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문 외교보좌관이 12년 전 추인해준 용산 주 한미군기지 이전에 관한 합의각서 및 양해각서 의 ‘불평등’ 내용이 밝혀져 파문이 예상된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조영길 국방부 장관은 20일 민주당 심재권 의원(서울 강동을)의 국회 대정부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90년 당시 체결된 합의각서와 양해각서에 따라 용산 미군기지를 이전할 경우, 최소 30억달러(약 3조6천억원)에서 50억달러(6조원)까지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비용을 계상해보면 적어도 96억달러, 한화로 환산했을 경우 11조원가량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결과적으로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는 용산기지 이전 ‘불평등’ 문서에 현 노무현 정부의 외교보좌관이 서명을 해준 셈이다.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반기문 보좌관은 SOFA(한미행정협정)합동위원회(Joint Committee) ‘시설 및 지역 소위원회’에서 한국측 이해정 의장과 미국측 브라운(Brown. III) 의장이 서명한 별도의 비밀 외교 문서에 한국정부 대표 자격으로 서명, 위 합의각서와 양해각서의 내용을 추인해 주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측에서는 포글먼(Fogleman) 공군 중장이 대표로 서명에 참여했다. 이 같은 사실은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당시 외교 비밀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90년 6월25일 당시 이상훈 국방장관과 메니트리 주한 미군사령관 간에 서명, 교환됐던 합의각서(MOA)와 양해각서(MOU)는 몇 가지 점에서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내용의 불평등성 못지 않게 형식적, 절차적 측면에서도 위헌적 요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합의각서와 양해각서가 처음 체결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1990년의 일이다. 그러나 두 각서가 체결될 당시 ‘국무회의 통과’나 ‘대통령 재가’ 등의 정식 조약 체결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90년 체결된 합의각서와 양해각서에 따르면 용산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관련 비용을 한국측에서 모두 부담하는 것으로 돼 있다. 뿐만 아니라 기지 이전과 관련, 미군과 미군 요원에 의해 제기될 수도 있는 배상 청구에 대해서도 한국측이 부담하도록 돼 있다. 여기에 덧붙여 기지 이전으로 인한 기존 업체의 영업 기대이익 상실분을 보전토록 하는 등 불평등한 내용이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
이 같은 합의각서와 양해각서에 포함된 내용은 미군기지 이전이라는 한국의 국가 안보문제 외에도, 이전 비용 등에 따른 한국측 재정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에 헌법 제60조 규정에 의거,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따라야 마땅하다.
▲ SOFA위원회 한미 의장과 반기문 보좌관이 서명한 비밀각서 사본. | ||
그러나 문제의 합의각서와 양해각서에는 용산기지 이전 자금 제공 문제, 청구권에 대한 금전 보상 문제 등 국방부 장관의 권한 범위를 벗어나는 내용도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 따라서 ‘기관간 협정’ 형식으로 작성된 합의각서와 양해각서 내용 가운데 서명자의 권한 범위를 벗어난 부분의 경우, 법적 구속력을 지니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합의각서와 양해각서가 체결된 다음해인 1991년 5월 SOFA 합동위원회에서는 위 각서의 법적 효력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또 다른 비밀 각서를 체결했다. 이때 한국측을 대표해 서명한 장본인이 반기문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이었다.
이후 미국측에서는 반기문 당시 미주국장의 서명이 들어간 각서를 유효한 국제조약으로 간주하며 주한 미군기지 이전 관련 협상 때마다 90년 체결된 합의각서와 양해각서의 이행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현 노무현 정부 외교팀을 총괄하고 있는 외교보좌관의 12년 전 서명으로 인해 불평등한 용산기지 이전 협상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12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이후, 미국측에서는 용산기지 이전 문제를 재론, 한미간 외교안보의 주요 현안으로 대두됐다. 또한 노 대통령도 지난 5월 방미 때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그리고 지난 8·15 경축사 등을 통해 용산 기지의 조속한 이전을 거듭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거듭된 ‘용산 기지의 조속한 이전’ 언급이 90년 체결된 ‘불평등’ 합의각서와 양해각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했는지, 또한 그 이듬해인 91년 5월 반기문 외교보좌관에 의해 서명된 비밀각서의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하다.
만약 노 대통령이 불평등한 합의각서와 양해각서의 내용을 제대로 인지한 상태에서 용산기지의 조속한 이전을 언급했다면, 최고통치권자의 민심과 동떨어진 통치행위에 대한 비판여론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90년 맺은 불평등한 합의각서와 양해각서, 그리고 91년 SOFA 합동위에서 반기문 외교보좌관이 법적 효력을 확인해준 추인 각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보고 받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발언이라면 외교 보고라인에 대한 문책이 뒤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대통령의 외교안보문제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반기문 보좌관이 자신이 12년 전 불평등한 문서에 서명한 사실을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을까 하는 의문도 남는다. 외교가 일각에서 반 보좌관이 ‘원죄’ 때문에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포함한 한미 현안 협상에서 미군측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는 비판론이 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구자홍 기자 jhkoo@ilyo.co.kr