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는 <직장의 신> 미스김 역할을 완벽 소화하며 또 한번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제공=KBS
김혜수는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 없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40대 여배우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하지만 20~30대 배우들에 비해 연기 변신을 할 기회를 자주 만나지 못하는 건 비슷한 연배의 배우들이라면 누구나 처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환경 탓에 김혜수 역시 왕성한 작품 활동에도 불구하고 최근 4~5년 동안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인상적인 작품은 만나지 못했다. 여전히 대중의 기억 속에 김혜수의 연기가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작품은 2006년 개봉한 영화 <타짜>다. 물론 지난해 1200만 관객을 동원해 성공을 거둔 영화 <도둑들>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지만 당시 김윤석 이정재 전지현 김수현 등 내로라하는 스타 배우들과 나란히 호흡을 맞춘 탓에 자연히 대중의 관심은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은 바뀌었다. ‘그랬던’ 김혜수가 <직장의 신>의 주인공 미스김 역으로 다시 전성기를 활짝 열고 있다. 드라마 관계자들은 “김혜수가 아니었다면 미스김 역할을 할 배우를 찾기는 어렵다”고 평할 정도다. 김혜수는 매회 몸을 사리지 않는 활약을 보이며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 모으고 있다.
<직장의 신>은 비정규직이 만연한 사회를 우화적으로 풍자해 호응을 얻는 드라마다. 청년실업과 ‘88만원 세대’로 상징되는 취업난, 일찍 찾아오는 정년퇴직 등 사회 이슈를 주요 소재로 택해 시청자의 공감을 얻고 있다. 김혜수는 매사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정규직 전환을 한사코 거부하는 비정규직 미스김을 맡아 이야기를 이끈다.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유난히 많은 TV 드라마 환경에서 김혜수는 직장인, 취업 준비생이라면 쉽게 공감할 만한 현실적인 연기로 시청자의 지지를 얻고 있다.
심지어 김혜수는 시청자의 몰입을 돕기 위해 드라마 1회부터 12회가 방송한 현재까지 두 벌의 정장 의상만을 번갈아 입고 있다. 여배우들이 흔히 드라마에 나올 때, 신분이나 경제적인 설정은 아랑곳없이 화려한 고가의 의상으로 치장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선택이다. ‘단벌’ 아이디어를 먼저 낸 건 김혜수였다.
<직장의 신>의 제작 관계자는 “현실성을 살리기 위해 정장 두 벌 정도를 준비해 번갈이 입고 있다”며 “셔츠만 가끔 바꿔 입으면서 오직 일에만 몰두하는 드라마 속 미스김의 개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예쁜 옷을 입고 싶은 건 드라마 출연을 결정한 여배우라면 누구나 갖은 욕심일 텐데 김혜수는 이런 마음도 내려놓았다”고 설명했다.
김혜수의 활약은 즉각적인 시청률로 나타나고 있다. <직장의 신> 시청률은 평균 14~15%를 유지하고 있다. 앞서 같은 시간대에 방송했던 진구 주연의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이 4~5%의 시청률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할 때 무려 10%포인트 이상의 시청률을 단번에 끌어올린 셈이다. 더욱이 현재 지상파 3사 월화드라마는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한 상황. MBC는 10~20대에게 인기가 높은 수지와 이승기를, SBS는 톱스타 김태희와 유아인을 전면에 내세웠다. 청춘스타들과의 경쟁에서도 김혜수는 관록의 연기를 펼치며 시청자와 소통하고 있다.
40대 여배우의 건재함을 드러낸 김혜수는 드라마를 끝내고 곧바로 충무로 기대작으로 꼽히는 영화 <관상>으로 관객을 찾을 예정이다. 데뷔 후 처음으로 도전하는 정통 사극 영화로 팬들의 관심이 높다. 영화에서 송강호와 호흡을 맞춘 김혜수는 조선시대 초 정치적 소용돌이를 처세술로 이겨내는 기생 연홍을 연기한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
‘김혜수식 정공법’ 통했다
<직장의 신> 제작발표회에 앞서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해명을 했다. 임준선 기자
김혜수는 성균관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받은 석사학위 논문 ‘연기자의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관한 연구’가 관련 서적을 표절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데뷔한 지 25년이 넘도록 김혜수는 도덕성에 금이 가는 스캔들에는 한 번도 휩싸이지 않을 만큼 자기 관리에는 ‘완벽주의’를 지켜왔다. 이 때문에 이번 표절 의혹은 팬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던졌다.
김혜수는 변명하지 않았다. 대신 정공법을 택했다. 깔끔했다. 논란이 터지자마자 그는 소속사를 통해 보도자료를 내고 잘못을 시인했다. “이유가 어떻게 됐든 잘못이다”는 입장이었다. 변명이 없는 즉각적인 사과에 오히려 팬들이 놀랐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며칠 뒤 김혜수는 미리 예정된 <직장의 신> 제작발표회에 나서서는 고개를 숙였다. 드라마를 알리는 자리였지만 미리 양해를 구하고 단상에 오른 그는 “지도 교수님께 제 석사 학위는 반납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며 “우려를 끼친 만큼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도리지만 방영이 고작 일주일도 안 남은 상황에서 드라마 관계자 분들께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무겁고 죄송한 마음이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걱정하고 실망하신 분들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신뢰를 잃을 뻔한 위기에서 웬만한 스타들은 도저히 택할 수 없는 용기 있는 대처법으로 나선 그는 ‘비호감’으로 전락할 수 있던 위기를 기회로 돌려놓았다.
김혜수는 몇 년 전 동료 배우 유해진과 스캔들에 휩싸였을 때에도 비슷했다. 다른 여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스캔들에는 민감할 수밖에 없던 그는 오랜 숙고 끝에 유해진과 연인 사이임을 공개해 뜨거운 관심과 함께 지지를 받았다. 둘은 3년 가까운 연애를 끝내고 2011년 동료 배우로 돌아갔다. 이별한 스타 커플들이 서로를 외면하거나 애써 마주칠 기회를 피하지만 김혜수는 달랐다. 이별 뒤 한 영화상 시상식에서 만난 둘은 수상을 축하하는 포옹을 나누며 서로를 응원하는 ‘쿨’한 모습을 보였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