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씨는 85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서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데다 간호사인 처 신숙자씨(50)마저 간염에 걸려 생계가 곤란한 상태에서 재독교포인 친북인사 김아무개씨의 권유로 당시 유럽지역 북한대남공작책 백아무개씨 등과 접촉, 같은 해 12월 처와 두 딸을 데리고 북한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당초 북한공작원의 회유와는 달리 그는 김일성대학 교수가 아닌 대남 공작기구 ‘한국민족민주전선’ 산하 칠보산연락소에 배치돼 대남 흑색방송을 전담하는 ‘민중의 메아리’ 방송요원으로 활동했다. 이에 회의를 느낀 오씨는 86년 11월 독일 유학생을 유인해 망명시키도록 하겠다는 임무를 자청해 덴마크로 들어가던 중 곧바로 탈출, 독일에 다시 정치적 망명을 했다.
망명 후 독일정부로부터 받은 망명 수당으로 생활하면서 북한에 남겨둔 처와 자식의 송환을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결국 지난 92년 한국에 자수하면서 현재 국내에 머물고 있다. 지난 95년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그는 국정원 산하의 한 통일관련 연구기관에서 연구위원으로 종사하고 있다.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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