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한화 이글스
한화 선수들이 지난 18일 NC와의 경기에서 시즌 두 번째 승리를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4월 17일 대전구장 기자실은 자리가 없을 만큼 붐볐다. 전날 한화가 13연패의 사슬을 끊은 까닭인지 많은 야구기자가 대전구장을 찾았다. 대부분의 기자는 한화의 시즌 첫승이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지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2회 초까지 1 대 3으로 지던 한화가 6회 역전하자 기자들은 “첫승 이후 한화의 응집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며 “결정적인 실책도 나오지 않는 등 한화의 경기력이 수직상승했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선발투수 다나 이브랜드가 2이닝을 던진 채 강판되고 연이어 구원투수들이 등장하자 기자실의 분위기가 금세 냉랭해졌다. 문제는 구원투수들이 죄다 선발투수라는 데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브랜드의 뒤를 이어 등판한 투수는 다음 날 선발이 예정된 안승민이었다. 한화 벤치는 무슨 영문인지 안승민을 구원투수로 투입해 4이닝을 맡겼고, 이어 또 다른 선발투수 유창식을 마운드에 올렸다.
놀라운 건 유창식이 1명의 좌타자만 상대하고 물러났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선발투수를 원포인트릴리프로 활용한 셈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유창식 다음으로 나온 투수는 12, 14일 LG전에서 선발등판한 김혁민이었다. 비록 14일 경기에서 김혁민이 3이닝만 던졌다곤 하나 그는 엄연히 4일을 쉬어야 하는 선발투수였다. 거기다 김혁민은 12일 선발등판 뒤 하루 쉬고 14일 다시 선발등판하며 혹사 논란에 휩싸인 바 있었다. 그런 김혁민을 한화 코칭스태프는 2⅓이닝 동안 던지도록 지시했다.
놀라움의 대미는 송창식이 장식했다. 송창식은 팀이 4 대 3으로 리드하던 9회 초 2사 1루에 등판했다. 동점 주자가 출루한 상황이라, 송창식의 마무리 투입은 놀랄 게 없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전날 송창식은 3⅓이닝을 던지며 이미 40개의 공을 뿌린 터였다.
기자실에서 “주말리그가 따로 없네”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 것도 한화 벤치의 투수진 운용을 영락없는 고교야구 수준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화가 4 대 3으로 승리하며 전날에 이어 2경기 연속 승리를 거뒀지만, 뒷맛은 개운치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엔 한화 코칭스태프를 비난하는 게시물이 넘쳤다. 대부분 게시물은 ‘김응룡 감독과 송진우 투수코치가 눈앞의 승리를 위해 1군 투수들을 대거 혹사시킨다’는 내용이었다.
김태균이 지난 18일 NC와 경기에서 2회말 솔로 홈런을 치고 이종범 코치와 주먹을 부딪치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한 야구해설가는 “김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팀 운영과 작전은 그 외에도 무척 많다”고 귀띔했다.
“한화 수비가 약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올 시즌 더 수비가 허술해진 건 이해하기 어려운 선수 기용 때문이다. 외야 수비가 약한 선수를 외야진의 핵인 중견수에 배치하고, 이제 갓 프로 무대를 밟은 고졸 포수를 주전으로 기용하는 바람에 결정적 실책과 많은 포일(捕逸·잡지 못하고 놓쳤다는 말로 패스트볼을 뜻함)이 발생했다. 여기다 도루 사인도 번번이 상대팀에게 들켜 무산되기 일쑤였다. 올 시즌 한화의 도루가 7개로 9개 구단 가운데 가장 적으면서, 도루자는 6개나 되는 걸 봐도 그렇다. ‘김 감독이 현대야구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게 아닌가’라는 우려가 들 정도다.”
한화는 주루에서도 실수를 연발하고 있다. 주자 1루에서 우전안타가 나왔을 때 충분히 3루까지 뛸 수 있음에도 2루에서 멈추기 일쑤다. 주자 2루에서 단타로 홈에 들어오는 확률도 다른 팀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진다. 이유는 뭘까.
또 다른 야구해설가는 “김 감독을 비롯한 한화 코치진이 상대 야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LG전이었다. 주자 2루에 한화 타자가 중전안타를 쳤다. 이제 득점이 나겠다 싶었는데, 이게 웬걸.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오려는 2루 주자를 한화 주루코치가 적극 말렸다. LG 중견수 박용택이 어깨가 약한 걸 고려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제지였다. 덕분에 LG는 실점을 막을 수 있었고, 한화는 후속타 불발로 득점에 실패했다. 경기가 끝나고 한화 쪽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루코치의 상대 야수 파악이 아직 덜 된 것 같다’고 하더라.”
일부 야구인은 김 감독이 어필 상황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나타낸다. 실제로 4월 18일까지 한화가 15경기를 치르는 동안 김 감독은 한 번도 심판에게 어필을 시도하지 않았다. 대신 김성한 수석코치가 나갔다. 감독의 격렬한 항의가 경기 흐름을 단번에 바꿀 수 있다는 걸 상기하면 ‘감독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 “약한 전력 고려한 고육책”
지난 18일 NC와의 경기에서 세이브를 올린 송창식.
“만약 한화가 과거 김 감독이 지휘하던 해태, 삼성처럼 강력한 투수진을 갖췄다면 지금처럼 선발투수들이 대거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장면은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다 이종범처럼 주루능력이 뛰어난 타자들이 즐비했다면 더 적극적인 주루를 선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화 전력은 신생구단 NC와 비교될 만큼 리그 최하위권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 감독이 팀 승리를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언뜻 무리해 보이는 투수진 운용도 고육지책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도 “13연패 뒤라, 김 감독이 잠시 무리수를 두는 것일 뿐 한화가 정상궤도에 오르면 김 감독 특유의 야구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막전부터 13연패를 하면 선수들이 패배의식에 빠지게 된다. ‘우린 뭘 해도 안 된다’는 패배의식만큼 무서운 적도 없다. 경험 많은 김 감독은 1승이라도 더 거두는 게 팀의 패배의식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실제로 시즌 첫 승 이후 한화 선수들의 몸놀림이 경쾌해지고, 경기력이 상승한 걸 보면 반드시 김 감독의 변칙 투수진 운용이 잘못됐다고만 비난할 순 없다.”
분명한 건 김 감독이 한화 사령탑을 맡으며 과거처럼 명장 소릴 듣진 못한다는 것이다. 야구인들은 입을 모아 김 감독이 다시 명장으로 거듭나려면 이름값을 버리고, 현대야구에 빠르게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과연 김 감독이 명장과 졸장 사이에서 어떤 길을 택할지 지켜볼 일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