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의 여성 군인의 수는 약 20만 7300명. 하지만 놀랍게도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동료 남자 군인에게 성폭행 혹은 성추행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 이는 일반 여성에 비해 두 배 높은 비율이다(일반 여성의 경우에는 여섯 명 가운데 한 명).
여군들이 얼마나 성범죄에 노출돼 있는지는 이미 몇몇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드러난 바 있다.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여군들이 군대 내에서 성폭행 당할 확률은 지난 11년 동안 이라크 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사망할 확률보다 무려 180배 높다. 또한 지난 2011년 <뉴스위크>는 군대 내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여군의 수가 전투에서 사망하는 군인 수보다 더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렇게 성범죄의 희생양이 됐을 경우 겪는 후유증 역시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007년 3월 <뉴스위크>는 전투에 참전했던 여군들이 전투 스트레스와 성폭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다고 보도했다. 이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했던 여군의 15%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군내 성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들이 대부분 보복 내지는 불합리한 처우를 당할까봐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실은 미 국방부가 발표하는 군내 성폭력 실태 조사 보고서에도 잘 드러나 있다. 지난 5월 초 현역 군인 10만 8000명을 대상으로 한 비공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여성 군인의 6.1%, 그리고 남성 군인의 1.2%가 성범죄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 또한 지난해 군대 내에서 스킨십부터 성폭행까지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이 발생한 건수는 2만 6000여 건. 이는 하루 평균 70건꼴이며, 총 1만 9000건이 발생했던 2010년에 비해 약 37%가 증가한 것이다.
레이클랜드 공군기지에서 전투 훈련을 받고 있는 여생도. 이곳 교관들이 지난 4년간 여생도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례가 62건에 달한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성관련 범죄 사건으로는 육군사관학교 샤워 몰카 사건이 있다. 이는 마이클 맥클렌든 병장이 2009년 7월부터 2012년 5월까지 3년 동안 샤워실에 몰래 숨어 들어가 여생도들의 알몸을 촬영해온 사건으로, 피해자는 최소 열두 명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적발된 그는 성추행, 근무태만, 성적학대, 복무규칙 위반 등으로 기소됐으며, 현재 뉴욕주의 포트드럼 기지로 이송된 상태다.
또한 지난 5월 중순에는 텍사스주 포트후드 기지에서 성희롱과 성폭력 대응 및 예방프로그램 조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담당관이 성매매를 알선하고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육군범죄수사사령부(CIC)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져 주었다.
뿐만이 아니다. 육사 럭비팀 역시 성범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현재 럭비팀은 여성을 비하하는 저속하고 음란한 글이 담긴 이메일을 공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무기한 해체된 상태. 이번에 발각된 이메일에는 여성을 난잡한 창녀, 뚱녀, 역겨운 존재로 비하한 발언들이 가득했으며, 동성애자, 근친상간, 강간 등에 대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글들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사건으로 처벌 받은 선수들은 모두 60명이며, 해당 선수들은 120시간의 구보, 강등, 휴가 박탈 등의 처벌을 받았다.
공군의 경우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공군 내 성폭력 신고 건수는 800여 건. 이는 614건이 발생했던 2011년에 비해 30% 증가한 것이며, 대부분의 사건은 레이클랜드 공군기지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레이클랜드 공군기지에서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교관들에게 성폭행 또는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당한 여생도들은 모두 62명이었다.
하지만 진짜 사건은 그로부터 5주가 지났을 때 벌어졌다. 기숙사 방 청소를 하고 있던 메식의 방에 몰래 숨어들어온 워커 하사가 그녀를 성폭행했던 것. 당시 그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쫓아낼 것”이라고 협박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건 발생 후에는 “어차피 네가 하는 말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며 입을 다물 것을 명령하기까지 했다. 결국 복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쉬쉬했던 메식은 특히 이 사건을 보고해야 할 상사가 바로 워커 하사라는 점 때문에 더욱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메식은 결국 지난해 스스로 군을 떠났고, 그 후 줄곧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뒤늦게 메식을 포함한 열 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사실이 발각된 워커 하사는 지난해 7월 20년 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에 있다.
이밖에도 가장 최근에는 공군 성폭력 예방부서 책임자인 제프 크루진스키 중령이 주차장에서 한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는 성추행을 저지르면서 체포되는 사건도 벌어졌다. 사건 직후 그는 직위 해제됐으며,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사관학교의 경우, 지난 3년간 당국에 접수된 성범죄 건수는 모두 51건이다. 지난해 4월에는 해군사관학교 미식축구 선수 세 명이 여성 생도를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여생도의 남자친구였으며, 당시 이들은 술에 만취한 채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이 사건은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피해자인 여생도만이 징계를 받는 선에서 사건이 종결됐지만 현재 재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속속 드러나고 있는 군내 성범죄 사건에 당혹하고 있는 미 정부는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으며, 성범죄에 연루된 군인에게 계급 강등 혹은 강제 전역 등 엄중한 처벌을 내릴 것을 명령한 상태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과연 이런 대책만으로 군내 성범죄가 뿌리 뽑힐 수 있을까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여군의 전투임무 배치 금지 규정이 폐지되면서 앞으로 여군들도 전투부대에 배속될 수 있게 됐다는 점은 성범죄 발생 확률이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치료받은 사람 40%는 ‘남성’
이른바 ‘군대 성(性)적 트라우마’라고 불리는 증후군이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참전 미군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8만 5000명 이상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베트남 참전용사들이 군내 성추행에 따른 정신적 질병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이 가운데 40%는 남성이었다.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 그리고 남성 100명 중 한 명이 군내 성폭력에 따른 정신적 외상 관련 조사에서 양성 반응을 나타냈으며, 여기에는 성폭행뿐만 아니라 부적절한 신체 접촉, 성적 비하 발언, 성추행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밖으로 알리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고 있으며, 군으로부터 적절한 보상 또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 가운데 지난해 국방부로부터 장애급여를 신청한 사람은 4000명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군복무 중에 성폭력을 당할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및 우울증 등 다양한 정신적 질환을 겪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