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과 금호생명 빌딩. | ||
금호생명은 국내 생보사 시장 확대를 원하는 에르고(Ergo) 악사(AXA) 등 외국계 보험그룹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일부 업체와 물밑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소문도 낳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 관계자들의 시선은 국내 대형 금융지주사들의 움직임에 쏠려 있다. 비은행부문 강화를 통한 몸집 불리기에 적극 나서려는 금융지주사들에게 때마침 M&A 시장에 나온 금호생명은 더없이 좋은 먹잇감인 까닭에서다. 금호생명에 대한 국내 대형 금융지주사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금호생명 인수전이 국내 금융권 지도를 바꿀 것이란 관측까지 등장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돼 온 곳은 하나금융지주다. 금호생명은 비은행부문의 덩치를 키워 금융지주사로서의 면모를 갖춰가려는 하나금융지주에게 딱 맞는 매물로 여겨졌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해 대한투자증권을 인수해 하나대투증권을 출범시킨 데다 최근엔 이를 하나IB증권과 합병, 내년 1월 통합 증권사 간판을 올리려 하고 있다.
HSBC와 합작 설립한 하나HSBC생명과의 시너지 효과 기대도 커보였다. 김태오 부사장과 이강만 부행장 등 하나금융지주 내 연세대 출신 고위 인사들과 동문인 최병길 금호생명 사장의 친분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변수가 등장했다. 지난 9월 19일 외신을 통해 영국 HSBC의 외환은행 인수 포기 내용이 알려진 것이다. 미국 론스타펀드와 외환은행 인수협상을 벌였던 HSBC는 인수 가격 이견을 좁히지 못하다가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인해 외환은행 자산가치가 하락한 것으로 보고 발을 뺐다.
이로 인해 금호생명에 ‘올인’할 것 같던 하나금융지주의 M&A 전략의 폭이 넓어지게 됐다. 비은행부문 강화도 중요하지만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할 경우 국내 금융권 판도를 재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KB 신한 우리, 3대 금융지주사들의 자산규모가 300조 원을 넘나드는 데 반해 하나금융지주는 161조 원대에 불과하다. 103조 원대 자산을 지닌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국내 금융지주 4강구도가 가능해진다.
금호생명 인수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 하나금융지주 관계자는 “비은행부문 강화를 위해 생보사에 관심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하나금융지주는) 금호생명에 관심 갖는 수많은 곳 중 하나일 뿐”이라 밝힌다. 이 관계자는 “어차피 금호생명과 외환은행 둘 다 동시에 인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보탰다. 외환은행 인수전 진행상황에 따라 하나금융지주가 비은행부문 강화를 후순위로 제쳐둘 수도 있는 셈이다.
하나금융지주가 HSBC와 증권사를 합작 경영해온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금융계 일각에선 론스타와 인수협상을 벌였던 HSBC의 외환은행 인수 관련 노하우가 사업 파트너인 하나금융지주에 전달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눈치다. 이에 대해 하나금융지주 관계자는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하나금융지주와 더불어 금호생명 인수 후보로 거론돼 온 KB금융지주의 M&A 계획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 참여로 ‘낙하산’ 논란 속에 KB금융지주에 입성한 황영기 회장은 내정자 시절부터 “비은행부문 강화를 통한 금융지주사 키우기”를 강조했다. 일각에선 은행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업계 노하우와 조직 장악력을 의식, 비은행부문에서 성과를 내려는 행보로 풀이되기도 했다. 때마침 매물로 나온 금호생명이 황 회장의 구미를 당겼다.
그러나 외환은행의 매물 재등장은 보유 중인 ING생명 지분을 매각하고서라도 금호생명을 인수하겠다던 KB금융지주의 M&A 전략을 뒤흔들어놓았다. 황 회장 취임 이후 지주사를 출범시킨 KB금융지주는 최근 들어 아예 대놓고 “외환은행 인수에 전력을 다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황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빅3 금융지주(신한·우리·하나) 간 대등합병 추진으로 총 자산 500조 원대 대형은행 구상”을 선언해 업계를 긴장시켰다.
외환은행은 금융지주사 형태는 아니지만 국민은행에 흡수될 경우 자산 400조 원을 넘기는 메가뱅크 도약이 가능해진다. KB금융지주 관계자는 “외환은행 인수를 검토했던 우리가 매물로 나온 외환은행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며 의욕을 보인다. KB금융지주는 지난 2006년 론스타와 외환은행 인수계약을 체결했다가 비판 여론에 밀려 계약을 파기했던 바 있다.
외환은행의 M&A 시장 재등장 여파로 인해 금호생명은 인수 후보로 거론돼 온 국내 금융지주들이 등을 돌리게 될 경우 몸값을 높이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를 사고 있다. 금호생명 매각 선언 이후 장외거래가가 금세 2만 원을 뛰어넘을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미국발 글로벌 금융쇼크 때문인지 10월 1일 현재 금호생명 주식은 1만 7000~1만 8500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가 보유한 금호생명 지분의 평가총액 8000억 원에 프리미엄을 더해 1조 2000억 원 정도의 매각가격이 예상돼 왔으나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인수 후보군 이탈 조짐과 함께 가격 변동 가능성도 점쳐진다.
KB금융지주는 하나금융지주와는 달리 외환은행 인수 후에도 M&A 작업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금호생명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2006년 당시 KB금융지주와 외환은행 인수 경쟁에서 밀렸던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이번에도 외환은행 인수 작업이 여의치 않게 되면 금호생명에 총력을 기울일 가능성도 열려 있다. 그러나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금호생명에 대한 시선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은 하루빨리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속을 꽤나 태울 전망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