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국가대표팀과 에콰도르의 평가전에서 구자철이 기성용을 대신해 투입되는 모습. 일요신문DB
거친 생존게임이 연일 이어지는 스포츠 무대에서 선수 교체는 일종의(혹은 마지막) 승부수와도 다름없다. 축구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타이밍’ 중 하나가 바로 선수 교체다. 그때 그 때 선수를 변화시키면서 ‘맞춤형’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타 스포츠 종목과 차이가 있다면 경기당 한 팀 교체 가능횟수가 3차례뿐이라는 점이다.
당연히 생각처럼 쉽지 않다. 크게 앞섰을 때 체력 안배 차원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면 선수를 교체한다는 사실만으로 처음 내세운 플랜A가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는 탓이다. 대개 축구에서 선수를 교체하는 건 새로운 변화가 필요할 때, 흐름을 바꿔줘야 할 때 주로 이뤄진다. 플랜B, 플랜C로 이어질 수 있고(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는 게) 선수 교체다.
단적인 예로 지난 3월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국가대표팀 최강희호와 카타르 간의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 홈경기를 꼽을 수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종료 직전 추가시간에 터진 손흥민(함부르크SV)의 결승골에 힘입어 한국이 2-1 승리를 했으니 최 감독의 용병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답답한 경기력이 도마에 오르면서 손흥민의 교체 시점까지 버무려져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대개는 “좀 더 빨리 투입했어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정답은 없다.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의 B구단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이렇게 말한다. “밖에서는 쉽게 말할 수 있다. ‘왜 그 선수를 그 타이밍에 기용하지 않았느냐’고. 대부분 그 조언(?)이 틀린 건 아니다. 나중에 ‘아, 그 때 바꿨어야 해’라며 후회하곤 한다. 그렇다고 지도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항상 교체 시점을 고민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마음을 먹기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과감하게 결정하고 주무(선수단 매니저)를 통해 대기 심판에 교체 선수 쪽지를 전달할 때까지 아주 짧은 순간에도 ‘(교체를) 취소하면 어떨까’란 생각을 한다.”
깊은 고민의 흔적이 묻어나는 발언이다.
국내 프로축구팀이 참가 가능한 대회는 3개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규리그, FA컵이다. 한정된 가용자원, 속출하는 부상 이탈, 혹독한 강등에 대한 부담 등으로 현실적으로 모든 대회를 석권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결국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진다. 마지막까지 이리 재고, 저리 재다보면 죽도 밥도 안 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강할수록 챔피언스리그와 정규리그에 욕심을 내고, 다소 힘에 부치는 팀들은 단판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FA컵을 노린다. 그게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작년 이런 면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를 쓴 팀은 울산 현대였다. 사실 울산은 2012년 9월 중순까지만 해도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우승권에선 다소 벗어나 있었지만 정규리그에서도 호성적을 내고 있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아주 승승장구했다. 그렇다고 두 마리 토끼를 모는 건 어려웠다. 선수들의 체력 소진이 대단했다. 타이밍을 잡아야 했는데 고민을 해결해준 시기가 그 해 9월 26일 FC서울과 홈 경기였다. 역시 정규리그 타이틀을 꿈꾼 서울에 1-2로 패하면서 사실상 리그 우승은 어려워졌다. 과감하게 노선을 수정, 챔피언스리그에 올인하는 전략으로 성공을 거뒀다. 대신 울산은 아시아 클럽 타이틀을 올해 챔피언스리그 출전권과 바꿔야 했다. 이를 회상하며 울산 김호곤 감독은 “어설프게 다 욕심냈다가는 죄다 실패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제야 털어놓지만 작년 FA컵에서 4강이 아닌, 우승했다면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선수들의 흐트러진 마음가짐과 준비 자세로 인해 힘들 뻔했다”고 설명했다.
그 후 반 년가량이 흐른 올해 4월. 서울과 울산의 행보는 다시 묘하게 오버랩되고 있다. 역시 ‘타이밍’이 핵심이다. 정규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초반부가 한창인 가운데 울산은 FA컵과 함께 유이하게 출전 중인 정규리그에서 그런대로 무난한 스타트를 뗀 반면, 서울은 K리그 클래식과 챔피언스리그를 놓고 힘겨운 행보를 거듭한다.
각각 아시아와 국내 리그를 제패했던 두 팀들이 처한 극명한 상황의 중심에 ‘변화 시점’이 있었다. 울산은 군 입대 및 해외 진출로 스쿼드를 이탈한 주력 멤버들의 공백을 이적생들로 훌륭히 메웠다. 그러나 서울은 작년 우승 멤버들을 붙잡는 데 주력한 바람에 아무래도 변화에 인색했다.
4월1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올 시즌 첫 슈퍼매치 때는 환상적인 타이밍에 라돈치치를 교체 투입한 수원 서정원 감독의 용병술이 빛을 발했다. 서울은 상대 공격수 정대세의 퇴장으로 수적 우위를 점했음에도 불구, 패배와 다름없는 무승부를 거뒀다. 심지어 서울은 ‘특급 수비수’ 차두리를 예상보다 빠른 수원 원정에 투입하고도 지독한 수원전 무승 징크스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현장을 찾은 한 축구인은 “서울은 차두리 투입으로 효과도 보지 못했고, 11명이 싸워 10명을 이기지 못했다. 여기에 무승 행진도 이어갔으니 타이밍이란 측면에서 완전히 졌다”고 꼬집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