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동 사금융 업자들의 업체 평가는 기본과 상식에 충실해 때론 전문가들의 평가보다 더 안전하다. 사진은 명동 거리. | ||
금융시장에서도 같은 사안을 평가하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서로 엇갈리곤 한다. 주식시장 같은 경우 워낙 변수가 많으니 어쩔 수가 없다고 해도 개별 기업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적잖다. 분명 비슷한 정보와 기준을 가지고 평가할 텐데도 말이다.
그러나 명동 사금융 시장의 업자들은 단순하다. 이 단순함은 ‘단순무식’이 아니라 기본과 근본에 바탕을 둔 평가이기 때문에 더 정확한 경우가 많다. 비자금 조성과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A 사가 최근의 대표적 사례다. 이 회사는 에너지 개발과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의 재건사업에 참여한다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실제로 지난해 말부터 여의도나 명동의 투자정보에도 주가 급상승이 유력시되는 종목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유력한 외국 인사들을 경영고문으로 영입하고 이라크 외에도 각지에서 에너지 개발 사업에 참여한다고 알려졌다. 쿠르드 재건사업에 대형 건설사나 정부투자기관이 참여한다고 하니 투자자들은 이 이상의 좋은 기업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명동 사금융업자 B 씨의 생각은 달랐다. 물론 주변에서도 B 씨에게 투자에 대한 정보도 주고 권유도 하였지만 그는 오히려 투자를 말리는 것이었다. B 씨의 생각은 이랬다. “우선 쿠르드 자치정부, 더 크게 쿠르드족에 대한 이해가 모두들 부족하다. 역사와 정치를 떠나서 경제적으로만 평가해보면 이라크 중앙정부와 주변국인 터키, 이란 이 세 나라 모두 쿠르드 세력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결국 주변 삼국의 이해관계가 ‘반 쿠르드족’으로 모아져 투자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연초에도 터키는 자국 내의 쿠르드 반군의 소탕을 목적으로 이라크 국경을 넘어왔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게다가 무려 1만이라는 군 병력이 남의 나라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의 이익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사정은 이란도, 이라크도 마찬가지다. 쿠르드가 세력이 커지면 독립국을 세우려 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기업도 쿠르드 자치정부와 유전개발에 합의했다가 오히려 이라크 중앙정부의 거부로 실패한 전례가 있었다.
B 씨는 이런 저런 이유로 냉정하게 경제적인 입장에서만 생각한다면 이 같은 기업들의 섣부른 에너지 개발이 오히려 이라크 중앙정부를 자극해서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경제는 실리가 우선이기 때문에 중앙정부와 사전에 협의를 끝내지 않은 경우에 쿠르드 자치정부와의 에너지 개발 등은 부정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몇 년 전 C 사의 경우도 ‘단순한 평가’ 사례다. 물론 이 회사는 부도 전에 금리 폭등과 기업어음 발행조건 악화 같은 기본적인 조짐들이 있었지만 D 씨는 이런 것과 다른 이유에서 C 사 거래 물건을 취급하지 않았다. 바로 소송이 문제였다. 소송이란 것이 거래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C 사의 경우는 좀 달랐다.
소송은 당사자 간에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법으로 판가름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결국 당사자 간에 충분한 협상이 결렬되면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C 사 사건은 일 대 일이 아니라 C 사와 다자간의 소송이었다. 그것도 여러 영세한 거래 업체가 피해모임을 결성해서 소송자금을 모금하여 하는 방식이었다. 내용도 계약 위반이었기 때문에 D 씨는 C 사에 대해서 문제가 커지고 신뢰가 하락될 것으로 평가했다. 결국 C 사는 부도 처리되고 거래 업체와 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보고 말았다.
E 사는 매우 탄탄하다고 인정받고 있는 회사다. 고유의 업종에서는 국내 수위를 다투며 주식시장에서 영업력이나 재무부문에서도 상위로 평가되는 회사다. 그런데 1년여 전부터 여의도 주변에서 이 회사의 주식이 큰 호재가 있으니 투자하라는 권유가 빈번했다. 그러나 F 씨는 부정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투자를 시작했고 투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기만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회사가 참여하는 컨소시엄이 대규모 부동산 개발 사업을 수주할 것이라는 정보를 기반으로 투자에 나섰다. 이런 의견들에 대해서 F 씨는 이렇게 단언했다.
“기본적으로 E 사는 좋은 회사다. 그러나 개발을 호재로 투자하겠다면 개발을 하겠다는 지역을 잘 봐야 한다. 개발계획대로만 되지 못할 사유가 있다. 해당 지자체와의 공익성과 수익성도 맞아야 하고 주민은 물론이고 주변의 편의성도 감안해야 한다. 이 사업은 성사돼도 아주 오래 걸릴 일이다. 그러니 현재로서 투자는 성급하다.”
부동산 개발 호재가 알려진 후에 E 사의 주가는 상승세를 타고 8만 원을 넘긴 적이 있지만 지금은 2만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중요한 건 돈 많은 자본가들이야 중간에 추가투자로 소위 ‘물타기’를 해서 손해를 최소화하고 기다릴 수 있겠지만 보통의 개인투자자들은 추가투자나 기다리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전문가들이 호재라고 평가해 주는 것들이 대개는 맞을 것이다. 그러나 100% 다 맞힐 수는 없다. 명동 시장의 평가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그러나 명동 시장의 평가는 ‘기본’에 충실하다. 비가 하늘에서 내리지 땅위에서 솟아오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상식과 근본이 바뀌지 않는 평가, 그래서 가끔은 꽉 막혔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실수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한치호 ㈜중앙인터빌 상무 one1019@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