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최종 2위에도 ‘두부 대전’ 등으로 강렬한 인상 남겨…시청자에게 ‘감동’ 요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흑백요리사’가 막을 내렸다. 지난 9월 17일 시작해 10월 8일 마지막 경연의 결과를 공개하기까지 12부작으로 이뤄진 경연은 매회 팽팽한 긴장과 숨 막히는 요리의 향연으로 꽉 찼다. 오랜만에 대중을 사로잡은 히트작이 탄생했고, 한동안 주춤했던 요리 프로그램의 열기도 다시 일어나고 있다. 유명 셰프 20명을 ‘백수저’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탁월한 실력을 지닌 재야의 고수 80명의 셰프를 ‘흑수저’로 분류해 벌인 대결에서 최종 우승은 흑수저에 속한 권성준 셰프가 차지했다. 독창적인 이탈리안 요리를 선보이면서 99명의 쟁쟁한 경쟁자를 눌렀다.
하지만 ‘흑백요리사’의 최종 결과가 나온 직후부터 1위보다 더 관심을 끄는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2등 에드워드 리 셰프다.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그는 이미 백악관에서 국빈 만찬을 주도하는 등 스타 셰프로 인정받는 유명인이지만 고국에서 이뤄지는 요리 경연에 참여하려는 뜻에서 도전장을 냈다. 심사위원을 맡은 외식사업가 백종원이 “경연이 아니라 심사위원을 맡아도 될 분”이라고 말할 만큼 탁월한 실력을 지녔지만 굳이 100명이 겨루는 경쟁에 동참한 데는 이유가 있다.
#1등 화제 누른 2등 에드워드 리는 누구?
에드워드 리는 2010년 방송한 미국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에서 우승을 차지한 실력자다. 2017년에는 요리 프로그램 ‘컬리너리 지니어스’에서 영국의 스타 셰프 고든 램지와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당시 백악관 국빈 만찬을 주도했다.
이런 화려한 이력은 ‘흑백요리사’에 참여한 100명의 셰프를 통틀어 가장 주목받았다. 하지만 에드워드 리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출중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어릴 때 할머니가 만들어준 한식의 기억을 잊지 못해 고국의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서툰 한국어로 말하면서 대중의 감정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무려 6시간 동안 두부 요리에만 집중할 때 보인 치열하고 집요한 분투는 자신이 만드는 음식에 얼마나 진심으로 임하는지 드러낸다. 요리 실력과 맛은 기본. 음식에 갖는 철학, 미국에서 자란 자신의 경험을 풀어내는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호감을 얻었다.
한마디로 ‘아쉬울 게 없는’ 에드워드 리가 굳이 ‘흑백요리사’에 출전한 이유는 “한국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이라는 사실 자체가 결정적이었다. 굳이 전 세계에 공개되는 프로그램에 나가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나만의 한국 음식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출연을 결정하면서 다짐한 부분도 있다. 반드시 ‘한국의 재료만 사용해 새로운 요리를 보여주겠다’는 약속이다. 그동안 셰프로 활동하면서 선보인 각종 요리는 ‘흑백요리사’에서 시도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런 각오가 가장 확실히 드러난 대결은 6시간 동안 6개의 두부 요리를 내놓은 ‘두부대전’이다. 두부를 재료 삼아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어야 하는 치열한 경연에서 그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독창적인 두부 요리들을 선보여 시선을 사로잡았다. 12부작을 통틀어 에드워드 리가 주도한 두부대전은 ‘흑백요리사’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우승을 차지한 권성준 셰프가 경연 방식에 따라 두부대전에 참여하지 않은 상황도, 1등보다 2등이 더 주목받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있다.
#인간적인 면모로 호감도 상승
에드워드 리는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정착해 뉴욕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수석으로 졸업할 만큼 학업 성적도 뛰어났다. 하지만 전공을 뒤로하고 요리에 뛰어든 데는 ‘할머니의 영향’이 크다고 했다. ‘흑백요리사’를 마치고 10월 16일 출연한 tvN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서 그는 “대학을 가고 싶지 않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요리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모의 뜻에 따라 뉴욕대에 진학했다.
졸업한 뒤 에드워드 리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유명 식당의 주방. 설거지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지금의 위치까지 왔다. 그토록 요리가 하고 싶던 데는 “어릴 때 할머니가 만들어준 한국 음식이 좋았고, 그 음식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먹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요리로 “할머니가 만들어준 매운 돼지고기 장조림”을 꼽았다.
에드워드 리는 미국 이민 가정에서 자란 정체성을 자신의 음식에 녹여 넣는다. 할머니와의 추억이 서린 한식 재료를 활용한 창의적인 요리들을 ‘흑백요리사’에서 선보여 시청자를 사로잡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심사위원 백종원·안성재 셰프의 입까지 매료시켰다. 1등 권성준 셰프 역시 최종 우승을 확정하고 가장 먼저 에드워드 리와 마지막 경연을 할 수 있었던 과정에 감격과 감사를 표했다. 요리 실력으로 계급을 나누고 맛으로 순위를 가리는 치열한 서바이벌의 현장에서 등수보다 ‘감동’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순간이다.
에드워드 리의 활동 무대는 미국 워싱턴이다. 그는 워싱턴에서 곧 ‘사이’라는 이름의 비영리 레스토랑의 문을 열 계획이다. 플라스틱 등 쓰레기를 줄이고 청정에너지를 사용하는 식당을 추구한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넘어 환경의 문제를 고민하고, 지속 가능한 가치를 찾는 계획도 실천한다. 실제로 비영리단체 ‘리 이니시어티브’(Lee Initiative)를 만들어 운영 중인 그는 인종과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든 주방에서 환영받는다고 느껴야 한다”는 목표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젊은 여성 셰프를 위한 멘토링부터 흑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보조금도 지원한다. 코로나19로 식당들이 문을 닫았을 때 일자리를 잃은 종업원들에게 무료 음식을 제공하는 주방을 열어 총 250만 끼를 제공하기도 했다.
단순히 ‘흑백요리사’ 경연에서 2등을 차지한 스타 요리사가 아닌 한국 식재료에 진심인 모습, 유명도를 이용해 개인 식당 운영에 집중하기보다 더불어 살아가는 기회를 찾으려는 에드워드 리를 향한 관심이 더 많은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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