영입했다. 당시 많은 구단은 “KIA 때문에 선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고 볼멘소리를 터트렸다. 한 구단 사장은 “김주찬은 부상이 많은 선수다. 조만간 KIA가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라는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김주찬 영입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한둘이 아니다.
이순철 KIA 수석코치는 대표적인 ‘김주찬 효과’로 기존 선수들의 분발을 들었다.
“김주찬 영입으로 그동안 2번 타순에 배치됐던 선수들이 하위타순에 배치되거나 자리를 잃고 대타로 돌아섰다. 수비경쟁은 더해 김주찬의 가세로 김상현, 나지완, 이용규, 이준호, 최훈락, 김원섭 등이 펼치던 주전 외야수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얼마나 주전 경쟁이 치열한지 선수들 눈빛을 보면 살벌한 기운을 느낄 정도다.”
김주찬 가세로 리그 최고의 기동력 야구를 펼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지난해 KIA는 팀 도루 132개를 기록했다. 리그 중위권으로 적지 않은 도루수였다. 다만 이용규가 44개, 김선빈 30개, 안치홍 20개 등 세 선수에게 도루가 집중되며 나머지 타자들이 ‘쉬어가는 주자’로 전락한 게 문제였다. 그러나 6년 연속 22도루 이상을 기록한 발 빠른 김주찬이 영입되면서 KIA는 폭주기관차로 돌변할 태세다.
선 감독은 팀 도루 200개 돌파를 바라는 눈치다. 역대 팀 도루 200개를 돌파한 팀은 1995년 롯데밖엔 없다. 그해 롯데는 팀 도루 220개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