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4일 새벽 5시경 전남 고흥군 동일면 나로2대교에서 사진을 찍다 발을 헛디뎌 바다로 추락해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최 아무개 씨(여·34)였다. 고흥의 나로2대교에서 추락했다는 최 씨가 여수 백야대교 밑에서 온몸이 묶인 변사체로 떠오른 것이다. 최 씨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범인은 최 씨의 추락 실종 사건을 최초 신고한 김 아무개 씨(여·42) 등 3명이었다. 사고사로 기록될 뻔한 억울한 사건이 한 시체의 ‘부상’으로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들에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전남 광양시에 사는 최 아무개 씨(여·34)가 신 아무개 씨(34)를 만난 것은 지난해 말 서 아무개 씨(여·43)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신 씨는 순천에서 사채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전 남편과 이혼하고 가족들과 연락도 끊긴 채 연고 없이 외로웠던 최 씨는 신 씨와의 몇 번의 만남에 쉽게 마음을 열었고, 그들은 내연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나 최 씨의 마음과는 달리 신 씨는 다른 속셈을 품고 있었다. 그는 주변에 가족도 없이 혼자 남은 최 씨를 범행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처음에 신 씨는 최 씨와 함께 범행을 계획했다. 최 씨 이름으로 생명보험에 가입한 후 그가 실종됐다는 신고를 허위로 해 보험금을 받아내 나누자며, 최 씨에게 생명보험을 가입할 것을 종용했다. 빚도 있고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던 최 씨도 범행 계획에 동의해 지난해 11월부터 한 달 동안에만 총 4억 3000만 원에 사망보험금이 지급되는 4개의 생명보험을 가입했다. 2월에는 보험 수익자를 신 씨 명의로 변경했다.
이들의 사기 범죄 계획에 대해 두 사람을 소개시켜줬던 서 씨도 알게 됐다. 신 씨에게 사채를 빌려 쓰며 평소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해왔던 서 씨는 자신도 범행에 끼워달라고 했다. 서 씨가 합류하며 계획은 틀어지기 시작했다. 서 씨와 신 씨는 최 씨를 범행에서 제외시키고 그를 진짜 죽여 실족사로 위장하자고 범행을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서 씨의 지인인 김 아무개 씨(여·42)를 공범으로 끌어들였다. 범행이 성공하면 보험금은 신 씨가 절반, 서 씨와 김 씨가 나머지 금액의 절반씩을 나눠 갖기로 했다.
피의자 신 씨의 현장검증 모습.
이들은 미리 준비한 햇빛차단막으로 최 씨의 시신을 감쌌다. 철망을 이용해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는 시체를 트렁크에 넣고 여수 등지를 돌아다니며 길거리에 인적이 드물어지길 기다렸다. 새벽 2시 30분이 되어서야 그들은 여수 화정면 백야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물에 떠오르지 않도록 최 씨의 시체에 공사용 블록까지 2개 매달아 바다에 던져버렸다.
시체 유기를 마친 이들은 알리바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서 씨와 김 씨는 다시 차를 타고 2시간 거리의 전남 고흥군 동일면 나로2대교로 갔다. 그곳에 구경을 온 관광객인 것처럼 위장을 하고, 김 씨는 새벽 5시 2분 다급한 목소리로 119안전신고센터에 신고전화를 걸었다. 그는 “나로2대교 아래 선착장에서 기념사진을 찍던 최 씨가 발을 헛디뎌 바다로 추락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바다 속 수색작업이 시작되면 시체가 발견될 것을 우려해 시체는 여수 앞바다에 버리고, 추락 신고는 멀리 떨어진 고흥군에서 한다는 계산이었다.
김 씨의 신고를 받은 여수해양경찰서는 즉시 경비함정과 순찰정 등을 사고 현장에 급파해 수색작업을 벌였다. 당연히 최 씨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단순 추락 실종사건으로 묻히는 듯싶었다.
여수해양경찰서에서 조사받는 피의자들.
