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22일 청와대에서 만난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 ||
김 전 대통령은 최근 건강을 다소 회복해가며, 매일 배달되는 신문을 꼼꼼히 읽고 모니터할 만큼 ‘세상일’에 관심이 많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김한정 비서관 등은 공식적으론 “김 전 대통령이 정치에 대해 일절 내색을 하지 않으며 정치권 일에 관여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첫 번째 행보는 8월21일 있었던 하버드 국제학생회의 개막식 강연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2천3백 년 전 중국의 맹자는 임금의 권력은 하늘이 백성에게 선정을 하라는 천명과 더불어 내린 것이다.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괴롭힌다면 백성들은 임금을 추방할 권리가 있다”고 말해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김 전 대통령은 “주권재민의 사상은 근대 서구민주주의의 사상적 원류가 되고 있는 존 로크보다 2천 년이나 앞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전 대통령측은 이 말의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섭섭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란 추정이 많았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이 분당사태를 맞자 김한정 비서관을 통해 다시 한번 ‘불편해한다’는 심기를 전했다. 단편적으로 전해져오는 김 전 대통령의 심기는 분명히 노 대통령에게 대해 불쾌한 감정을 지닌 것으로 해석될 만했다.
실제 동교동계 식구들은 신·구파를 막론하고 대부분 민주당에 남았다. 최근 동교동계 의원들이 김 전 대통령 퇴임 후 처음으로 만찬을 함께한 자리에서도 배기선 의원만이 신당으로 말을 갈아타며 석별의 정을 나눴다고 한다. 이날 모두 14명의 의원들이 모였는데 김홍일 의원도 참석했다. 현재 민주당 의원들은 김 의원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김 의원이 의원직을 계속할 경우 DJ의 뜻이 민주당에 실린 것으로 해석돼 총선 필승에 도움을 준다는 논리다.
동교동계 한 의원은 최근 김 전 대통령과 통화를 하면서 “민주당에 남겠다는 선택과 지역구 사정을 설명했더니 김 전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에서는 “김 전 대통령은 이미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역사적인 대통령으로 남길 원하는 김 전 대통령이 함부로 정치적 행동을 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많지 않다. 최근 김 전 대통령을 만난 한 인사는 “DJ가 내년 총선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며,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는 뜻을 전달하더라”고 전했다.
옥중에 있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이든 통합신당이든 어느 정당도 편들지 말아야 한다”는 건의를 이 인사를 통해 김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는데, 김 전 대통령은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냐”며 이같이 밝혔다고 한다.
또 다른 인사가 박 전 실장을 면회가 “신당과 민주당 어느 쪽으로 출마하는 게 나으냐”고 문의했더니 “어차피 내년 총선 전에 합쳐질 텐데 괜히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과 주변의 이 같은 중립적인 의사표현이 위장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실제 김 전 대통령도 마음이 왔다갔다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김 전 대통령의 마음을 둘러싸고 주변에선 서로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도 김 전 대통령의 마음을 붙잡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9월17일 광주·전남 언론인과의 만남에서 “내가 어느 지역을 배신하기 위해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며, 배신하려고 대통령이 된 사람도 아니다”며 호남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또 8월 말 전남지역 방문에서 “김 전 대통령의 아들은 별것 아닌 문제로 검찰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에는 김 전 대통령의 아들들에 대한 사면문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조심스럽게 거론하는 인사도 있다.
당분간 김 전 대통령의 선택이 구체적으로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은 높지 않다. 민주당과 신당측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구애’ 노력이 확대되는 것을 즐기면서 정국상황을 관망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김 전 대통령도 내년 초 총선이 임박해지면 점점 선택을 강요받으며, 60년 정치생활에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정치적 결단을 하지 않겠느냐는 추정이 늘고 있다.
김영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