한 달여 동안 이들을 추적했지만 타살을 단정하기에는 ‘결정적인 물증’이 부족했다. 오히려 신 씨 등은 경찰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해경의 수사과정을 확인하고 보험사에 제출할 서류 구성을 위해 여수해양경찰서에 수사정보 공개를 청구하기도 했다.
그렇게 최 씨에 대한 완전범죄가 성사되려는 순간, 범행을 밝힐 ‘결정적인 물증’을 숨진 최 씨가 제공했다. 지난 7일 그의 변사체가 전남 여수시 화정면 백야대교 아래 갯벌에서 지나가던 주민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공사용 블록은 그대로 있었지만 파도에 시체가 이리 저리 휩쓸리면서 갯벌로 올라온 것. 그리고 최 씨가 살해됐다면, 그가 실족했다고 119에 신고한 서 씨와 김 씨는 허위 신고자이자 최 씨의 마지막 목격자가 됐기 때문에 범인으로 지목될 수밖에 없었다.
여수해양경찰서는 곧바로 신 씨 등 3명을 긴급체포, 구속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범행 일체를 부인하다 경찰에서 증거를 들이대자 자백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여수해양경찰서는 보험금을 노리고 평소 알고 지낸 최 씨를 살해한 뒤 시체를 유기한 혐의(살인)로 신 씨를 비롯한 3명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119신고 연기 기막히더라”
지난 4월 24일 새벽 5시 119안전신고센터로 걸려온 신고전화. 신고를 한 김 아무개 씨(여·42)는 “여기 순천…”이라고 말하는 등 허둥지둥하며 위치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옆에 있는 여성이 전화기 너머로 “순천이 아니고 나로2대교”라고 말하고 나서야 김 씨는 더듬거리며 위치를 설명했다. 당황한 그는 “사진 찍다 일행인 최 아무개 씨(여·34)가 바다에 떨어졌다. 빨리 와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현장을 낯설어하는 상황, 당황해 허둥대는 말투 등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관광객 사고 신고였다. 하지만 그들은 신고자가 아닌 살인자였다. 119안전신고센터의 관계자들조차 나중에 이들의 범행이 밝혀진 후 “신고 당시 그들의 목소리와 행동이 모두 연기라는 말인데, 당시 모습을 기억해 보면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질 않는다”라고 몸서리쳤다.
이처럼 신 아무개 씨(34) 등 3명의 치밀하고 기가 막힌 연기에 이들이 단순한 초범이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전 범죄가 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그들이 이번에 범죄를 처음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다. 수면제에 취해 실신한 최 씨를 처음에는 비닐봉지로 질식사 시키려다 실패한 모습, 한 달여 만에 떠오르도록 허술하게 시체를 유기한 점 등 치밀하지 못한 모습도 보인다. 또한 최 씨에게 단기간에 생명보험을 4개나 들도록 하고, 의혹의 눈길을 한 몸에 받을 것이 뻔한 데도 내연관계일 뿐인 신 씨의 이름으로 보험 수익자를 설정해 놓은 점 등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건 곳곳에서 범행을 처음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온 대목도 눈에 띈다. 경찰수사 결과 신 씨는 최 씨가 지난해 전 남편과 이혼하자 처음부터 그를 범행 대상으로 지목하고 접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광양에 사는 최 씨가 순천에 사는 신 씨를 만나게 된 것은 서 씨의 소개를 통해서였는데, 따라서 서 씨도 범행 대상 물색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줬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의 범행 이후 태연하고 침착한 대응은 초범으로서는 절대 보이기 힘든 모습이다. 특히 신 씨 등은 범행을 실행하기 전 중국인 청부 살해와 교통사고 위장, 승용차와 함께 바다로 수장하는 방법 등 실행 방법을 모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수해양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최 씨 실종신고 초기부터 단순 실족 추락사건으로 보지 않고 치밀한 수사를 통해 피의자들을 검거했다”면서 “범행수법으로 보아 추가 범행이 있을 것으로 판단돼 여죄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